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탄핵 맞은 원화, ‘디스카운트’ 최고조 달해
수입물가 직접 상방압력, 소비자물가 상승 요인
환율 10% 뛰면 물가 0.3%↑…투자·소비도 위축
성장률 0.16% 축소…내년 1.7%까지 추락하나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음식점 메뉴판이 놓여져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소비자물가가 추가로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수입재화 가격 전반이 오르는 것이 주요인이다.
최근 연구에서도 환율이 10% 오르면 물가는 0.3%가 오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1년새 환율이 10% 수준이 뛴 것을 감안하면 물가 추가 상승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는 투자와 소비 심리를 위축시켜 결정적으로 경제성장률에도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11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거래종가는 1426.9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8일(9~10일은 주말) 주간거래종가가 1306.8원이었단 점을 감안하면 1년 사이 환율이 9.2%나 올랐다. 9일 주간종가(1437.0원)와 비교하면 상승 폭은 10%에 달한다.
특히 비상계엄이 있었던 지난 3일 야간 거래에선 장중 환율이 1442.0원까지 뛰었다. 단기 저항선이 1450원선까지 높아진 것이다.
이후에도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원화 ‘디스카운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선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설 수 있단 관측도 나온다. 이는 지난 1997~1998년 외환위기, 2008~2009년 금융위기 외엔 겪어본 적 없는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이 뛰면 물가는 추가 상방압력을 받게 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원/달러 환율변동이 실물경제 및 국내물가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환율이 전년동월 대비 10% 상승하면 소비자물가는 0.3% 더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환율 상승폭이 9~10%인 점에 비춰보면 현재 이미 0.3%의 소비자물가 상승 가능성은 충분한 셈이다.
소비자물가에 선행하는 성격이 있는 수입물가는 진작 오름세가 나타났다. 10월 기준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37.61로, 9월(134.67)보다 2.2% 올랐다. 지난 4월(3.8%) 이후 6개월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여기에 최근 환율 급등으로 추가적 상승이 불가피해졌다. 12월 이후 수입물가가 더 오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지난 3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최근 환율이 상승하였으나 파급시차 등을 고려할 때 환율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라며 “12월 이후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 2년간 가파르게 오르다 최근 3개월 연속 1%대를 기록하며 간신히 안정된 소비자물가가 다시 튈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특히 물가 상승 요인이 외부 충격이란 점에서 우려가 따른다. 내수가 활성화돼 수요가 늘어나는 비교적 건강한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단순히 공급 가격이 오른 것이기 때문에 경제적 측면에선 부담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투자와 소비, 나아가 성장률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예산처 보고서는 실질환율이 1% 상승할 때 설비투자는 0.9% 감소하고, 민간소비는 0.1% 줄어들 것이라고 봤다. 수입재화 가격이 상승하면서 투자가 미뤄지고, 소비가 줄어든다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실질 국내총생산(GDP)는 0.16% 가량 낮아질 것으로 봤다. 실질환율은 명목환율에 두 나라 간의 물가변동을 반영해 구매력 변동을 나타내도록 조정한 환율을 의미한다.
만약 이번 사태로 실질환율이 1% 가량 오른다면 우리나라 내년 성장률이 1.7~1.8%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계엄과 탄핵 사태가 터지기 전 한국은행은 내년 성장률을 1.9%로 제시했다. 내후년 성장률은 1% 중반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
이미 시장에서 비슷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8일 ‘한국경제 수정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경제 성장률 예상치를 1.7%로 제시했다. 지난 9월 당시 2.2%보다 0.5%포인트나 낮췄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모건스탠리도 같은 수치를 제시했다. 모건스탠리는 “불확실한 정책 환경을 고려할 때, 탄핵 가능성과 대통령 교체가 경제 전망에 대한 가계와 투자자들의 우려를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에 내수·투자 활동의 하방 리스크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바클레이즈도 “정치 경제적 불확실성은 한국으로 향하는 외국인 자금 흐름에 영향을 줘 결과적으로 원화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