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 눈으로 밤 새운 유족들…“하루 지났지만 실감나지 않아”

TV뉴스속 화염 영상에 한숨·눈물바다
생존자 소식에 희망의 기다림이 절망으로
사망자 179명 공항내 임시 영안실 안치



29일 무안공항 추락사고가 발생한 현장을 찾은 사고 유가족들이 공항에서 주저앉은 채 오열하고 있다(위쪽). 30일 새벽 한 유족이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전광판에서 사망자 현황을 바라보고 있다. 무안=김성우·김도윤 기자


“잠을 어떻게 자요. 잠이 안 오죠.”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 발생 하루 뒤인 30일 오전 공항 청사 대기실에는 깊은 슬픔 만이 가득했다. 얼굴에 눈물자욱이 선명하게 남은 한 유족은 망연한 표정으로 사고 소식이 흘러나오는 TV만을 한없이 바라봤다. 그는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일부 유족들은 고인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바라보다 뉴스 속 화염에 휩싸인 사고 영상을 보고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30일 오전 6시 헤럴드경제가 찾은 무안국제공항 1, 2층에는 유족들의 휴식을 위한 임시 텐트 100동이 마련돼 있었다. 유족들은 새해를 앞두고 찾아온 황망한 참사 소식에 모두 기력을 잃은 모습이었다. 공항 대기실에 설치된 TV 화면 속에서 ‘랜딩기어 고장’, ‘버드스트라이크’ 등 사고 원인에 대한 뉴스 해설이 흘러나와도 유가족들은 말없이 화면만을 응시했다. “불쌍해서 어떡하냐”며 오열하던 한 유족은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일이 생긴걸까”라며 바닥에 주저 앉아 흐느꼈다.

광주에서 초·중·고를 모두 보낸 A(45) 씨는 이번 사고로 부모님 두 분을 모두 잃었다. 그는 “다섯 살 차이 나는 동생과 함께 남겨졌다”며 “하루가 지났어도 방금 전 일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A씨는 전날 신원 확인을 위해 유족 DNA 검사를 끝냈다. A씨는 이날 새벽에야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A씨는 “오늘 새벽 6시20분께 관계자로부터 아버지 신원이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이제 마지막 연락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의 시신은 어제 확인했지만, 아버지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비통한 심정을 밝혔다.

A씨의 부모님은 부부동반 여행을 떠난 길이었다고 한다. A씨는 “25일 밤 비행기로 출발한 크리스마스 여행이었다”며 “여행 중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는데, 카톡으로 연락한 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생존자가 1명 있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생존 여부조차 알 수 없어 너무도 괴로웠다”며 “처음에는 공항 직원이나 항공사 관계자가 아무도 없어서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도 정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번 사고 사망자에는 전남 영광군 군남면에 거주하는 배모(80) 씨 등 일가족 9명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배씨는 181명 탑승자 중 최연장자다. 헤럴드경제는 이날 공항에서 배씨의 아들을 만났다. 부모님 팔순 잔치를 보내드렸다가 이번 사고 소식을 들은 아들 배모(52) 씨는 이번 여객기 폭발 사고로 아버지와 어머니, 두 여동생과 조카 4명을 포함해 총 9명의 가족을 전부 잃었다. 그는 “아버지는 농사와 양봉 일을 하시며 30년 넘게 가정을 지키셨다”며 “자식 넷을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을 80세에 효도 여행으로 보내드렸는데, 이렇게 비극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배씨는 부모님이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마지막으로 통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는 “잘 다녀오시라고, 자식들 키우시느라 고생하셨으니 걱정마시고 편하게 푹 쉬고 오시라는 말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며 슬퍼했다.

배씨의 가족들은 전국에 흩어져 살았다. 그는 수원에, 큰 여동생은 광주에, 막내 여동생은 오산에서 거주했다. 배씨는 “작년 추석에 다 함께 모였지만, 올해는 봄에도 추석에도 모이지 못했다”며 미처 챙기지 못한 가족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배씨는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조카들이 꿈도 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며 “아버지는 평소 형제간 우애를 강조하셨다. 형제들끼리 항상 화목하게 지내려고 노력해 왔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헤어지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배씨는 사망한 가족의 신원 확인이 늦어지는 데 대해 안타까워 하며 조속한 수습을 바랐다. 그는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가족들이 있다. 조카 4명과 여동생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수습이 빨리 진행돼 하루빨리 절차를 밟아 보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배씨는 “내년 봄에 제주도로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전날 오전 11시30분께 사고 소식을 듣고 곧장 무안공항을 찾았다는 김모(22·전남 광주 거주) 씨는 “추락한 여객기에 어머니가 타고 계셨다”며 “작년 가을쯤 어머니가 위암에 걸리셔서 수술을 받으셨고 1년 동안 투병하다 완치돼 모처럼 친구분들과 여행을 가셨던 건데 이런 일이 발생해 너무나 참담하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최모(20) 씨는 때로는 친구였고 때로는 멘토였던 삼촌을 잃었다. 최씨는 “그저께 삼촌이 한국에 돌아오면 같이 영화보러 가자고 했었다”며 “맨날 잘 챙겨주시고 조카인데도 아들처럼 대해주셨던 삼촌”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건설업에 종사한 최씨의 삼촌은 한 달 전 출장을 떠났고, 이번에 출장을 갔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최씨는 삼촌과 군대 문제로도 자주 상의를 했다고 했다. 최씨는 “삼촌이 군대 잘 다녀오라고 해줬고, 이번에 선물을 사온다 했었다”며 “이제 그 선물이 뭔지도, 삼촌이 뭘 준비했는지도 확인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생 시절 중국 베이징, 고등학생 시절 베트남으로 삼촌과 여행을 다녔왔던 기억도 꺼냈다. 최씨는 “여행지에서 이것저것 설명해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렇게 삼촌을 못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왜 이렇게 된 건지, 왜 수많은 비행기 중에 삼촌이 탄 비행기여야 했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편, 현재까지 179명 사망자 중 현재까지 신원 확인이 완료된 사망자는 총 141명(오전 8시35분 기준)이다. 사망자는 무안공항 격납고 안에 설치된 임시 영안실에 안치됐다.

무안=이용경·김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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