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사고 절반 이상이 ‘조종 과실’ 결론
2010년대 대형 사고 57%도 ‘인재(人災)’
사고 조사 시작되면 ‘사람’ or ‘기계’ 문제
사고기 랜딩기어 문제 多… 최다 판매 기록도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 등이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무안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다 17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에 대한 본격적인 사고원인 조사가 시작됐다. 국토교통부, 항공사, 항공기제조사,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까지 가세한 대규모 조사단이 사고의 정확한 원인 규명에 착수한다. 결국 결론은 사람의 실수였느냐, 불가항력적인 사람에서 사람이 대항키 어려운 복합적인 문제가 결부돼 나타난 것이냐로 귀결될 전망이다. 조류충돌이 주요 사고 원인으로 꼽히지만 매년 수만건의 조류충돌이 일어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정적인 이유는 아닐 수 있다. 사고 당시의 기상 상황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조종사 단체들은 ‘섣부른 추측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10년 단위 항공사고 발생 원인 [플레인크래시인포닷컴] |
31일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02년부터 2023년까지 발생한 한국 국적기의 사고 건수는 모두 96건이다.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72명이었다. 이번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는 지난 20년간 발생한 항공기 인명피해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낸 사고로 기록될 전망이다. 같은 기간 사고 원인을 분석한 결과 조종과실이 50건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 비중이 조종사의 실수로 발생했다. 이외에도 정비불량이 12건 기타가 19건, 조사중이 12건으로 조사됐다.
해외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플레인크래시인포닷컴’에 따르면 지난 2010년대 발생한 주요 항공기 사망사고 49건 가운데 조종사 과실로 인한 사고 건수는 28건(57%)으로 조종사 과실 비율이 가장 컸다. 이외에는 기계적결함이 10건(21%), 날씨 5건(10%), 테러 4건(8%)), 기타 2건(4%) 등 순이었다. 지난 2000년대의 경우 조종사 과실 비율이 전체 사고건수 97건 가운데 48건으로 50% 가량을 차지했고, 기계적결함이 22건(23%), 날씨가 8건(8%), 테러 9건(9%), 기타 10건 (10%) 등이었다.
역대 최악의 항공기 사고로 기록돼 있는 테네리페 대참사 역시 인재로 판명났다. 사고는 1977년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 섬 로스로데오 공항에서 발생했는데 KLM 항공과 팬암 항공사 두대의 보잉747 비행기 두대가 활주로에서 충돌하면서 벌어졌다. 당시 사고는 짙은 안개로 인해 시정이 좋지 않았고, 여기에 관제탑과 조종사 사이의 소통이 원활치 않은데다 조종사들이 착각을 하면서 발생했던 사고로 기록돼 있다. 사망자는 583명이다.
지난 2023년 1월 15일 네팔 포카라 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사고로 모두 72명이 사망했던 사고 역시 ‘인적오류’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으로 알려진 포카라는 평소에도 이착륙이 까다로운 곳으로 악명이 높다. 당시 사고는 허술한 장비점검 등이 사고 원인으로 알려졌는데, 사고기에는 한국인 2명도 탑승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이같은 조종사 실수는 여러 복합적인 문제들이 결부돼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김정빈 한국교통대학교 교수는 2021년 ‘휴먼에러 사례연구’ 논문에서 “항공사고 조사결과 발표된 사고 원인은 대부분 인적 오류로 인한 사고지만, 다양한 위험요소가 복합적으로 결합해 일어나고 있으며, 이미 알려진 위험요소들이 다른 위험요소들과 경합하지 못하도록 이를 제거하거나 회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항공 사고의 경우도 조류충돌 또는 조종사의 랜딩기어 오작동 그리고 동체착륙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관측 등 다양한 사고 원인들이 제시되고 있다. 공항 활주로 끝에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이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과, 바다에 착수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외에도 제주항공은 정비사들이 과로에 시달려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공교롭게도 사고 다음날 랜딩기어 이상으로 제주항공 소속 또다른 B737기가 회항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기체결함’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조종사단체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지금 제시되는 각종 이유들이 향후 조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는 “일부 언론과 비전문가의 확인되지 않은 사실 보도로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하고 있다. 사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공식 발표된 사실에 근거한 보도가 이루어지길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조종사노동조합연맹(KPUA) 역시 “섣부른 추측이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유포되는 것을 강력히 경계한다”고 했다.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종합스포츠파크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합동분향소에서 추모객들이 묵념하고 있다. [연합] |
사고기를 조종했던 기장 A씨는 학사공군장교 출신으로 40대 중반의 나이에 비행 운항 시간이 6800시간을 넘는 베테랑 조종사로 확인됐다. 기장이 된지는 5년째다. 사고기 부기장 B씨의 경우 비행시간이 1650여 시간으로 부기장이 된 지 1년여가 지났다. 이같은 기장과 부기장의 충분한 비행 경력은 날씨가 쾌청하고 시정이 밝은 휴일 오전 9시,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동체착륙을 선택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버드스트라이크로 인한 불가항력의 상황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추정이다. 이를 두고 그래서 기체 이상 가능성 또한 가능성이 열려있다. 국토부는 사고기(B737-800)에 대한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 동일 기종은 제주항공이 39대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티웨이항공 27대, 진에어 19대, 이스타항공 10대, 에어인천 4대, 대한항공 2대 등이다. 항공 전문매체 ‘심플 플라잉’에 따르면 지난 29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를 출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던 해당 기종의 여객기는 오슬로의 다른 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유압장치 고장이 원인이었는데, 엔진에서 연기가 났다는 현지 보도가 나온 상태다.
또 지난 10월엔 에어인디아익스프레스의 B737-800이 이륙 직후 랜딩기어 문제로 2시간반 만에 회항한 일도 있었다. 랜딩기어를 접지 못한 비행기는 상공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다가 결국 출발지인 인도 티루치라팔리 공항으로 되돌아갔다. 지난 7월엔 영국 TUI에어의 B737-800이 랜딩기어 문제로 그리스 코르푸 공항으로 향하던 중 맨체스터로 회항했다. 다만 B737-800 기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기종이다. 같은 기종이 제주항공 사고기와 유사 부위에 이상이 발생했다는 점만으로, 기체 이상이라 판단하기엔 현재로선 이르다는 분석이 많다.
이에 조종사나 기계 결함이 아닌 버드스트라이크로 인해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의 상황에서 빚어진 참사로 결론이 날 가능성 또한 여전히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