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A씨 승소→2심 보험사 승소
대법, A씨 측 승소 취지로 판단
대법원. [연합]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같은 보험사와 여러 보험 계약을 체결한 경우 일부 보험계약에 대해 직업변경 사실을 알리지 않았더라도 보험금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현대해상은 “보험금을 깎아서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고 발생 6년 만에 나온 대법원 판결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오경미)는 A씨가 현대해상화재보험을 상대로 “보험금 1억 2000만원을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A씨 측 승소 취지로 판결했다. 앞서 2심은 A씨 패소로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원심(2심)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깨고, 다시 판단하라고 했다.
A씨는 지난 2006년 경찰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현대해상 상해보험에 가입했다. 이후 2015년 A씨는 직업을 화물차 운전기사로 바꿨고, 2017년에 현대해상 운전자보험을 추가로 들었다.
A씨는 보험을 추가로 가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직업이 여전히 경찰관으로 기재된 걸 확인했다. 그는 운전자보험 담당 보험설계사에게 “직업이 바뀌었다”고 통보했다. 현대해상은 2017년 11월부터 직업 변경에 따라 증액된 보험료를 받았다.
양측의 갈등은 2018년 9월에 A씨가 교통사고로 경추 부위에 손상을 입으면서 불거졌다. A씨는 사지마비, 배변 장애 등의 장해를 입었다. A씨의 가족은 보험사에 기존에 들어놨던 상해보험을 근거로 4억원 상당의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현대해상에선 1억원을 깎아 3억원 정도만 지급했다.
현대해상은 A씨가 직업변경 사실을 서면으로 보험사에 알리지 않은 사실을 문제 삼았다. 현대해상 측에선 “A씨가 상해보험과 상관 없는 운전자보험 보험설계사에게 구두로만 직업이 바뀐 점을 통보했다”며 가입자의 의무를 위반했으므로 보험금 전체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상법에 따르면 보험자는 직업변경 등으로 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된 경우엔 이를 지체없이 보험사에 통지해야 한다. 이를 게을리한 경우 보험사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이미 지급된 보험금을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1심에선 A씨 측이 이겼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제207민사단독 경정원 판사는 2021년 6월, ”A씨는 직업이 변경된 사실을 운전자보험 보험설계사에게 명시적으로 고지했다”며 “이미 현대해상 측에 직업변경 사실이 도달했는데도 A씨가 재차 서면으로 이를 통지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반면 2심에선 A씨 측이 졌다. 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2-2민사부(부장 김창현)는 2022년 5월, 현대해상이 A씨에게 보험금을 추가로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두 보험계약의 회사가 모두 현대해상이라고 해서 A씨의 직업이 변경된 사실을 현대해상이 알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상해 보험계약의 담당자와 운전자 보험의 담당자도 다르며 현대해상이 각 부서의 업무를 당연히 연계해 자료를 공유받을 것이라고 볼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현대해상이 보험금 전액을 지급하는 게 맞다며 2심 판결을 깨고,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현대해상이 보험설계사로부터 직업 변경 사실을 전달받고 내부 자료에 전달받은 내용을 입력해 문서화했다”며 “A씨가 서면으로 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통지 효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A씨로선 담당 보험설계사에게 직업 변경 사실을 통지하면 피보험자 정보를 공유하는 현대해상에게 통지가 이루어진다고 믿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원심(2심)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2심 판결을 깨고,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하나의 보험회사에 대해 여러 보험 계약을 체결한 경우 직업변경 등 통지의무를 이행했는지 여부에 대해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한 것”이라며 “만약 이 사건과 달리 보험사가 달랐다면 직업변경 사실을 알릴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이 거절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