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대문구 영천시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당시 ‘장바구니 물가’를 점검한다며 상인들과 스킨십을 했다. [대통령실] |
尹, 취임 2주년 때 ‘물가점검’ 하겠다 방문
대통령 환영했던 시장, 계엄 이후 여론 싸늘
[헤럴드경제=박준규·김도윤 기자]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놓고선 더 난장판을 만들어 놨어.” (영천시장의 한 상인)
물가를 잡고 민생경제 잘 챙기겠다는 대통령의 ‘호언장담’에 대한 기대감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지난 5월 취임 2주년을 맞아 윤 대통령은 서울 서대문구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인 독립문 영천시장을 찾았다. 그는 치킨까스, 생선까스, 멍게, 게 등을 두루 구입하며 상인들과 스킨십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과 악수하고 나란히 사진 찍었던 시장 상인들을 최근 만나보니 여론은 싸늘했다. ‘배신감’이란 단어가 나올 지경이었다.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송모 씨는 “(고물가 등으로) 하루하루 살기 어려운 시국에 이런 일 생기니까 시장 사람들 모두 불안해 한다”며 “영천시장은 시청, 광화문하고 가깝다. 시위 열려 도로 막히고 사람들 시장에 안 나오면 어쩌나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지 한번이라도 생각했는지 궁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대문구에 있는 영천시장 진입구. 김도윤 기자 |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다음날, 시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고 한다.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TV 앞을 지키다가 가게 문을 닫고 하루 쉰 상인들도 여럿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나란히 서서 대화를 주고받고 사진도 찍었던 상인 양승민(30) 씨. 그는 일할 때 초록색 개구리 안대를 끼고 있는데 이 모습 그대로 언론에 사진이 나가면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양씨는 “(계엄 이후엔) 단골손님들이 그렇게 안 봤는데 왜 (대통령하고) 사진 찍어 줬냐고 하더라. 사진 찍었던 사실만으로도 가게 영업에 타격이 있다”며 “계엄 얘기 하나로 시장 장사도 겨울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영천시장에서 30년째 청과물 점포를 꾸려온 전태산(65) 씨는 ‘요즘 과일 시세가 어떤가’, ‘장사는 잘 되는지’ 등을 꼼꼼히 묻던 윤 대통령을 기억했다. 전씨는 “선거 때 (윤 대통령) 찍었지만 후회한다”며 “잘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독불장군식으로 하는 모습 보니 황당했고 이해도 안 된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어려운 경제보다 공포와 불안이 견디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이모(41) 씨는 “경제가 힘들다고는 해도 힘든대로 맞춰서 견디고 살면 된다”면서 “하지만 계엄으로 공포와 불안을 주니까 너무 실망스럽더라. 그게 민생에 조금이라도 도움되는 결정이었나”고 말했다.
서대문구 영천시장. 김도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