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멕시코에 ‘25% 부과’ 조건부 압박
중국엔 60%+10%…무역전쟁 재점화 예고
‘컨트롤 타워 부재’ 한국, 미국에 휘둘릴 수도
2019년 12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쥐스탱 트뢰도(오른쪽) 캐나다 총리가 영국 왓퍼드의 그로브 호텔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달 취임하면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해 양국간 긴장감을 높였다. [게티이미지] |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관세다. 관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10월 15일(현지시간) 미 일리노이주 시카고이코노믹 클럽에서 열린 대담에 참석해 한 말이다.
오는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트럼프발 통상전쟁 시대의 막이 오를 전망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기반해 철저한 거래적(transactional) 동맹관을 적용하는 트럼프는 ‘관세폭탄’을 이용해 세계 경제에 보호무역주의를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 시절 선거 유세 기간에 모든 국가에 10~20%의 보편관세, 중국에는 6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25%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우방국이라고 해서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적대시하는 중국에는 관세 60%에 추가 10%의 관세를 물릴 것이라는 구상도 공개했다.
북미 3국은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따라 경제 동맹을 맺고 있어 의존도가 크다. 캐나다는 총 수출의 76%, 멕시코는 72%를 미국에 의존 중이다. 트럼프 2기 정부가 두 나라에 관세를 매기면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의 ‘주변국 25% 관세 부과’ 발언은 마약의 일종인 펜타닐과 이민자의 미국 유입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부과하겠다는 조건부 계획이다.
이러한 트럼프의 폭탄 발언에 ‘쓰리 아미고스’(세 친구)라 불리던 3국 정상의 관계에도 일시에 충격파가 일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지난해 11월 29일 트럼프 당선인 자택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찾아가 만찬을 하며 현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미국 간 국경 상황과 미국·멕시코 간 국경 상황은 비교할 수 없다’며 캐나다를 멕시코와 동일선상에 놓고 판단하지 말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같은 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트뤼도 총리의 ‘모욕적 언급’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교역 파트너에 대해 존중하면서 도발에 빠지지 않겠다”면서도 “캐나다는 스스로 마약 펜타닐 소비에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를 통해 미국에 반입되는 펜타닐 비율은 0%이고 펜타닐 대부분이 멕시코를 통해 반입된다고 맞받았다.
그러자 셰인바움 대통령은 “캐나다에 내년에 선거가 있는데, 항상 지적하고 싶은 건 멕시코를 선거운동 일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지지율이 낮아 고심 중인 트뤼도 총리를 다시 겨냥한 것이다.
캐나다는 ‘트럼프 충격’에 내홍에도 빠졌다.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대응 문제를 놓고 트뤼도 총리와 충돌해 12월 16일 전격 사직서를 냈다.
트럼프의 관세 위협은 ‘세 친구’에 국한되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인은 12월 1일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가입한 경제 협력체 브릭스(BRICS)를 향해 관세 100%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들 국가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경우 100% 관세로 미국 수출 자체를 아예 막아버리겠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중국은 더 강해져 돌아온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함께 통상 환경의 격변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 시절인 지난 7월 공화당 대선 후보직을 수락하면서 “중국이 우리에게 맞추지 않으면 중국산 자동차에 100~2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미국에서 중국산 차를 팔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을 향해 사실상의 저주를 퍼부었다.
이성원·피터 워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달 발표한 ‘트럼프 재집권 시 미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 전망과 대응’ 보고서에서 향후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대해 “공격적 관세, 기업별 제재, 전통적 외교 절차를 우회하는 방식의 비정례적·수시적·거래적 접근이 예측된다”고 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트럼프 1기 당시인 2017년 6.8%, 2018년 6.7%를 기록하다가 관세 전쟁이 본격화한 2019년 6.0%로 꺾였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2년 3.0%까지 떨어졌고, 지난해 5.2%로 반등했으나 올해는 3분기까지 4.8%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취약해진 경제 상황에서 미국이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의 타격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다만 미중 통상 전쟁에서 첨단 기술 영역이 경쟁의 핵심으로 떠오른 점은 4년 전과 다른 변수로 꼽힌다.
중국 기업들은 자체 개발과 우회 무역으로 첨단 반도체를 포함한 기술 통제를 뚫고 있고, 당국의 집중 육성 속에 전기차·배터리·태양광 등 신기술 분야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
미국이 인공지능(AI) 등에서 여전히 첨단 분야를 주도하고 있지만, 자국 내 출혈 경쟁에서 살아남은 중국 기업들은 규모가 큰 내수 시장과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세계 경쟁력을 갖춘 ‘모범 사례’를 하나씩 비축하고 있는 양상이다.
대만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류징칭 대만 국가발전위원회(NDC) 주임위원(장관급)은 12월 5일 입법원(국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대만은 실보다 득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정책을 보건대, 대만 기업들에게 더 많은 주문을 받을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수뇌부 교체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자국 TSMC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묻는 질문에 “대만 기업은 미국 업체의 ODM(주문자 위탁 생산) 서비스를 주로 제공하므로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대만은 미국의 중국 견제에 협력하면서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안보 협력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은 트럼프 당선인이 군사 원조 관련 추가 부담을 요구할 것에 대비해 미국산 첨단 무기 구매를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쑤쯔원 대만 국방안전연구원(INDSR) 연구원은 미 대선 직전인 11월 5일 “누가 차기 미 대통령에 당선되느냐에 따라 미국의 대 대만 무기판매 정책이 달라질 것”이라며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미국산 무기의 대만 판매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한국 또한 트럼프 당선인을 의식해 미국산 원유와 가스 수입 확대, 국내 기업의 미국 현지 투자 등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한국을 글로벌 반도체 제조의 핵심 국가로 간주하고 중국 견제에 공동 보조를 맞추려 한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한국은 강점이 있는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해 중국이 배제된 시장에서 반사 이익을 누릴 수도 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무역 불균형이 지속되면 미국 정부는 무역 상대국에 수지 개선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과의 무역에서 대규모 흑자를 내는 국가로는 중국이 1위, 멕시코가 2위이며 한국은 8위다.
한국 정부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국내 업체에 미국산 에너지 구매 비중을 늘려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 기대만큼 구매 비중이 늘어날 지는 미지수다.
앞서 트럼프 1기 출범 시기인 2017년에도 한국 정부는 국내 업체에 원유 구매처를 다변화하자며 미국산 에너지 구매 비중을 늘릴 것을 간접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극적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올해 한국은 가스 수입의 약 11%, 석유 수입의 17%가 미국산이다.
계엄령 사태로 촉발된 한국의 탄핵 정국이 이러한 상황 대응에 불리하게 작용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 의회 산하 싱크탱크인 의회조사국(CRS)은 지난달 23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 관세, 주한미군 감축,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의 측면에서 한국에 강한 압박이 예상된다며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한국이 일방적으로 휘둘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CRS는 보고서에서 “2024년 12월 한국은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에 대한 미국의 정책 등 미국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영국 경제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해 12월 24일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한국 기업들이 대응 체계 미비로 인한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미국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한 한 기업 관계자는 FT에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할 때, 정부에서 우리를 대변해줄 사람이 없다”라며 “지금 당장 투자를 철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한국 내 리더십이 정상화할 때까지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에 대한 관세 부과,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보조금 지원 문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 등 현안에서 속도전에 나서지 않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대미외교의 핵심이 된 셈이다. 김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