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탄핵 외치면서…비민주적 폭력 극치”
매크로發 문자폭탄에 “휴대폰 마비될 정도”
“반대 결집 약해질수도” “각자도생의 시대”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 당시 본회의장을 떠난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의 도봉구 사무실 앞. [온라인 갈무리]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부결·불참’ 당론을 내세운 여파가 초·재선 의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지역구 사무실에 달걀을 투척하고 근조화환을 줄 세우는가 하면, 수만 건의 ‘문자폭탄’을 보내는 식이다. 일부 초선 의원들은 살해 협박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여론의 압박을 받는 이들이 흔들리면서 국민의힘의 단일대오에도 균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1일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재선·부산 남구을)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붉은 액체를 끼얹은 벽보 사진을 올리며 “좌파들이 보이고 있는 홍위병식 광풍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비민주적 폭력의 극치요, 마녀사냥”이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박 의원은 사진에 대해 “김재섭 의원 사무실에 핏빛 낙서를 뿌리고 근조화를 갖다둔 것도 모자라, 태어난 지 200일밖에 안 된 아기가 있는 자택 앞에 경고문구와 커터칼을 갖다 두었다”고 부연했다. 박 의원은 “언필칭 민주주의를 외치고 탄핵을 외치면서, 하는 짓은 비민적 중공식 문화혁명을 답습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법적 처벌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김재섭 의원은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이 3선을, 배우자인 인재근 전 의원이 3선을 지낸 ‘야권의 텃밭’ 서울 도봉구갑 지역구에서 지난 총선 이례적으로 보수 깃발을 꽂은 초선이다. 김 의원은 7일 탄핵소추안 부결 사태 이후 지역구 내 비판 여론에 직면했는데, 윤상현 의원(5선·인천 동구미추홀구을)이 한 유튜브 방송에서 김 의원과 대화 내용을 공개한 뒤 더욱 거센 후폭풍을 맞았다. 김 의원의 자택 현관 앞에 탄핵 찬성 문구와 흉기 등이 발견되면서 경찰이 신변보호에 나서는 일까지 생겼다.
김 의원은 대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입장문을 내고 “내 이름이 언급되고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 나간 것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의원총회에서 윤 의원에게 악화한 민심을 전하고 당의 대응을 촉구한 게 전부”라고 반박했다. 같은 당 소속 의원들 간 진실공방은 이례적이지만, 당 내에선 “(김 의원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란 반응이 나왔다.
민주노총이 추진 중인 ‘윤석열 탄핵촉구 문자행동’을 알리는 포스터와 문자보내기 서비스 이용 화면. [X 캡처] |
초선 의원들은 하루 수 만 건의 문자 폭탄에도 시달리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탄핵안 표결 무산 사태 이후 ‘윤석열 탄핵촉구 문자행동’이란 이름의 문자메시지 발송 매크로 시스템을 공개한 영향으로 보인다. 시스템은 국민의힘 의원의 성명을 클릭하면 ‘탄핵안 찬성표를 던지라’는 취지의 문자가 자동으로 발송된다. 야권 지지 성향 유권자들이 오는 14일 2차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이 큰 여당의 초선 의원들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개인정보 유출과 업무방해 등 불법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적조치를 진행하겠다”고 맞섰지만 피해는 속출하고 있다. 박 의원은 “국민의힘 108명 의원들에게는 하루 2만통 정도의 욕설 문자가 쏟아져서 휴대전화를 쓸 수가 없을 정도”라며 “사람이 보내는 게 아니라 ‘드루킹’ 같은 매크로로 보내지는 것 같다. 물론 불법”이라고 말했다. 한 지역구 초선 의원은 “문자가 너무 많이 와서 휴대폰 CPU에 버퍼링이 심하게 걸렸다”고 했다.
비례대표 의원들도 문자 공세에 시달리는 건 마찬가지다. 한 초선 비례 의원은 “휴대폰이 마비가 될 정도로 문자가 쏟아져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였다”며 통신사에 문자수신 금지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비례 의원은 “당선 6개월 만에 이렇게 부역자라는 욕을 먹게 될 줄은 몰랐다”고 자괴감을 토로했다.
10일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찬성 입장을 밝힌 가운데 울산 남구 신정동에 위치한 김 의원 사무실 앞에 응원화환이 배송돼 있다. [뉴시스] |
여론의 압박을 받는 초선 의원 중 ‘탄핵 찬성’을 밝힌 인사도 나왔다. 김상욱 의원(울산 남구갑)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여고 “지난 표결에는 당론을 따랐지만 당론이 명백히 잘못됐다면 자신의 소신을 따라야 하는 게 국회의원의 가장 큰 의무”라며 공개 찬성 의사를 밝혔다. 김 의원은 지난 7일 탄핵안 본회의장 표결에서 국민의힘의 부결·불참 당론을 깨고 표결에 참여해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은 박근혜 탄핵의 트라우마로 여권이 뭉쳐 있지만, 수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여론이 바뀌면서 결집이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초선의 ‘변심’이 향후 탄핵안 표결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적어도 본회의장에는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번지고, 일부 중진 의원들도 이들의 의중을 살피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표 이탈이 소수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준일 평론가는 “일부 중진들이 초선 의원들을 걱정할 수 있지만, 다만 지금은 각자도생의 시대”라 “각자 판단하고 각자 정치적 책임을 지는 분위기라 (행동하는) 표심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