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준의 크로스오버] ‘순둥이’ 오타니가 채찍을 들었네

OHTANI
오타니 쇼헤이와 전 통역사 미즈하라 잇페이[AP=연합 자료]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30·LA다저스)가 지난 26일 미국 연방법원 캘리포니아 중앙지법에 자신의 전 통역사 미즈하라 잇페이(39)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잇페이가 자신의 돈을 훔쳐 사들인 야구카드를 몰수해달라는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이에 따른 청문회는 12월 20일 열릴 예정이다.

지난 3월말 서울에서 치른 LA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간의 메이저리그 개막전 당시 불거진 오타니 통역사의 불법 도박 스캔들은 2024시즌 벽두를 뒤흔들었다.

잇페이는 오타니가 일본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 소속일 때부터 인연이 돼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에도 전담 통역사로 날마다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며 온갖 일을 봐줬다. 오타니로서는 실로 상상하기 힘든 충격을 받았을 게 틀림없다. 친형처럼 믿고 미국생활의 거의 모든 일을 맡겼더니 무려 1천700만달러(한화 약 237억여원) 가까운 엄청난 금액을 자신의 계좌에서 빼내 불법도박에 탕진했다니 말이다.

무엇보다 오타니가 잇페이의 불법도박 행위를 알고 있었는 지 여부가 한동안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통역사의 불법도박을 만에 하나 털끝만큼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백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하다는 투타겸업의 야구천재는 유니폼을 벗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오타니를 계약하면서 사상 유례없이 큰 규모인 ’10년간 7억달러’를 주기로한 다저스 구단도 그렇지만 메이저리그 전체를 뒤흔드는 쓰나미같은 사태가 밀어닥칠 수 있었다.

사안의 심각성과 중대성을 인지한 미국 연방검찰이 신속하게 움직여 다저스구단이 잇페이를 해고한 지 2주가 채 안돼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검찰은 4월 3일 잇페이를 은행사기혐의로 고발하는 37페이지짜리 고소장을 통해 오타니와 잇페이의 문자 대화를 검토한 결과, 도박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그 다음날 “추가 조사가 필요한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형사 소송이 해결될 때까지 자체 조사를 중단할 것”이라고 성명을 냈다.

검찰의 발표가 있던 날 오타니는 다저스타디움에서 치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시즌 첫 홈런을 날렸다. 메이저리그의 성명이 나온 이튿날인 4월 5일 시카고 컵스전에서는 시즌 두번째 홈런을 터뜨렸다.그 이후 오타니의 2024시즌은 모두가 아는 바이다.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의 50홈런-50도루를 동시에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샴페인을 맛보는 결실을 얻는 가하면 통산 세번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더할 나위없이 보람 찬 시즌의 여운을 즐기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오타니는 잇페이를 상대로 ‘야구카드 반환’ 소송을 냈다. 뜻밖이랄까, 뜬금없다고 할까, 아니 생뚱맞게 여겨질 따름이다. 1천700만달러의 돈과 그에 따른 심신의 피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이 먼저일진대 고작 야구 카드라니 말이다.

법원 서류에 따르면 잇페이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온라인 상거래사이트 이베이(eBay) 등에서 야구 카드 1천여장을 재판매할 목적으로 구입했다고 한다. 오타니는 자신의 이미지와 사인이 들어간 수집용 야구 카드와 카드가 담긴 상자, 카드 포장 장치, 플라스틱 카드 보호기 홀더까지 반환해달라고 꼼꼼하게 청구품목을 적시했다. 32만5천달러(약 4억5천여만원) 상당의 물품이지만 1천700만달러가 빠져나간 계좌의 빈칸을 생각하면 굳이 왜 야구 카드일까 싶다.

앞으로 잇페이가 자신의 돈으로 지불했다는 치과 치료비도, 함께 갔던 베벌리힐스 스시레스토랑의 밥값도 내놓으라고 할 지 모르겠다.

지난 6월 유죄를 인정한 잇페이는 내년 1월 선고가 예정돼 있다. 은행사기와 허위세금보고 등으로 최고 30년형을 받을 수도 있고, 미국 영주권을 박탈 당해 추방될 수도 있다. 선고일을 기다리며 생계를 위해 요즘 공유택시 우버를 몰고 있다고 한다.

오타니는 잇페이로부터 1천700만달러를 배상받을 수 없을 바에야 소소한 소송으로 정신적 고통을 주기로 작정한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적대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대한 적이 일초도 없을 것같은 ‘순둥이’ 이미지의 오타니다. 그런 그가 형제처럼 믿었던 사람의 배신에 채찍을 든 모습조차 한없이 온순해보인다.

커리커처

황덕준/미주헤럴드경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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