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읽는 신간


▶책임감있게 사정하라(가브리엘르 블레어 지음·성원 옮김, 은행나무)=저자 가브리엘르 블레어는 임신중단이 여전히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 대(對)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허구적 대립이 이어지고 있어 그 초점을 남성에게 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신중단의 책임은 남성에게 있다’고 단호하게 선언한 이 책은 출간 직후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블레어는 간단한 생물학적 사실을 상기시키며, ‘남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어디에 사정할지 결정할 수 있다. 남자가 여성의 질에 사정하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원치 않는 임신은 발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남성이 사정 결정권만 잘 쓰면 여성은 임신중단을 선택할 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어진다’는 수학 공식과 같은 논리를 설파한다.


▶소년의 식물기(이상권 지음, 별꽃)=화가가 되고 싶었던 아홉 살 소년은 암소 한 마리를 돌보게 되면서 소가 좋아할 만한 풀을 찾아다녔다. 물론 현실의 벽에 부딪쳐 화가가 되진 못했지만, 대신 암소 덕분에 관심을 갖게 된 풀과 꽃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튼 동물기’의 유명세에 가려져 알려지지 못한 ‘파브르 식물기’처럼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느껴본 식물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서술하고 그렸다. 특히 식물 하나하나에 어릴 때 직접 경험한 에피소드를 마치 동화처럼 ‘소년의 이야기’로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책 속 그림들은 작가가 직접 그린 40컷과 그의 딸이 그린 136컷 등이 수록됐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완벽한 존재란 누군가를 지배하거나 착취하는 시간을 사는 게 아니라 타자를 존중하고 같이 살아가는 철학적인 힘을 가진 생명”임을 일깨운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류시화 지음, 수오서재)=‘백 사람이 한 번 읽는 시보다 한 사람이 백 번 읽는 시를 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저자의 시는 여러 번 읽게 되면서 작품 안에 흐르는 시인의 감정이 자연스레 연결된다. ‘당신을 만난 뒤 시를 알았네’라는 다소 로맨틱한 내용의 이 시집은 그의 순도 높은 93편의 시가 실렸다. 그는 인간의 깊은 곳에 있는 다양한 감정을 시로 표현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시집의 해설을 쓴 이문재 시인은 “‘당신을 만난 뒤 시를 알았네’에서 당신은 연인일 수도 있지만 절대자나 혹은 갑작스럽게 닥친 병이나 불행일 수도 있다”며 “일상적인 삶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과 같은 당신’이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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