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속도 붙는데 왜 역방향 착륙했나
3. 엔진 역추진 장치 작동했나 안했나
4. 활주로 화재 예방조치 할 수 없었나
5. 바다착륙은 왜 선택하지 않았나
소방대원들이 지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현장 인근을 수색하고 있다. [연합] |
지난 29일 오전 발생한 무안 제주항공 참사의 원인으로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과 제동장치인 랜딩기어(착륙 때 사용하는 바퀴) 미작동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버드 스트라이크와 랜딩기어 미작동 간 연관성이 거의 없다고 밝히면서 사고를 둘러싼 의문점은 커지는 실정이다. 국토부는 비행기의 블랙박스라 불리는 ‘비행자료기록장치(FDR)’를 확보했지만, 외형이 일부 손상된 채 수거돼 블랙박스 해독 작업에는 한 달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버드 스트라이크로 엔진 손상→랜딩기어 미작동?=국토교통부 브리핑과 목격자 증언 등에 따르면 랜딩기어가 작동되지 않은 채 비행기 몸통으로 착륙하는 동체착륙을 하기 전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1차적으로 엔진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관제탑에서 해당 여객기에 조류 충돌 주의를 한 지 2분 후 조종사로부터 메이데이(조난신호)가 들어왔다”고 설명했고, 구조된 승무원도 “조류 충돌로 한쪽 엔진에서 연기가 난 후 폭발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엔진 손상이 랜딩기어 미작동으로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권보헌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버드 스트라이크로 엔진 두 개가 모두 손상됐다면 항공기의 유압계통이 고장날 수 있다. 이 때문에 랜딩 기어를 내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토교통부는 “통상적으로 엔진 고장과 랜딩기어 고장은 상호 연동되는 경우는 없다”고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랜딩기어는 수동으로도 조작할 수 있다. 부기장 조종석 뒤 27cm 정도의 줄을 당기는 방식으로, 하나의 랜딩기어를 내리는데 약 20초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100피트 이하까지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으면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려, 조종사들이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았다는 걸 모르기는 어렵다.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복항 이후 역방향으로 착륙…180도 급선회 이유=원래 대로라면 공항 남쪽에서 북쪽으로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착륙해야 하지만, 사고 항공기(7C2216)의 착륙 경로는 그 반대였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하강하다 활주로 끝 시설물을 들이받은 것이다. 당초 사고기는 남→북 방향으로 착륙을 시도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다시 기수를 올려 복항을 시도했다. 그렇다면 정방향으로 착륙을 시도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하고 180도 급선회 한 후 역방향으로 착륙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복항을 하면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다시 01 방향(남쪽에서 북쪽)으로 착륙을 시도하는 게 맞는데, 그냥 짧은 쪽으로 관제탑하고 협의해서 착륙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역방향으로 착륙한 탓에 뒷바람을 맞게 됐는데, 이게 속도를 줄이지 못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오히려 가속도가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기는 동체 바닥이 활주로에 닿은 채 약 10초간 직진하다,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결국 활주로를 이탈하는 오버런(overrun) 끝에 공항 끝단의 외벽을 들이받고 화염에 휩싸였다.
▶스피드 브레이크, 엔진 역추진 작동했나=항공기에는 크게 3가지 브레이크가 있다. 랜딩 기어, 스피드 브레이크, 엔진 역추진이다. 스피드 브레이크는 날개의 일부분이 접혀 세워지는 과정에서 공기 저항을 만들어 감속 역할을 한다. 이번 사고의 경우 랜딩기어도 내려오지 못했기 때문에 조종사가 직접 스피드 브레이크를 작동시켜야 했을텐데, 이 과정이 있었는지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엔진 역추진이란 출력 방향을 반대로 돌려 나가는 힘을 줄이는 방식이다. 사고 현장 영상 상 오른쪽 엔진에 역추진을 작동시킨 흔적이 보이지만, 보다 정밀한 감식이 필요한 상황이다.
▶연료 덤핑 못하고 소화약재 못 뿌려=이번 사고에서 승객이 전원 사망한 이유로는 비행기 착륙 당시 충돌과 함께 거대한 불길이 솟구치는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통상 항공기는 위급한 착륙이 필요한 경우 항공유를 상공에서 뿌린 뒤 착륙하게 된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인명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기는 연료 덤핑을 하지 않고 동체 착륙을 시도했다. 이는 사고기의 기종인 보잉사의 B737-800은 연료 덤핑을 가능케 하는 장치가 부착돼 있지 않아 연료덤핑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대략 7시간여를 운항, 연료의 상당 부분을 소비해 실제 남은 항공유가 그리 많진 않았을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활주로에 폼 소화약재로 화재를 예방했어야 하는 조치는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함승희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관제탑과 교신을 하면서 비상상황을 알렸을텐데 그렇다면 공항소방대가 와서 대기를 하고 착륙시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폼 소화약재를 뿌렸어야 하는데 그런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 바다착륙 고려 안 했나 =‘바다 착륙’을 시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무안공항은 바다에 면해 동서로 활주로(2.8km)가 뻗어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항공기 조종사가 ‘비상상황’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바다 착륙을 감행했을 경우 화재로 인한 사망자를 줄일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실제로 한반도 서남해 바다의 경우 수심이 비교적 얕고 개펄이 다수 분포해 있다.
지난 2009년 미국 뉴욕 허드슨강 불시착 사고(US 에어웨이스 1549편) 당시 해당 항공기는 이륙 직후 철새 무리와 충돌했고 이후 엔진이 멈췄다. 이 때 조종사는 허드슨 강에 동체 착륙을 강행했고, 탑승객 전원이 생존한 ‘허드슨강의 기적’ 사례도 존재한다.
그러나 바다착륙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을 비난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일단 비행기는 시속 400km안팎의 속도로 착륙을 하게 되는데, 이 때 비행기가 바다에 착륙을 하게 될 경우 물의 표면 장력으로 인해 기체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이는 곧 동체가 부러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동체가 부러지게 되면 다수 승객이 비행기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 2차 사고로 인해 사망자수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당시 복항 후 180도 기수를 돌리는 등 급박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바다착륙 자체를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원경 초당대학교 항공운항과 교수는 “랜딩기어 유압 계통이 작동되지 않아 조종사가 어쩔 수 없이 동체 착륙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라며 “인근의 바다로 이동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바다도 표면장력이 있기 때문에 콘크리트처럼 딱딱하다. 그래서 활주로가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