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2일(현지시간) 피닉스에서 열린 아메리카페스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와 그린란드, 그리고 파나마 운하까지 미국 소유로 삼고 싶다고 말하며 우방국에 연이어 도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각국의 영토주권까지 위협하며 외교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동안 영토 주권을 신성불가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자주 해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천재적” 행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린란드 [AP] |
트럼프는 지난 2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을 통해 켄 호워리 전 스웨덴 대사를 차기 정부의 덴마크 대사로 발탁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린란드 매입’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국가 안보와 전 세계의 자유를 위해 미국은 그린란드 소유권과 지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린란드 매입 주장을 놓고 북극 패권의 교두보 확보 차원이란 해석과 국내 현안에서 이목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라는 관측까지 해석이 분분하다.
한반도보다 9배 이상 넓은 그린란드는 지난 2009년부터 독립을 선언할 권리가 부여됐지만, 여전히 덴마크령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주민이 5만6000명뿐인 그린란드는 덴마크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독립을 추구한 적이 없다.
덴마크로부터 독립을 모색해온 일부 그린란드 주민들은 트럼프의 관심을 계기로 미국과 경제적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트럼프가 관심을 보이면서 그린란드가 더 많은 미국 투자를 유치하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희토류를 채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컨테이너선 [로이터] |
1914년 미국은 상업 및 군용 선박의 통행을 위해 파나마 운하를 건설했고, 1977년 맺은 ‘토리호스-카터 조약’에 따라 파나마가 1999년 12월 31일부터 운하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갖게 됐다. 파나마 운하 통행료는 파나마 정부 연간 수입의 20%를 차지한다. 지난해에는 25억달러(약 3조6215억원)의 자금이 운하 통행료로 국가 재정에 포함됐다. 미국은 이 운하의 최대 이용국이다.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파나마의 영토 주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 파나마 운하와 그 인접 지역은 모두 파나마 일부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트럼프의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22일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대국민 화상연설에서 “파나마 운하와 그 인접 지역은 파나마 국민의 독점적 재산”이라며 “단 1㎡도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 물리노 대통령의 연설을 공유하며 “그건 두고 봐야 한다”고 했고, 미국 국기가 있는 파나마 운하 사진을 올리며 “미국 운하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썼다.
쥐스탱 트뤼도(왼쪽) 캐나다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17년 10월 백악관 워싱턴DC에서 회담을 갖고 있다. [AFP]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8일 자신의 SNS를 통해 “왜 우리가 연간 1억 달러가 넘는 미국의 보조금을 캐나다에 지원하는지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며 “많은 캐나다인이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길 원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들은 세금과 군사 보호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대단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며 ‘51번째 주!!!’라고 썼다.
이같은 발언은 트뢰도 총리가 지난달 29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트럼프 자택을 찾은 이후 나왔다. 트뢰도가 플로리다로 달려간 것은 사흘전이었던 24일 트럼프가 취임하면 캐나다와 멕시코산 수입 제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당일 만찬에서 트뤼도 총리의 항의를 받은 트럼프는 “그게 싫으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면 된다”고 했다. 이후 이 발언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면서 트뤼도를 ‘주지사’(Governor)’라고 칭하며 조롱했다.
캐나다의 경우 트럼프발 ‘고율관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둘러싸고 분열이 심화하면서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사퇴하고 트뤼도 총리가 사퇴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말한 캐나다의 미 연방 편입이나, 파나마 운하 반환, 그린란드 매입 등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한다.
영연방에 속한 캐나다는 영국 찰스 3세 국왕을 명목상 국가원수로 하는 입헌군주국이다. 캐나다가 공화제를 채택한 미 연방에 가입하려면 우선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캐나다 하원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법률 고문으로 활동했던 그레고리 타르디는 현지 토론토스타와 최근 인터뷰에서 “군주제에서 공화제 체제로 바꾸려면 왕의 지위와 관련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과 총독, 부총독 등의 지위’와 관련한 개헌은 캐나다 상원과 하원은 물론이고 모든 지방의회가 만장일치로 동의해야만 가능하다. 타르디는 “솔직히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파나마 운하의 미국 반환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미국은 1914년 파나마 운하를 완공했지만 현지 주민들의 끈질긴 저항에 시달리다가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인 1977년 파나마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고, 1999년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 측에 완전히 반환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89년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무너뜨리기 위해 단행했던 (파나마) 침공과 같은 것이 아니라면 미국 정부에겐 1세기 전 지은 운하의 통제권을 회복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6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
트럼프 당선인이 공격적인 수사를 계속하는 이유는 핵심 공약인 ‘펜타닐·이민자 유입 차단’을 위한 조처를 해당국들에 강요하기 위한 지렛대를 마련하려는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또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는 트럼프에게 상업적인 이익과 안보적 이익이 결부돼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트럼프 당선인이 25%의 관세부과를 예고한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으로 향하는 불법이민자들의 주요 경유지다.
파나마 운하 역시 남미 대륙에서 출발한 이민자들이 미국-멕시코 국경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점으로 꼽힌다.
상대국을 궁지로 몰아 최대 이익을 거두는 전술을 사용해 상대국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국경통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려는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린란드 매입론은 미국이 그린란드를 편입할 경우 중국 희토류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날 결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런 점에서 그린란드에 대한 트럼프 당선인의 관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그린란드 측은 “팔 생각이 없고, 앞으로도 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3일(현지시간)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총리가 트럼프 당선인의 그린란드 매입 의사에 대해 “그린란드는 우리 것”이라며 “우리는 매물을 내놓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에게데 총리는 “우리는 자유를 향한 우리의 오랜 투쟁에 대해 잊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