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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코 록카쿠 개인전 ‘이름 없는 감정의 산(Mountains of Nameless Emotions)’ 전경. [쾨닉 서울]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최근 몇 년 사이 일본의 젊은 현대미술 작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아야코 록카쿠(43)다. 록카쿠는 몽환적인 형광 색채와 손가락 끝 터치로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내는 ‘꿈의 화가’다.
그의 화폭은 마치 아이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처럼 단순하고 순수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어린 시절에 꾼 저마다의 생생한 꿈을 떠올리는 감성이 깃들려 있다. 그의 캔버스 앞에서 일본 대중 문화를 관통하는 키워드 ‘카와이(かわいい·귀엽다)’가 직관적으로 읽히면서도, 그 자체로 모든 걸 설명하기엔 부족한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적 동요를 느끼게 되는 이유다. 바로 그 점이 수많은 젊은 컬렉터들을 매료시켜 요즘 같은 미술시장 불황기에도 그의 작품이 수억 원을 호가하는 인기작으로 거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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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코 록카쿠, 무제, 2023. [쾨닉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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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만난 아야코 록카쿠. 이정아 기자. |
최근 서울 이태원동 쾨닉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만난 록카쿠는 세상의 떠들썩한 축하와 관심에도 흔들림 없이 차분해 보였다. ‘성공한 젊은 작가의 기분’을 묻는 말에 “내 작품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나 행복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담담히 말하는 그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스무 살의 나이에 독학으로 그림을 배워 30대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록카쿠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강렬한 색감이다. 형광 분홍을 주 색채로 한 밝은 노랑, 선명한 파랑 등 대담한 색감 조합이 그의 시그니처다. 그의 그림에는 마치 동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여자아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령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기묘한 생명체들이 눈에 띄는 색감에 파묻힌 듯 아닌 듯 존재를 오묘하게 드러낸다. 색을 선정한 배경에 대해 록카쿠는 “형광빛 물감을 쫙 펼쳤을 때 기분이 고양되는 걸 느꼈다”며 “나만의 생각을 발산하는 색으로 특히 형광 분홍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그는 붓 대신 맨손에 아크릴 물감을 직접 바르고 몸의 움직임을 따라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도 유명하다. 맨손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록카쿠는 “손에 묻은 물감을 떼려고 옆에 둔 택배 상자에 손을 비비게 됐다”며 “그런데 그때의 촉감이 지금도 강렬하다. 그때부터 붓이 아닌 손끝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전했다. 다만 최근에는 수술용 장갑을 끼고 작업을 그리는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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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코 록카쿠 개인전 ‘이름 없는 감정의 산(Mountains of Nameless Emotions)’ 전경. [쾨닉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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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매만지고 있는 작가의 모습. [쾨닉 서울] |
사전 구성이나 드로잉 없이 즉흥적인 회화 작업을 하던 록카쿠는 최근 들어 도자기, 청동, 유리를 사용한 조각 작업이 주는 재미에 푹 빠졌다. 쾨닉 서울에 열린 개인전에서는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입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직물을 하나하나 손으로 자르고 연결해 표현한 거대한 산과 토끼 등이다. 작품 제작을 위해 록카쿠는 한 달 반가량 서울에 머물면서 일주일에 서너번씩 동대문 천시장을 찾아 재료를 구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작가가 스페인의 마요르카에서 레지던시 활동을 하던 무렵, 산에 둘러싸여 생활했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작가는 “한국 담당자와 화상채팅을 하던 중에 그의 화면 뒤편으로 남산이 보였고, 그 산을 보면서 기분이 순간 감성적으로 바뀌었다”며 “근본적으로 커다란 감정의 동요나 그 축적에서 출발한 작품인데, 이 점을 형용할 만한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를 반영하듯 전시명은 ‘이름 없는 감정의 산(Mountains of Nameless Emotions)’이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