2017년 폭등, 이젠 10억원 바라봐
청년층 서울 선호 현상 더욱 심화
“저출생 문제 수도권 집중 큰 원인”
서울 집값은 치솟는데 결혼을 염두에 둔 청년의 서울 선호현상은 더 뚜렷해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를 사려면 부부 각자 억단위의 현금을 들고 있어야 하는 ‘비현실적인’ 현실 앞 결혼이라는 장벽은 높아만 가고 있다. [연합] |
“한국의 실질주택가격이 2015년 수준으로 안정화된다면 출산율이 상승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보고서에서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필요한 집값 수준을 콕 집어 2015년이라고 제시했다. 2015년은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오름세를 타기 시작한 시점이다. 2017년부터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전 국민이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벼락거지’란 말이 유행했다. “결혼할 때 서울에 아파트를 사지 못하면, 평생 사지 못 한다”는 말도 들렸다. 결혼과 출산의 허들이 집값을 타고 수직 상승한 것이다.
▶서울 아파트 10억 시대=2012년 이후 4억원 수준에 머물렀던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은 2015년 처음으로 5억원대에 진입했다. 이후 2017년부터 매년 1억원 가량 상승해 2021년 7월엔 9억4000만원에 도달했다. 지난해엔 일부 안정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최근엔 다시 가격 상승 조짐이 보이고 있다.
소득 수준과 비교하면 서울에서 집을 사기 위한 난이도를 체감할 수 있다. 서울에서 중간 소득인 가구가 내 집을 마련하는 데엔 25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추정됐다. 주거비가 비싼 것으로 이름 높은 미국 뉴욕보다도 10년 이상 더 일해야 집을 살 수 있다.
한국은행이 주요국 가격 통계 비교사이트 ‘넘베오(NUMBEO)’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의 소득 대비 집값 비율(PIR)은 25.1배(6월 7일 기준)로 집계됐다. 이 숫자는 서울 지역의 연평균소득으로 중간값 수준의 주택 구입 시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서울 집값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파리(17.8배), 로마(15.1배), 런던(14.8배), 뉴욕(14.0배)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시민보다 10년 이상 더 일해야 집을 마련할 수 있다.
소득 대비 집값이 오른 시점도 2015년 즈음이다. 넘베오에 따르면 2013년 해당 비율은 10.4배에 그쳤다. 그러나 2014년 13.5배로 오르더니, 2017년엔 17.8배까지 상승했다. 2019년엔 20.7배를 기록, 소득을 20년이나 모아야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죽어도 서울에 붙어 있어야 한다=같은 기간 청년들의 서울 선호 현상도 더 강화했다. 집값 폭등과 함께 “서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지방으로 돌아가는 청년이 사라진 것이다. 서울 인구밀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경쟁이 심화했고, 결혼과 출산은 뒤로 미뤄졌다. 서울로 수요가 몰리면서 집값이 다시 또 상방압력을 받는 악순환도 시작됐다.
2010년 이후 2만~3만명대를 오가던 20대 서울 순 유입은 2015년 2만9615명으로 저점을 기록하고, 빠르게 증가했다. 2022년엔 20대 서울 순 유입이 6만818명으로 불었다. 반면, 30대 서울 순 유출은 2015년 1만4435명을 기록하고 감소하기 시작했다. 2022년 30대의 서울 순 유출은 9059명에 불과했다.
20대엔 대학과 일자리를 위해 서울로 들어가더라도 30대가 되면 지방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흐름이 약해진 것이다.
최근 10년간 흐름을 보면 비수도권에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으로 향한 20대 청년은 60만명에 육박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13∼2022년 서울·경기·인천의 20대 순이동 인구는 59만1000명을 기록했다.
이중 대부분이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순유입된 20대 인구는 34만1000명에 달했다. 서울로의 순유입 인구는 10년 전인 2013년 2만1000명에서 2022년 5만4000명까지 증가했다. 서울 집값 상승 기저에 마르지 않는 청년 수요가 있는 셈이다.
서울에서 살 필요가 없는 이들도 서울 집은 팔지 않는다. 단적인 예가 세종시 관가다. 세종으로 정부기관 대부분이 옮겨간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거나 주말부부 형태로 사는 공무원이 적지 않고, “서울 집은 파는 거 아니다”란 말이 파다하게 들린다. 교육 때문이다. 사교육 인프라가 서울에 몰려있는 한 힘들더라도 서울 집을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억씩은 들고 있어야 할텐데” 치솟는 결혼 허들=치솟는 서울 집값에도 청년들의 서울 선호 현상은 더 커지면서 결혼에 필요한 자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결혼식 등 부대비용은 차치하더라도 괜찮은 서울 아파트를 사려면 각자 억단위의 현금을 들고 있어야 한다.
신혼부부 B씨는 최근 서울에 한 아파트를 14억원 가량에 매수했다. 두 사람이 다해 5억원 정도를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는 다 대출 받았다. 지난해 정부가 비규제지역의 LTV(담보인정비율)를 70%까지 확대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B씨는 “우리도 미루고 미루다 이번에 겨우 집을 살 수 있게 되면서 결혼하게 됐다”며 “매달 이자 갚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20대 입장에서 보면 까마득한 얘기다. 특히 최근엔 입사 연령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매년 2000만원씩 저축한다고 해도 2억원을 모으려면 10년이 걸린다. 30살 무렵에 입사하면 40살이 다 돼서야 결혼에 필요한 초기자금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결국 서울에 모여사는 현상이 사라지지 않으면 집값 문제는 해결할 수 없고, 결혼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수도권 집중이 저출산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멜서스의 인구론에서는 출산율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인구밀도를 매우 중요하게 본다”며 “인과관계를 따져보면 수도권 집중이 우리 인구구조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완화할 정책적 판단에 안타깝게도 정치 요소가 개입되곤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도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보고서에서 “국가별 출산율 변동 폭 기여도 분석 결과는 도시인구집중도와 주택가격의 상승이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초저출산 현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임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토 면적이나 인구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없겠으나, 인구가 특정 도시와 지역에 집중되는 현상은 정책적 노력을 통해 일정 부분 완화 가능할 것”이라며 “이 경우 출산율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