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노래한 ‘소리의 마녀’ 한영애 “구원은 무대에… BTS 듣고 지드래곤 부른다”

데뷔 50주년 맞은 한영애 간담회
김태원과 10년 약속 ‘스노우레인’
오는 6월 반세기 음악 여정 콘서트

 

데뷔 50주년을 맞은 ‘소리의 마녀’ 한영애 [나무뮤직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나의 구원은 무대였어요.”

한창 노래하던 30대 후반, 한영애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음악하는 데에 뜻이 있어?” 그때 얻은 답은 지금까지도 흔들림이 없었다. 반세기 노래 인생을 지탱해 준 곳. 그는 “늘 무대가 처음이고, 그다음이 음악이었다”며 “구원은 무대에 있었다. 무대를 보면 늘 이 자리로 올 수 있었다”고 했다.

노래는 천생 ‘연극쟁이’로 살 줄 알았던 한영애에게 ‘특별한 손님’처럼 찾아와 운명이 됐다. 무대를 신성시하던 시절 연극을 배웠고, 푸릇한 청년 시절 내내 무대에 섰다. “무대에 오를 땐 늘 새 옷, 새 신발로 갈아 신었다”며 “무대 위에선 우리가 각자의 삶의 주인공인 것처럼 내가 이곳의 주인공이고 내 삶의 조물주가 된다”고 했다. 한영애의 무대는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고, 증명하는 곳이었다.

구원이자 해답이었던 무대 위 한영애는 지난 50년을 돌아보며 “부끄럽다, 장하다”는 두 개의 단어로 압축했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덧붙인다.

”이 속엔 ‘저는 조금 더 할 건데요’라는 말이 포함돼 있어요.”

한국 대중음악사의 독보적 음악 서사를 구축해 온 ‘소리의 마녀’ 한영애가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오랜 시간을 눌러 담은 신곡을 내며 기자들과 만난 그는 “아직도 무대가 고프고, 노래가 고프다”고 말했다.

한영애 [나무뮤직 제공]

50주년의 포문을 여는 신곡 ‘스노우레인(SnowRain)’은 밴드 부활의 김태원과의 ‘10년 약속’이 결실을 본 곡이다. 10년 전 대기실에서 “선배님께 맞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던 김태원의 다짐은 그의 투병 생활을 지나 숙제처럼 묵혀두다,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한영애는 이 곡을 “아름답고 시리고 아득하다”고 했다. 그는 “노랫말 마지막에 ‘모든 기억이 늘 고맙다’는 대목을 보고 너무 행복했다”며 “가사를 쓴 이가 생각한 것 이상까지 분석해 보는 과정이 재밌었다”고 돌아봤다. 한영애에게 노래는 그저 ‘부르는 것’이 아닌 읽고 해체하고 다시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이날 영상통화로 깜짝 등장한 김태원 역시 “한영애는 예술가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진정한 아티스트”라며 경의를 표했다.

1976년 포크 그룹 해바라기로 데뷔, 신촌블루스 1기 멤버로 활동한 그는 독특한 음색으로 모든 노래를 ‘한영애화’하는 ‘소리의 마녀’였다. 꽤 마음에 드는 별칭이라고 한다. 그는 “소리에 관심이 많아 나쁘지 않게 들린다”며 “무서운 마녀가 아니라 빗자루 타는 마녀, 코믹하지만 바른 소리 가끔 하는 그런 마녀이고 싶다”며 웃었다.

한영애의 히트곡이 숱하다. 오디션 프로그램 단골 곡인 ‘누구 없소?’, ‘코뿔소’, ‘조율’ 등은 시대를 초월한 명곡으로 회자한다. 이 곡들이 담긴 솔로 2집 ‘바라본다’는 그가 50년 노래 인생을 이어갈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그는 “1집 땐 ‘노래는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으며 녹음하고, 프로듀서 선배가 수집한 곡을 불러 뭔가 답답한 마음이 있었다”며 “2집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 앨범”이라고 했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소리의 마녀’ 한영애 [나무뮤직 제공]

장장 50년, 한영애의 노래 인생은 결핍과 열망의 연속이었다. 그는 최근 의상 디자이너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스스로에게 ‘한영애, 너 원 없이 노래해 봤니?’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아직도 무대가 고프고, 노래가 고프다. 오늘까지는 목소리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으니까 원 없이 노래하고 싶다”는 갈망을 들려줬다.

50주년 무대에서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확장된 ‘소리의 세계’는 더 과감해졌다. 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감각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요즘 유행하는 곡들을 듣고 있다”고 했다.

최근 제주에 갔을 땐 “2박 3일 동안 방탄소년단의 노래만 들었다”고 했다. 다가올 6월, 50주년 콘서트( 6월 13~14일, 우리금융아트홀)에선 지드래곤의 ‘드라마(DRAMA)’를 부를 예정이다. 한영애는 “지드래곤에게 전해달라, 그 노래 부를 거라고. 밴드로 만들면 재미있는 버전이 나올 것 같다”며 웃었다.

음악 환경과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한영애는 “록과 포크 장르의 곡에서 많이 쓰는 ‘8분음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시대”라며 “그렇다고 제가 시대에 뒤처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중 역시 2020년대에도 1950~60년대 음악을, 다양한 세대의 노래를 거리낌 없이 좋아한다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이가 있는 가수가 젊은 세대 앞에 서는 것을 기획자나 사회적 통념이 쉽게 허락하진 않지만, 음악으로 얼마든지 소통하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가져본다”고도 했다.

무대와 음악에 인생을 걸었지만, 그는 정작 자신의 50년은 대단치 않았다고 말한다.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고, 산책하고, 전시를 가는 모든 것“이 음악의 과정이라는 그는 “무엇을 배우겠다든지, 어디까지 도달해야겠다든지 하는 굵직한 생각 없이 달려왔다”고 반추한다.

“저에게 중요한 건 질보다 양이예요. 원 없이 노래하자, 전 계속 노래할 거고요. 목소리 보존을 위해 열심히 잘 먹고 잘 잘 거예요. 많은 분과 오래도록 함께 놀고 싶습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