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은 인권침해? 인권위는 조사마저 포기했다 [세상&]

국가인권위, 23일 ‘비상계엄 직권조사’ 안건 기각
TF 구성해 비상계엄 이후 인권상황 모니터링 방침
“계엄에 따른 국민 인권 침해 침묵” 인권단체 비판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2024 인권의날 기념식’ 행사장 앞에서 시민단체 국가인권위원회바로잡기공동행동 관계자들이 비상계엄에 대한 입장 발표를 하지 않은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의 입장을 막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용경·안효정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비롯된 포괄적 인권 침해 문제 등에 관한 직권조사를 전면 포기했다. 인권위원 다수는 이번 사태가 직권조사를 할 사안이 아니라고 결론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비상계엄 사태에 소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인권위를 두고 인권단체 등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23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인권위 청사에서 제24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대통령의 헌정질서 파괴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및 의견표명의 건’을 재상정해 비공개 논의했다. 하지만 전원위에서는 끝내 비상계엄 직권조사 안건이 기각됐다.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이날 남규선 상임위원과 원민경·소라미 비상임위원 등 3명이 직권조사에 찬성했으나, 나머지 인권위원들은 전부 반대 의사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별다른 의견 표명 절차 없이 거수를 거쳐 직권조사 안건을 기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들은 이에 대한 차선책으로 TF를 구성하고 내년 1월 13일에 열릴 전원위에서 관련 안건을 새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다만 인권위 차원의 직권조사는 사실상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게 내부 평가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24일 오후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위원 3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위원들 전부가 이번 사건을 두고 ‘직권조사를 할 경우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향후 계엄 선포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여러가지 상황 변화를 주의깊게 모니터링 할 필요는 있다는 측면에서 TF 구성 논의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특히 “직권조사 할 사안이 아니라고 압도적 다수로 결정됐다”며 향후 직권조사를 재추진할 일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인권위의 이번 결정에 대해 전국 36개 인권단체로 이뤄진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은 즉각 비판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인권위는 뭐가 무서웠는지 전원위에서 공개안건으로 다뤄져야 마땅한 사안을 비공개안건으로 상정해 지난 9일에 이어 23일에도 논의하다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비상계엄 직권조사 안건은 공동행동 지적대로 당초 공개에서 비공개로 전환됐다. 인권위원 5명이 ‘오보 가능성’을 거론하며 비공개 진행을 제안하면서다. 다른 위원 4명은 ‘사안의 중대성’을 이유로 공개 진행을 요청했으나, 짧은 토론을 거친 뒤 비공개 회의로 결정됐다고 한다. 23일 열린 전원위에서도 비상계엄 직권조사 안건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36개 인권단체 중 하나인 국제민주연대 소속 나현필 활동가는 “직권조사를 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라는 걸 잘 안다”며 “하지만 적어도 계엄 포고령이 국민들에 미치는 심각한 인권 침해 위험성을 감안할 때 최소한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등의 권고도 없었다는 점에서 인권위에 계속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소속 명숙 활동가는 “비상계엄 상황에 대해 인권위 차원의 입장도 제대로 못 내는데, 조사까지 하겠나 싶었다”며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인권위원 구성을 볼 때 직권조사 안건이 다시 상정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한편 안 위원장은 지난 11일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성명서를 통해 “계엄 선포 전후 모든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에 관한 사항을 철저하고 투명하게 조사하고, 모든 국가 기관은 국민의 인권 보호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안 위원장은 이어 “모든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므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정하고 정의롭게 행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계엄과 관련된 상황이 조속히 종료되도록 노력하고, 관련 인권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등 국민의 인권 보호를 위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같은 성명문 발표는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8일 만에 이뤄져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위헌성에 관한 판단이 담기지 않아 ‘맹탕 성명’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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