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해제된 4일 오전, 국회 의사당 앞 건널목을 경찰들이 가로막고 서 있다. 윤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30분께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이후 6시간여만인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열고 비상계엄을 해제 한다고 밝혔다. [이용경 기자] |
[헤럴드경제=이용경·김도윤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내란 위험과 정치적 혼란 등 국가적 위기를 이유로 전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시민들은 대혼돈의 밤을 보냈다. 여의도 국회 주변으론 계엄군이 배치됐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 사이에선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4일 아침 출근길에서 만난 시민들은 1979년 10·26 사태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에 대부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4일 오전 헤럴드경제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과 서울역 등지에서 만난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에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대체적으론 ‘황당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날 서울역에서 만난 회사원 송모(31) 씨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전날 밤 속보를 보고 곧장 여의도 국회 앞으로 향했던 사람 중 하나다. 송씨는 “우선 무척 황당했지만, 군경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사실 굉장히 무서웠다”며 “대통령 지지율도 그렇고, 국회 의석 상황도 그렇고, 현실적으로 도저히 계엄이라는 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잘 해결 되리라는 믿음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상시에 정치적인 사람은 아닌데, 이번 사태는 그래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직접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시민인 백모(50) 씨는 “미쳤다고 생각했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백씨는 “출근 때문에 일찍 자야했는데 잠을 잘 수가 없었다”며 “국회에서 계엄해제가 가결됐을 때도 대통령이 또 다시 황당한 판단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고 말했다.
출장길에 나선 권모(49) 씨도 간밤에 벌어진 상황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권씨는 “어제 상황을 지켜보느라 2시간 밖에 못잤다”며 “가족들도 너무나 황당해 하고 있고, 아무런 명분도 없이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국회의원들이 빠르게 처리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날 야근을 마치고 계엄 선포 소식을 들은 네트워크 엔지니어 박모(32) 씨는 “퇴근하자마자 커뮤니티 계정에 계엄 소식이 떠서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다”며 “1시간 가까이는 믿기지 않아 멍때리다가 계엄해제 결의안 가결 소식은 못 보고 잠들었다”고 말했다.
박희명(66) 씨는 “1979년 1월에 군대를 가서 1981년 10월에 제대를 했다”며 “당시 박정희 대통령 서거와 12·12, 5·18까지 모두 군에서 경험했는데, 당시에도 ‘계엄은 정말 해선 안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며 “시대가 어느 때인데 시민들 알기를 너무 우습게 아는 것 같다. 작은 정치적 마찰 하나로 계엄을 선포한다는 게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해제된 4일 오전 서울역 에서 시민들이 계엄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30분께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이후 6시간여만인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열고 비상계엄을 해제 한다고 밝혔다. [김도윤 기자] |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만난 시민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50대 직장인 우모 씨는 “어린 시절 말로만 들었던 비상계엄을 2024년에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난생 처음 겪어 보는 계엄 상황에 잠을 한숨도 못잤다. 무슨 명분이 있다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인지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의도 인근에서 만난 공단 직원 안모(35) 씨는 “공공기관 직원인데, 비상계엄 선포 이후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관련 안내와 지시도 아무것도 없었다”며 “2시간 컷으로 끝날 계엄을 왜 한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보면 계엄사유도 정확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어제 국회 가결 상황에 비춰볼 때 생각지도 않은 여야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날 헤럴드경제가 만난 시민들 대다수는 급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에 비판적 입장을 나타냈다. 윤 대통령의 선택에 공감하는 시민들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일부 시민들은 “대통령 탄핵 사유”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인 3일 밤 10시 25분께 담화문을 통해 “지금까지 국회는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소추 발의했으며 지난 6월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이라며 “판사를 겁박하고 다수의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방통위원장 탄핵, 감사원장 탄핵, 국방부 장관 탄핵 시도 등으로 행정부마저 마비시키고 있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 선포 한 시간 만에 계엄 지역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할 계엄사령부가 설치됐다. 계엄사령관에는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됐다. 박 총장은 오후 11시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의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회는 계엄 선포 약 155분 만에 계엄해제 결의안을 긴급 상정,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결의안을 가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4시 27분께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하면서도 야당을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으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는 즉각 중지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