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를 국정운영 기조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백악관에 재입성한다.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면 동맹에게도 고율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 강화를 예고한 가운데 대미 통상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쟁점별 통상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일주일 앞두고 헤럴드경제가 13일 만난 전직 통상교섭본부장들을 비롯한 통상전문가 6인은 트럼프 2기 정부가 미국의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일자리를 늘리는데 우리나라가 필요한 파트너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관세 인상, 산업 경제정책 변화 등에 따른 대응 전략이 시급하지만 탄핵정국 속에서 트럼프 2기와 섣불리 협상에 달려들기 보다는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협상능력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트럼프가 강조하고 있는 한국과의 조선 분야나 소형원전(SMR) 분야 협력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위원인 여한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2021~2022년)은 “트럼프 1기에서는 주로 경제적 목적으로 한정된 범위에서 관세를 부과했다면 트럼프 2기는 관세를 단순한 관세가 아니라 비경제적, 지정학적 영향력 행사의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 선임위원은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관세 정책 집행과 무역협정 협상을 이끄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 한미 자유무협협정(FTA) 개정협상을 하며 마주 앉은 인연이 있다.
여 선임위원은 “그러나 탄핵정국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협상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면서 “탄핵정국만 지나면 펀더멘털 차원에서 한미간의 협력 잠재력은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2기 정권이 중국과는 디커플링을 가속화하면서 제조업 부흥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제조업과의 협력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한국을 결코 홀대할 수 없는 중요한 파트너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 조선업은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며 조선업을 콕 집어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도 “동맹국을 활용해 군함을 만들 것”이라고 재차 말했다.
미국이 중국 견제에 나서면서 반도체, 이차전지 등 핵심 품목에서 우리나라에 협조를 요청한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수입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 순위는 2016년 5위(1억4305만달러)에서 2024년(1~10월 기준) 2위(3억3863만달러)로 올랐다. 이차전지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등도 한국이 미국의 1위 수입국이다. 여기에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SMR 투자를 확대하고 상업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여 선임위원은 “기업들도 개별 기업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면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트럼프 당선인의 별장인 마라라고에 가서 천억불 투자 발표를 했지만, 우리 상황에선 좀 더 기다렸다가 트럼프 2기 취임 후 보편 관세 부과 등이 어떻게 되는 지를 봐 가며 예외인정을 받거나 우리의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데 활용할 수는 없는지 등의 방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2007~2011년)은 “트럼프 당선인이 제조업 부활을 외치고 있다”면서 “큰 방향은 쓰러져가는 미국 제조업을 살리겠다는 것으로 우리나라가 핵심 파트너가 돼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편 관세는 상대를 가리거나, 상품을 가리거나 이 두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늘였다가 줄였다 하는 방식으로 매길 것 같다”면서 “우리가 FTA 체결국이고 동맹이라고 빠질 것 같진 않다. 상대에 따라서 상품에 따라서 조금씩 적용을 달리하는 방법이 있으므로 결국 어떤 분야든 협상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본부장은 “우리로서는 지략과 배짱이 필요한데 어수선한 정국에서 누가 나서서 배짱 있게 하겠냐”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협상 전선에 나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밀당을 할 때 국내적으로 리더십에 대한 신뢰나 믿음이 있어야, 그걸 바탕으로 앞에 나갈수 있다”면서 “지금 국내 정국에서는 누구를 믿고 앞에 나가서 협상하겠는가, 책임을 혼자 다 져야 하는 상황이 되면 협상은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전춘우 코트라 부사장은 “트럼프 당선인은 우리나라에 대해 한미 방위비 분담과 조선업 협력 말고 다른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면서 “중국, 캐나다, 멕시코와 달리 관세 부과에 대한 언급이 없는 상황에서 ‘저 여기 있습니다’라고 나설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통상연구실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을 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할 걸로 보인다”면서 “즉시 관세 부과가 아니라 비상상황이라는 것을 선포한 다음 관세, 수입제한이 됐든 순차적으로 할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1기때 한미 FTA 재협상을 했듯이 서로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합의를 해나가야 한다”면서 “서로 딜(deal)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미 FTA 개정협상은 2018년 1월 5일 워싱턴DC에서 첫 공식 회의를 가진 후 9개월 만에 양국이 결과문서에 서명하면서 통상 분야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실장은 “그동안 한미동맹 관계라든가, 한국기업의 미국 투자로 트럼프가 강조하는 제조업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일자리 창출을 하고 있다는 점을 잘 설득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의외의 타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재민 서울대 법과전문대학원장(전 무역위원장)은 “당장 모든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긴 어려울 것 같고, 주요 교역국에 대해 상당한 폭의 관세 부과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리도 (관세 부과 대상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관세 부과를 줄이거나 예외로 하거나 하는 협상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장은 “예고한 대로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멕시코 및 캐나다 수입품에 대해 25% 관세,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10% 추가 관세 조치를 지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가 강조하고 있는 한국과의 조선 분야나 SMR 분야 협력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협상 전략이 될 수 있다”면서 “다만 현재 한국과 실질적인 협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트럼프가 한국 상황이 조금 안정될 때까지 지켜볼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배문숙·김용훈·양영경 기자
“조선·SMR<소형모듈원전> 협력 카드로 트럼프 관세 대응해야”
트럼프 2기 1월 20일 출범…통상전문가 6인이 본 대응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