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사직서 제출” ‘엄친딸’ 포기하더니…‘신발 사이즈’에 꽂혔다, 왜?

이선용 펄핏(Perfitt) 대표.[펄핏 제공]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그 운동을 유지하려 한다’

물리학자 뉴턴이 남긴 ‘관성의 법칙’은 비단 물체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속도가 붙은 인생을 멈춰 세우는 것에도 적지 않은 힘이 들어간다.

때로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려, 단순한 운동 에너지 그 이상의 힘을 쏟기도 한다. 통상 나아가는 방향이 ‘옳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그렇다. 좋은 학벌, 좋은 회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10년 전 이선용 펄핏(Perfitt) 대표는 누구보다 ‘옳은’ 프로필을 갖춘 20대 청년이었다. 높은 연봉과 우수한 복지를 자랑하는 글로벌 IT회사에 사표를 던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관성에 맞선 첫 도전 후, 다시 찾은 길은 순탄치 않았다. 발을 내딛는 족족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속도 붙은 인생을 멈춰 세우기만 여러 번, 비로소 찾은 게 ‘신발 사이즈’다.

지난해 5월 프랑스 비바테크(VivaTech)에 참석한 이선용(오른쪽) 대표가 펄핏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펄핏 제공]


400조원 규모의 신발 시장에도 거대한 관성이 존재한다. ‘신발은 신어 보고 사야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신발은 유독 사이즈 선택이 어렵다. 사람은 제각기 다른 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신발은 규격화된 기성품이 대다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전 세계 신발 판매 시장의 뿌리 깊은 관성을 극복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소개했다.

2015년에 설립된 펄핏은 비대면으로 발 사이즈를 측정하고, 이에 걸맞는 신발 사이즈를 추천하는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다. 신어보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내 발에 딱 맞는 제품을 고를 수 있게 도와준다. 48만명의 ‘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도의 인식 측정 시스템을 갖춘 영향이다.

일반 소비자들도 펄핏의 솔루션이 탑재된 쇼핑몰에서 ‘AI 사이즈 추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과정은 어렵지 않다. 여러 각도의 발 사진을 촬영하는 게 전부다. 1분 남짓 측정이 끝나면,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 데이터와 결합해 사이즈 추천 결과가 나온다.

이 대표는 “규모가 큰 거대 시장인 만큼 관성이라는 게 많이 고착화 돼 있었다”면서 “모두가 묵인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개선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공·경력도 포기…결국 ‘신발 사이즈’ 추천


이선용 펄핏(Perfitt) 대표.[펄핏 제공]


‘당연한 것’에 대한 도전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별명이 ‘사장님’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또래들을 이끄는 모습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 영향이었을까. 청소년기부터 ‘창업가’를 꿈꿨다. 정확히는 모두를 매료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전형적인 ‘엄친딸(엄마친구딸)’의 길을 걸었다. 어린 시절 유학을 경험했고, 국내 굴지의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에는 글로벌 IT회사에서 대기업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경쟁에서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나아갔고, 보통의 ‘경쟁사회’ 레이스에서 우위를 점했다.

돌연 경주를 멈춘 건 입사 3년이 지난 시점. 이 대표는 ‘워커홀릭’으로써 쌓은 경력을 한 번에 포기했다. 남들보다 속도가 빨랐기에, 멈춰 세우는 데 드는 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결심은 견고했다.

펄핏 솔루션을 활용한 발 사이즈 측정 모습.[펄핏 제공]


이 대표는 “더 이상 미래를 생각하며 ‘희망’을 느낄 수 없었다”면서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길이라고 해서, 흘러가는 대로 계속 가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직관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싶었다. 관련 업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결국 뚜렷한 길을 찾지 못했다. 야심차게 뛰어든 ‘원데이 클래스(일일 강좌)’ 중개 사업은 자금 부족으로 인해 1년 도 채 안 돼 정리했다.

그러던 중 ‘신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느 날 해외 직구로 농구화를 구매했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아 골치를 겪었다. 주변에서는 “원래 신발은 신어 보고 사야 돼”라며 핀잔을 줬다. 하지만 이 대표는 불편을 수긍하지 않았다. 모두가 관성대로 여기는 것을 멈춰세우는 게 이 대표의 특기였다.

‘지속가능성’이 무기…고객사 500개 목표


한 창고에 의류쓰레기가 쌓여 있다. [헤럴드DB]


펄핏의 서비스는 현재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관성을 일이기도 하다. 통상 온라인 신발 쇼핑의 반품률은 30%가 넘는다. 최대 문제는 배송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다. 펄핏에 따르면 반품 신발 1개당 평균 181g의 탄소 배출이 발생한다.

이 대표는 “신발 시장 규모가 스마트폰 시장(500조원)과 비슷한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환경오염”이라며 “펄핏 서비스를 이용해 신발 사이즈 추천을 진행한 업체의 반품률은 평균 55%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발은 한 상품당 옵션이 30개 내외로, 타 상품에 비해 재고 예측이 어렵다. 이에 모든 신발의 30%가량이 유통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버려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부분 태워지거나 제3국으로 흘러가 쓰레기가 된다.

이 대표는 “30개가량 옵션을 수량별로 정하고 생산하는 과정에서 예측과 수요는 항상 빗나간다”면서 “타겟층에 맞는 발 사이즈 데이터를 확보해 수요를 예측할 경우 획기적으로 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선용 펄핏(Perfitt) 대표.[펄핏 제공]


‘지속가능성’까지 장착한 펄핏은 고객사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프로스펙스, 네파 등 신발 업체에 이어 ABC마트 등 유통사에도 서비스를 공급했다. 최근에는 ESG 경영을 중시하는 해외 업체들에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내년까지 약 500개 고객사를 확보하는 게 목표다.

장기적인 목표는 소비자들이 신뢰하는 브랜드가 되는 것. 일상에서 사용하는 네이버나 구글처럼 모두가 믿고 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게 펄핏의 각오다. 이 대표는 “기술을 통해 인류의 삶을 한 단계 더 좋게 발전시킬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인 목표도 있다. 그는 스스로 ‘평균의 창업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전공, 경력과는 크게 관련 없는 사업을 하고 있으며, 성별이나 나이도 평균의 사장님들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줄곧 누군가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성공한 창업가로 거듭난다면 저와 비슷한, 혹은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에 작게나마 힘이 되고 싶습니다. 어쩌면 저의 발자취를 보고 저 멀리 히잡을 쓴 아이들이 새로운 상상력을 키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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