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파적 전환’에 한국 선제적 금리인하 부담
낮아진 성장률과 고환율 놓고 금통위 고심 커져
미국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조절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의 금리 인하에도 제약이 생기게 됐다. 15년 만에 1450원대를 돌파한 환율이 최대 변수다. 사진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AP] |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추가 금리인하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히면서 우리나라 통화당국의 고민도 더 깊어지게 됐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달러 강세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원화 가치는 약세를 이어가 고환율 부담도 더 커지게 된다.
반면 국내 경제 성장률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전망돼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금리 인하가 절실하다. 결국 다음달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한국은행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9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17∼18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결과 정책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는 연 4.50∼4.75%에서 연 4.25∼4.50%로 0.25%포인트 하향조정됐다. 9월 0.50%포인트 인하로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선 뒤 11월에 이어 세 차례 연속 금리 하향 조정이다.
시장 예상에 부합하는 결정이지만, 세계 금융 시장은 이를 ‘긴축 기조’로 받아들였다. 이번에 발표된 새 점도표(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수준 전망을 표시한 도표)에 따르면 연준 위원들은 내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로 3.9%를 제시했다.
기존 9월 전망치(3.4%)보다 0.5%포인트나 높아졌다. 기준금리는 통상 0.25%포인트씩 내려간단 점을 감안하면 내년 금리 인하가 2번 밖에 없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기존 예상은 4번이었다.
파월 의장도 “우리는 (금리 인하) 과정에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그동안 기준금리를 100bp(1bp=0.01%포인트) 내렸고, 중립금리 수준에 현저하게 접근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발표한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금리조정의 ‘폭’(extent)과 ‘시기’(timing)라는 표현을 통해 금리 추가조정 속도를 늦추는 게 적절한 시점에 도달했거나 부근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미국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조절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한은 뉴욕사무소 현지정보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비둘기적(dovish)’ 여지를 일체 남기지 않았으며 연준의 금리인상 사이클 종료에 대한 문을 열었다”고 밝혔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도 이날 “지난밤 FOMC 결과로 연준의 통화정책 완화가 상당히 지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금리가 기존 예상보다 더 느리게 내려갈 것으로 관측되면서 환율은 또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1450원대를 뛰어 넘으며 시작했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선 것은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진행중이던 2009년 3월16일 이후, 15년 9개월여만에 처음이다.
환율이 뛰게 되면 우리나라의 금리 인하는 더 어려워진다. 금리 인하는 사실상의 통화가치 절하를 뜻하는데, 원화가 약세인 상황에서 택하긴 매우 어려운 선택지다.
물가에 미치는 악영향도 있다. 환율이 1430원대만 유지돼도 소비자물가엔 0.05%포인트에 상방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지금은 1450원대를 돌파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전날 기자 간담회에서 “환율이 1430원으로 유지될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05%포인트 정도 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율에 대해선 “특정 환율 수준을 타깃(목표)하지는 않지만, 변동성이 커질 때 단호하게 완화할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경기를 부양해야 할 필요가 있는 한은 입장에선 딜레마에 빠졌다. 앞서 이 총재는 “올해 4분기 성장률을 애초 0.5%로 예상했는데, 0.4%나 그보다 조금 더 낮아질 것”이라며 내년 성장률에 대해서도 “애초 1.9%로 예상했는데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이 -0.06%포인트(p)가량 긴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하방 압력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이처럼 성장률 감소세 전망에 경기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지만, 이번 미국의 ‘매파적 전환’에 환율이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결국 한은 금융통화위원들은 내년 1월 13일 통화정책방향 회의 직전까지 환율 흐름과 탄핵 사태에 따른 민간 소비 등 내수 충격 여부를 계속 확인하며 치열한 논쟁을 거칠 전망이다.
이창용 총재는 지나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인하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일단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부인했지만, 전반적 경기 부양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전날에도 “경기 하방 압력이 큰 상황에서는 가급적 여·야·정이 빨리 합의해 새로운 예산을 발표하는 게 경제 심리에도 좋다”며 “경기를 소폭 부양하는 정도의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