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방향타’ 잃은 韓…美 ‘법치주의’ 강조, 中대사 임명·日셔틀외교 중단 위기

2만8500명 미군 주둔하는 한국에
‘계엄군’ 동원 사전 공유 못받은 美
탄핵 국면에 “법치주의·평화적” 강조
한중 쌍방 ‘대사 임명 절차’ 난감해져
12년만에 복원된 日 ‘셔틀외교’ 난망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오후 10시23분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대통령실]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국면에 대해 동맹국인 미국이 “한국의 민주적 회복력”을 지지하면서도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상호 간 대사 교체 임명으로 양국 관계의 새 국면을 맞이하려던 한중 관계도 안갯속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방한을 취소하면서 12년 만에 재개된 ‘셔틀외교’도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9일(현지시간) “불확실성의 시기에 지난 며칠간 기쁘게 목도한 것은 한국의 민주적 회복력”이라며 “정치적 이견이 법치주의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법적 절차와 정치적 절차는 법치주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심각한 오판”(badly misjudged,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이라고 비난하면서, 국회가 155분 만에 비상계엄해제요구결의안을 가결시킨 것과 관련해 “강한 민주주의의 회복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후 윤 대통령이 지난 7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국 안정 방안을 “우리 당”(국민의힘)에 일임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의 공동국정운영 체제를 발표하자 미국 측은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헌법상 대통령의 ‘궐위’가 아닌 상황에서 군통수권과 외교권을 총리가 행사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위헌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의식한 것이다.

지난 8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접견한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도 위헌 논란을 의식한 듯 ‘한한 체제’가 헌법에 부합하는 조치인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 사전에 관련 내용을 공유받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에서 계엄군이 동원되는 상황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국가안보실장과 외교부 장관 등 주요 참모진과 국무위원들이 배제되면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무부 장관 라인과 소통도 불가능했던 탓이다.

비상계엄 사태 수습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면서 외교가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당장 주중한국대사와 주한중국대사 임명 절차도 애매해졌다. 앞서 윤 대통령은 김대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주중한국대사에, 중국은 다이빙(戴兵) 주유엔 중국 부대사를 주한중국대사로 내정하고 각각 아그레망(주재국 부임 동의) 절차를 진행해 왔다. 아그레망 절차가 끝나면 대통령이 대사를 임명하고 신임장을 수여하면, 대사는 이 신임장 원본을 주재국 국가원수에게 제정한다. 대사 임명 절차는 모두 대통령의 권한이며, 상대국 대사로부터 신임장을 받는 것도 대통령의 몫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외교권을 두고 혼란이 계속되면서 대사 임명 절차도 깜깜해졌다. 당초 10일 개최하려던 정재호 주중한국대사의 이임식 행사는 취소됐고, 후임인 김 실장 부임 절차도 오리무중이다. 내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추진도 방향을 잃었다.

전날 정병원 차관보는 팡쿤(方坤) 주한중국대사대리를 면담하면서 최근 국내 상황을 설명하고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는 9일 개최하기로 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 등을 포함한 한중 간 협의는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내달 초 방한 계획을 취소하고 인도네시아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 12년 만에 복원된 양국 간 셔틀외교도 중단될 처지에 놓였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전날 미즈시마 고이치(水嶋 光一) 주한일본대사를 면담하고 “민주적 절차와 법치주의를 토대로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갈 것”이라는 정부의 의지를 밝혔다.

조 장관은 전날 실국장회의에서 “우리 외교에 한 치의 공백도 발생하지 않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며 “우리에 대한 우방국의 신뢰와 국제사회의 기대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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