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골든타임 놓친다”…내년경제정책방향 발표 등 줄줄이 연기

내년 경제정책방향 리스크 대응에 그칠 것…11차 전기본, 국회보고 문턱 못 넘어
반도체특별법, 전력망 확충법 등 처리 난망…밸류업·양극화 해소 정책도 ‘좌초’ 위기


탄핵정권 장기화로 현 정부가 추진하려던 각종 경제정책이 미뤄지면서 한국경제가 최대 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장기화되면서 정부가 추진하려던 각종 경제정책이 동력을 잃고 표류하게 됐다.

12월 중하순에 발표된 예정이던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은 내년 1월로 미뤄지고 반도체 특별법, 상속세제 개편안 등 주요 경제 법안은 좌초되는 분위기다. 양극화 해소 등 윤석열 정부가 중점 추진하던 정책은 ‘올스톱’될 위기다.

1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다음달로 연기했다. 경제정책방향은 기획재정부 등 7개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새해 경제 상황을 전망하고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일정이다. 경제 부총리의 교체 시기와 맞물린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제외하고는 통상 12월 중하순께 발표됐다. 다음달 ‘경제정책방향’이 발표된다고 해도 탄행정국이 장기화될 경우 리스크 대응에 급급한 반쪽자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에너지정책의 핵심 계획인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년 적용) 수립도 의무절차인 국회 보고 문턱을 못 넘고 있다. 연내 처리가 목표였지만 사실상 물건너갔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까지 원전 3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 증설을 담고 있는 윤 정부 에너지정책의 핵심이다. 정부는 2년 주기로 향후 15년간 적용할 전기본을 수립해 전력수급 전망을 토대로 발전 설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던 반도체 산업지원 정책 및 관련법 처리는 기약이 없어질 위기에 놓였다. 반도체 기업에 한해 주 52시간 근무를 예외로 하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 관련 여야 간 합의처리는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반도체 기업의 통합 투자세액 공제율을 현행보다 5%포인트 상향하고,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대상에 연구·개발(R&D) 시설 투자를 포함하는 정부 지원책도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커졌다.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법)도 현재로서는 논의 재개 시점을 예상하기 힘들다. 대규모 전력을 쓰는 인공지능(AI)·반도체 산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전력망 확충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인데, 탄핵 논의가 모든 의제를 집어삼키면서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주주환원 증가액 법인세의 5% 세액공제, 배당 증가액의 저율 분리과세, 상속세 관련 최대 주주 할증평가 폐지 등 자산시장 ‘밸류업’을 위한 정책들도 좌초될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모두 ‘밸류업’을 위한 정부 조치들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입법이 필요한 핵심 과제들은 미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고세율 인하 등이 담긴 상속세제 개편안, 정산 주기 단축을 골자로 하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납입 한도 상향 등을 담은 조세특례법 개정안 등 법안들도 표류하게 됐다.

대통령 리더십이 실종되고 정권 교체 변수까지 대두되면서 중장기적인 정책 로드맵 설계는 더욱 불가능해졌다. 윤 정부가 하반기 핵심 의제로 내세운 ‘양극화 해소’ 정책는 백지화될 위기에 놓였다. 윤 대통령은 당초 내년 양극화 해소 종합 대책을 직접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탄핵 정국이 시작되면서 이 역시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현 정부의 핵심 키워드인 ‘건전재정’도 기조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야당 주도의 감액 예산안이 이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이 높다. 예산·재정당국인 기재부는 추경에 반대하고 있지만, 탄핵 정국에서 동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계속 반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책 공백이 길어질수록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현 정부가 ‘식물정부’로 전락할 경우, 한국경제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탄핵 정국으로 공직 사회가 일제히 업무를 손놓고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는 점도 위험요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적폐 청산을 지켜본 경험 때문에 공직 사회의 소극적 업무 태도가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 관가의 시각이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주요 중앙부처는 이달 예정된 내·외부 회의와 일정을 대부분 조정하거나 취소했다. 각 부처가 확대간부회의 등을 통해 차질 없는 업무 수행을 당부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주요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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