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이불 등 女거장 작품전 기대
국현·리움에선 대대적인 소장품전 부활
겸재 정선·민화 등 고미술 세계 재조명
루이즈 부르주아, 엄마, 1999. 호암미술관 희원 설치 전경.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올해는 세계 무대를 누비는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굵직한 전시가 대거 찾아온다. 런던이나 뉴욕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야 만날 수 있을 법한 핫한 작품을 볼 수 있으니, 눈호강도 이런 눈호강이 없다.
특히 몸과 기억에 깃든 서사를 써 내려가는 동시대 여성 작가들의 향연이 유독 두드러진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주춤했던 소장품전이 대대적으로 부활하고, 고루한 전시 방식에서 탈피한 고미술 대전이 더욱 다채롭게 펼쳐진다.
뉴욕 자택에서 루이즈 부르주아, 2003. [The Easton Foundation/낸다 랜프랭코] |
최근 들어 미술계에서는 여성 작가들이 주축이 돼 현대미술 흐름을 이끄는 주요 역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가 자주 나온다. 성평등, 정체성, 사회적 이슈 등 복잡한 주제를 다루며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다. 과거의 제한된 역할에서 벗어난 여성성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문화적 배경과 개인적 경험, 시각 등이 작품에 녹아들어 새로운 대화의 장을 이끌어 가고 있다.
거대한 거미 형상의 조각 작품 ‘마망’(Maman·엄마)으로 잘 알려진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의 대규모 회고전이 25년 만에 한국 땅을 밟는다. 9월 첫째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개막을 2주가량 앞둔 8월 말, 호암미술관은 ‘마망’과 ‘밀실 XI(초상)’ 등 리움미술관 소장품을 비롯해 부르주아의 1940년대 초기 회화 등 주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작품만큼이나 작가의 내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자료인 일기, 정신분석 일지, 메모 등이 함께 소개돼 부르주아의 인간적 면모를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전시다.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지난 9일까지 열렸던 부르주아 전시에 나온 작품 일부도 온다.
이불, 나의 거대서사: 바위에 흐느끼다…, 2005. [모리미술관 및 작가 제공] |
작가 이불. [호암재단/윤형문] |
한국 현대미술계 시계추가 맞춰진 올 가을, 리움미술관은 지난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정면 외벽에 조각 작품을 설치한 한국 작가 이불(61)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작가의 대표작인 사이보그 연작과 초기작인 노래방 작업을 필두로 현대문명의 이상과 한계를 집요하게 탐구해온 40여 년의 작품세계가 설치, 조각, 영상 등으로 다채롭게 소개될 예정이다. 리움미술관과 홍콩 엠플러스(M+)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전시로, 내년 3월에는 M+미술관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이 기간 국제갤러리는 부르주아와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인 갈라 포라스 김(41)의 개인전을 연다. 그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이 소리, 언어, 역사와 같은 무형의 유산을 규정하고 정의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작업하는 작가다. 12월에는 강렬한 색감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복잡한 내면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는 장파(44)의 개인전이 진행된다.
올해 눈에 띄는 특징은 미술관 소장품을 대대적으로 선보이는 전시가 부활했다는 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5월부터 과천관(4개 전시실, 1000평)과 서울관(2개 전시실, 470평)에 1만1800여점의 소장품 중 약 360점의 소장품을 엄선해 전시하는 대규모 상설전을 연다. 과천관에서는 190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근대 소장작 280여점을, 서울관에서는 196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는 현대 소장작 80여점을 각각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오지호, 이중섭, 김환기, 윤형근 등 작가의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작품을 한데 모은 작가의 방도 따로 마련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상설전에서 선보이는 작품. 문경원&전준호, 뉴스 프럼 노웨어, 2011-2012. [국립현대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이 5년 만에 상설전을 다시 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건희 컬렉션이 있다. 2021년 4월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족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 1488점의 근현대 미술품을 기증했다. 김인혜 학예연구실장은 “지난 2년간 10개 미술관에서 지역순회를 마친 이건희 컬렉션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안착하는 게 올해”라며 “이번 대규모 상설전에서 전시하는 작품 가운데 4분의 1 정도가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으로 채워진다”고 말했다.
재개관 상설전 이후 3년 만에 현대미술 소장품전을 여는 리움미술관은 조각을 중심으로 한 대표 소장품부터 최근 신수품까지 다채로운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오귀스트 로댕, 알베르토 자코메티, 솔 르윗, 칼 안드레, 루이즈 네벨슨, 게르하르트 리히터, 에바 헤세, 백남준, 김종영, 김수자, 정서영, 양혜규 등 60여 점이 소개되는 소장품전이 3월에 개막한다.
겸재 정선, 금강전도, 조선 18세기 중엽. 우리나라 국보다. |
특히 올해는 조선미술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과 미적 성취를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잇따라 열린다. 귀족, 문인, 평민 등 조선시대 여러 계층의 삶과 가치관을 미술품으로 들여다보는 대형 전시들이 다채롭게 준비돼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해다.
우선 4월 호암미술관에서는 한국회화사 내 대표 화가이자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대규모 기획전이 열린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인 정선의 회화 전모와 정수를 살펴볼 수 있는 최초의 전시로 이를 위해 삼성문화재단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손을 잡았다. 진경산수화는 물론 산수, 인물, 화조영모화 등을 비롯한 정선의 대표작 120여 점이 전시된다. 내년 하반기에는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순회전을 개최한다.
문자도 8폭 병풍, 조선 19세기말~20세기 초. [아모레퍼시픽미술관] |
이어 6월에는 서울 용산 이전 20주년을 맞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조선 건국에서 임진왜란까지 새로운 국가로 발돋움 한 약 200년간의 조선 전기 미술을 돌아보는 특별전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서화, 도자, 불교미술, 공예 등 250여 점이 한데 모인 대규모 전시로 조선 전기 미술의 다양성과 높은 미적·기술적 성취, 풍부한 취향을 살펴볼 수 있다.
반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솔직하고 자유로운 붓 터치가 두드러지는 조선시대 민화세계를 펼치는 조선민화대전을 3월에 연다. 평민이나 하층 계급이 그린 조선시대 민화의 직관적이고도 독특한 미감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전시로, 창립 8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다.
론 뮤익, In Bed, 2005.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국립현대미술관] |
이밖에도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개인전도 마련돼 있다. 내달부터 리움미술관은 올해 첫 전시로 프랑스 대표 현대미술가인 피에르 위그(62)의 국내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위그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푼타델라도가나미술관에서 연 도발적인 전시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당시 선보인 작품과 신작을 함께 만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공동 주최로 4월부터 호주 태생의 하이퍼리얼리즘 조각가인 론 뮤익(67)의 아시아 첫 개인전을 연다. 이어 8월에는 서울관에서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의 회고전을 열고, 12월 덕수궁관에서는 ‘농원의 화가’ 이대원(1921~2005)의 회고전을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