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 좋은 꿈 매매 문서 2점 첫 공개

삼국유사 ‘문희 매몽’은 구두 계약
대구 박씨, 봉화 강씨, 금액 정해 문서까지


봉화사는 신씨 길몽 매매문서 [진주강씨 법전문중 도은공파 기탁자료]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7~10세기 남북국시대(신라-발해) 직전, 삼한 통일을 꿈꾸며 훈련에 매진하던 신라 김춘추와 김유신은 막역한 사이였다. 둘 다 골품은 진골인데, 수도인 서라벌 네크워킹이 좋은 김춘추가 충북 진천과 가야지역을 오갔던 김유신 보다 왕재(王才)로서 더 유리했다.

김유신의 두 여동생 보희는 김춘추에 대해 괜찮은 이웃오빠로 여겼으나, 문희는 짝사랑에 푹 빠지고 만다. 어느날 보희는 경주의 동쪽 외곽 선도산에서 크게 소변을 보는 꿈을 꾸는데, 꿈 얘기를 들은 문희가 좀 알아보더니, 언니에게 꿈을 팔라고 다그친다.

▶태종무열왕의 부인이 되는 꿈

보희는 꿈 파는게 뭐 대수냐며 동생 문희에게 꿈을 팔았는데, 알고보니 임금의 부인이 되는 꿈이었다. 과연 문희는 김춘추와 결혼했고, 훗날 김춘추는 진골 출신 첫 임금, 통일대왕 태종무열왕이 된다. 문희는 꿈을 사서 꿈을 이루었다.

이 에피소드는 한갓 우스갯 소리가 아니다. 로또 당첨이 되려면 꿈을 잘 꾸어야 한다는 말이 21세기에도 여전히 강력한 설득력을 갖고 회자되니, 신라~조선으로 이어지는 동안 좋은 꿈을 꾸려는 또는 가지려는 세태가 있었다.

보희는 문희에게 공짜로 줬지만, 조선시대엔 꿈을 돈주고 사는 경우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증거를 한국국학진흥원이 발굴해 8일 국민들에게 공개했다.

바로 꿈 매매증서이다. 길몽은 시대와 상관없이 희망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상징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65만여 점에 이르는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에 길몽을 사고팔면서 작성했던 ‘꿈 매매문서’ 2점을 발굴했다.

박기상 꿈매매문서 [순천박씨 충정공파 운경정사 기탁자료]


▶청룡과 황룡이 등장하는 꿈의 매매

1814년 2월 말, 대구에 살고 있던 박기상(朴基相)은 청룡과 황룡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꿨다. 박기상은 사흘 뒤인 3월 3일에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나는 친척 아우 박용혁(朴龍赫)을 떠올렸고, 그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팔았다.

당시 작성되었던 매매문서에 따르면, 두 사람은 1000냥에 꿈을 팔기로 합의하고 대금은 과거 급제 후 관직에 오르면 지급한다고 적혀있다. 또 문서에는 길몽을 꾼 ‘몽주(夢主) 박기상’과 그 꿈을 샀던 ‘매몽주(買夢主) 박용혁’의 날인이 있으며, 친척 두 명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1840년 2월 2일, 경북 봉화에 살고 있던 진주강씨 집안의 여자 하인 신씨는 청룡과 황룡 두 마리가 서로 엉켜있는 꿈을 꾸고는 집주인의 친척 동생인 강만(姜)에게 청색·홍색·백색 등 삼색실을 대가로 받으면서 꿈을 팔았다.

이때 작성된 매매문서에는‘몽주(夢主) 반비(班婢) 신(辛)’과 증인으로 참석한 그녀의 남편 박충금(朴忠金)의 날인이 있다.

▶길몽 매매에 관한 기록

고려사의 ‘진의매몽’과 삼국유사의 ‘문희매몽’은 꿈을 사고파는 ‘매몽買夢 설화’의 대표적 자료이다.

‘진의매몽’은 보육寶育의 둘째 딸 진의가 성년이 되었을 때 언니가 오관산 정수리에 올라 소변을 보니 천하에 가득 흘러내렸다는 꿈 이야기를 들려주자 “제가 비단 치마로 그 꿈을 사겠습니다”하고는 정화왕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삼국유사의 ‘문희매몽’은 바로 문희가 언니로부터 산 꿈 때문에 왕비가 되었다는 바로 그 이야기이다.

꿈을 둘러싼 해몽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오래된 전통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태아의 성별과 운명을 예측하는 태몽, 횡재를 불러온다는 돼지꿈과 대소변에 관련된 꿈 등이 있다. 그중 용꿈은 사회적 지위 상승을 암시하는 길몽으로 유명하다.

정종섭 국학진흥원장은 “길몽을 사고파는 일은 오늘날에도 행해질 정도로 우리에게는 친숙한 습속”이라며 “보통 꿈의 매매는 구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번에 발견된 꿈 매매문서는 매우 희귀한 자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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