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증시 폐장일인 3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코스피, 코스닥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5.28포인트(0.22%) 내린 2,399.49에 장을 마쳤다. [연합] |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2024년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투자 규모가 173조 원에 달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내 증시의 부진과 맞물려 미국 증시에서 높은 수익률을 보이자 투자 이민 현상이 가속화된 결과다. 새해에도 개인 투자자들의 ‘미국 러시’ 현상이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3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전날인 30일 기준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1178억6833만 달러(한화 약 173조 원)로 전년 대비 73.27% 증가했다. 관련 데이터 집계가 시작된 2011년 이래 가장 큰 증가 폭으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약 318조 원의 절반을 뛰어넘는 규모다.
하반기 반도체 등 주력 업종의 경쟁력 약화 우려와 수출 둔화세는 국내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떠나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반면 미국은 AI(인공지능)를 중심으로 한 빅테크 기업들이 가파른 성장세를 자랑했다.
월별 데이터를 살펴보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인 10월부터 미국 주식 투자 이민 행렬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경제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뉴욕증시에 퍼지면서 투자 이민 행렬이 급격히 확산했다.
지난 9~10월 미국 주식 보관액은 900억 달러선을 유지하며 큰 변동 폭을 보이지 않았다. 미국 증시 투자가 급등한 것은 11월부터다. 지난 11월 미국 주식 보관액은 전월(910억6587만달러) 대비 16.55% 급등하며 1061억4337만 달러를 기록했다.
12월에는 계엄령 선포와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해지며 미국 주식 보관액은 1178억6833만 달러로 정점을 찍었다.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정치와 경제 환경의 불안정성에 대한 대안을 찾으며 미국 시장으로 몰린 결과다.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미국 주식은 테슬라, 엔비디아, 애플로 나타났다. 테슬라는 연 73.70% 엔비디아는 176.60%, 애플은 32.7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내 주요 기업인 삼성전자(-32.2%), SK하이닉스(22.8%), LG에너지솔루션(-18.5%)보다 월등히 높은 수익률을 자랑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미국 기술주 외에도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 관심을 보였다. 대형 기술주 위주인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Invesco QQQ Trust Series 1 ETF)와 QQQ의 3배 레버리지 상품인 ‘프로셰어스 울트라프로 QQQ ETF’(ProShares UltraPro QQQ ETF)가 보유 상품 상위 10위권 내에 포함됐다. TQQQ는 투자 위험이 너무 커 국내 금융사에서는 유사 상품 출시가 아예 금지돼 있지만 미국 기업 주식과 같게 취급된다.
주식뿐 아니라 미국 채권 시장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채권 보관액은 112억7561만 달러(한화 약 16조5717억 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기침체 우려로 인해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가 감소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국 국채에 자금이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과 더불어 AI를 중심으로 한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자산이 더 큰 비중으로 해외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증시 역시 트럼프 트레이드에 따른 변동성이 크고 이미 증시가 과열된 만큼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백찬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기대와 불확실성 공존한다”며 “우선 무역 갈등 및 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부각되고 이에 단기적으로 금리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 높은 반면, 미뤄졌던 투자의 재개와 감세 정책에 따른 경기 개선 기대감도 상존한다”고 했다. 이어 “이에 경기 펀더멘털이 개선된다는 점에서 밸류에이션 부담에도 불구하고 주가의 완만한 우상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혁신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 증시는 훌륭하지만 비싸 보이고, 한국증시는 걱정이 많지만 싼 종목들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 주식 등으로 한국 가계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미국 주식이 늘 불패의 자산이었던 것은 아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많이 오른 자산일수록 더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