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상승 인한 금융안정 우려 상황과 달라
부동산 시장 서민 경제와 밀접
이자 부담 낮추고 경기 반등 도모해야
서울 인왕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 |
[헤럴드경제=서영상 기자] 고금리 상황이 길어지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로 돈줄이 마르면서 부동산 시장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자부담에 허덕이면서 급매로 아파트를 처분하거나 경매에 넘어가는 사실상 ‘서민 파산’도 최고 기록을 목전에 두고 있다. 유동성이 막힌 건설사는 스스로 문을 닫고 있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경매에 넘어간 전국 아파트는 3510건으로 4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출 규제로 인한 부동산 시장 침체 속에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이들의 아파트가 경매 시장에 내놓게 된 것이다.
빚을 갚지 못해 급매로 나오는 아파트도 늘면서 1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도 10억원 아래로 내려갔다. 1년 10개월 만이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부동산 시장 상황은 ‘고금리 시대’로부터 등 돌릴 것을 재촉하고 있다고 말한다.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에 나서며 금융안정을 헤쳐, 통화정책 전환을 주저하게 했던 1년 전 상황과는 다르단 것이다.
실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8월 “피벗(통화정책 전환)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가계부채와 집값이 뛰면서 금융 불균형이 커졌다”면서 금리 동결 배경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상황은 이후 급격히 달라졌다. 당장 지난달 서울에서만 폐업신고를 한 종합건설업체가 17곳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폐업을 신고한 종합건설회사 수는 전국에서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폐업을 신고한 회사는 516곳으로 전년(418곳)대비 23.4% 증가 추세를 나타냈다. 2022년 261곳에 비하면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반면 2022년 5146곳에 달했던 신규등록 종합건설회사는 2023년 1307곳으로 크게 줄더니 지난해는 434곳으로 또다시 1년 전보다 66.79% 줄어든 상황이다.
건설업이 무너지면 주변 산업도 빠르게 위축된다. 부동산 중개업체, 이사 업체, 인테리어 업체, 가구·가전업체 등 부동산 거래에 영향을 받는 업종들은 서민경제와 밀접한 업종이기도 하다.
실제 통계로 살펴도 소비재 중 가전 제품 수요 둔화가 뚜렷히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가전제품 소매 판매액은 코로나19 첫해인 2021년 38조2080억이던 것이 2022년에는 35조8073억, 2023년에는 32조4611억으로 줄어들고 있다.
동네 인테리어 업체도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15년 가량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해왔다는 A씨는 “매년 6~7건 가량 공사를 하던 것이 최근 6개월간 단 한 곳도 시공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난달에는 같이 일하던 직원 두명도 내보낸 상황”이라고 전했다.
건설업계는 이 같은 침체 이면엔 오래도록 유지된 높은 수준의 금리가 주요 원인이라고 꼬집는다. 실제 인건비 등 공사비 상승에 직면엔 건설업계엔 자금조달 비용을 높인 고금리 상황이 유동성 악화를 불러온 것으로 지목된다. 시행사들은 이자에 대한 부담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PF과정에서 수익률이 내려가다 보니 사실상 마이너스(-)인 경우도 많다고 호소한다. 이에 지난해 시행사들이 수백억원의 계약금을 포기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분양받은 공동주택용지를 해약한 규모만도 2조7052억원으로 집계된다.
한 시행사 대표는 “올해 신동아 건설의 법정관리 소식 후 상황이 더 최악”이라면서 “알아보는 금융회사들마다 공사비용은 빌려줄 수 없다고 해 연 13% 수준의 브리지론(Bridge loan) 이자만 내고 있는 상황이다. 3개월 앞으로 다가온 브리지론 연장이 안되는 경우는 파산 말고는 답이 없다”고 토로했다.
통상 브리지론 이후 은행 등이 참여하는 본 PF를 일으켜 투자금을 받게 되는데, 그 단계까지 나아가기도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수요자들이 경기침체 우려에 금리 부담까지 더해지며 부동산 매수 시기를 늦추고 있는 것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아파트 거래가 정상화돼야 주택 공급도 활성화되고 이에 따른 건설업황도 살아나는데, 현재는 시장의 모든 기능이 중단된 상태다.
서울 부동산 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해 7월 9216건 성사되던 것이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가 시행된 9월 이후 3159건으로 내려갔다.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며 2494건으로 줄고 있다.
이런 부동산 거래절벽은 향후 2~3년 후 공급감소로 까지 이어진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 8일 발간한 ‘경제동향’ 1월호에서 주택 공급 선행 지표인 착공과 인허가 실적 저조를 근거로, 향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주택 공급 부족 가능성을 제기했다. 작년 1~11월 누계 기준 수도권 주택 착공(13만5000가구)은 최근 3년(2021~2023년) 누계 평균(17만5000가구)보다 적었다. 같은 기간 수도권 주택 인허가(11만6000가구)도 최근 3년 누계 평균(17만9000가구)을 밑돌았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업계 전반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금리 수준을 낮추고 실제 대출 금리 부담을 줄이는 수준까지 이어져야 경기 반등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기준금리를 내려도 대출금리는 내려가지 않는 상황에서 건설업계 부실은 커져만 가고 있다”면서 “금리인하 효과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문제다. 전국적으로 쌓인 미분양 6만5000호 소진 대책도 시급한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