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100평짜리 ‘나무 도서관’ 지어놓자 소외됐던 아이들이 마음을 열었다[건축맛집]

최혜진 오즈앤엔즈 건축사사무소 소장 인터뷰
‘2024년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대상 수상
소년보호처분 받은 청소년을 위한 도서관 설계
외부는 돌, 내부는 목조…“공간이 인식을 바꾼 사례”
[영상=윤병찬PD]




[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인생에서 넘어진 친구들을 공간으로서 안아주고 싶었어요. 그 아이들한테 그동안 받지 못했던 환영과 존중의 느낌을 주려면 어떻게 지어야 할까. 이게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시작점이었죠”

경기도 포천시 북쪽 외곽에 위치한 한 청소년 시설에는 특별한 도서관이 있다. 겉에서 보면 삼각형 지붕을 위에 얹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내부 공간 및 책장이 모두 목조로 구성돼 있다. 이 도서관에선 법원으로부터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이 누워서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모색한다. 이른바 ‘세컨찬스라이브러리(SCL)’ 건축물을 만들어 ‘2024년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대상을 수상한 최혜진 오즈앤엔즈 건축사사무소 소장을 서울시 종로구 서촌에 위치한 한옥 건물에서 만났다.

‘외강내유’ 청소년 닮은 도서관 설계…스페인 정부도 놀랐다


최혜진 오즈앤엔즈 건축사사무소 소장이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윤병찬 PD


최 소장은 2012년도에 처음 건축사무소를 차리며 홀로서기에 나섰다. 그 전에는 유명 건축사사무소에서 부유한 고객들의 개인 주택이나 별장, 또는 유명 기업의 대표매장(플래그십 스토어)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인테리어와 건축 실무를 익혔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을 한 지 약 10년쯤 지나자, 그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최 소장은 “당시 했던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개인의 소유물이 많았다”며 “결국에는 개인의 만족도, 또는 기업의 이익에 의해 결과물이 좌우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기존 작업에 대한 회의감은 건축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건축은 굉장히 어렵고 힘들다”며 “그 과정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쓴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개인 사무소를 열게 됐다”고 부연했다.

사단법인 ‘세상을품은아이들’은 이 같은 최 소장의 철학을 소문으로 듣고 소년보호처분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관을 지어달라고 사무소에 의뢰했다. 비영리단체 도서문화재단씨앗의 후원을 받아 설계를 시작하게 된 세컨찬스라이브러리는 외부에서 볼 땐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얹은 석조 건물이지만, 내부는 따뜻한 느낌의 목조로 구성된 게 특징이다. 100여평 면적에 커다란 보 세 개와 기둥 다섯 개를 세웠고, 책을 읽는 공간은 세 방향으로 뻗은 삼각형 모양으로 설계해 아이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했다. 삼각형의 세 변 중 두 변(북쪽과 남쪽)에는 큰 통창을 내 아이들의 시선이 멀리 밖으로 향할 수 있다.

경기도 포천 외곽에 위치한 세컨찬스라이브러리 외관 모습[사진=김용성]


경기도 포천 외각에 위치한 세컨찬스라이브러리 내부 모습. 삼각형 모양의 목조로 구성돼 있다. [사진=김용성]


설계 의뢰를 받은 최 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시설에서 머무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는 “체격이 큰 남자 청소년들이 모여 있다 보니 겁도 났던 게 사실”이라며 “화가 나 있는 아이들도 있고 시설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관찰하고 의뢰인과 설계를 논의하는 데 9개월 남짓이 걸렸다.

시간이 지나자 처음엔 시설에서 자리를 못 잡던 아이들도 점점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오랜 기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그 친구들도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보였다”며 “인상이 안 좋고 화가 나 있던 친구는 표정이 편안해지고, 처음엔 삐쭉삐쭉하던 아이들도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네더라”고 했다.

이에 최 소장은 건물 외부와 내부가 다른 세컨찬스라이브러리의 디자인을 아이들로부터 착안했다. 그는 “외부에서 봤을 때 굉장히 거칠고 우락부락한 아이들이 실은 속이 되게 말랑말랑하다는 느낌을 받아 이를 건축물에 투영했다”며 “겉에는 차가운 돌을 가지고 건물을 짓고, 안에는 목조 구조를 통해 따뜻한 느낌을 내겠다고 하니 의뢰한 재단에서도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경기도 포천 외곽에 위치한 세컨찬스라이브러리 내부 모습. 삼각형 모양의 목조로 구성돼 있다. [사진=김용성]


경기도 포천 외곽에 위치한 세컨찬스라이브러리 내부 모습.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은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다.[사진=김용성]


최 소장이 이 도서관을 설계하며 가지게 된 또 다른 고민은 바로 해당 시설의 교사들을 위한 공간을 어떻게 조성할지에 대한 문제였다. 아이들과 24시간, 항시 붙어있는 교사들에게도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교사들을 위한 공간의 질이 향상돼야 학생에 대한 교육의 질도 제고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 소장은 “아이들이 쓰는 공간과 분리해 선생님 한 명 한 명이 혼자 있을 수 있도록 별도의 교사 연구실을 따로 만들어 드렸다”며 “그 곳에서 선생님들은 오롯이 독립해 개인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탄생한 세컨찬스라이브러리에서 아이들은 책을 읽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들이 도서관에 오면 선생님들은 그들을 ‘작가님’이라고 부른다”며 “아이들이 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그들이 쓴 이야기들을 묶어 실제 책으로 출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물만 잘 짓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운영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건축가는 하드웨어를 만들기 때문에 그 안을 어떻게 운영할지를 끊임없이 논의하며 공사를 진행했는데, 선생님들이 열정적으로 운영을 해주고 계셔서 감동했다”고 했다.

그 결과 세컨찬스라이브러리는 ‘공간이 사람의 의식을 바꾸는 사례’로 꼽혀 해외 정부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2023년 11월 개관 후 이듬해 1월에는 스페인 교육기관 MTA(Mondragon Team Academy) 교사와 학생들이 방문해 도서관 설계와 운영 경험을 전수 받았다.

또 다른 대표작 수지꿈학고…“조선시대 서원에서 해법 얻어”


경기도 용인시 수지 외각에 위치한 대안학교 ‘수지꿈학교’의 모습. 조선시대 서원의 공간구조에서 착안해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마당으로 뛰어나올 수 있다.


최 소장의 또 다른 대표작에는 경기도 용인 수지에 위치한 대안학교, ‘수지꿈학교’가 있다. 70여명 학생의 학부모가 직접 십시일반 건축자금으로 광교산 자락에 부지를 매입하고 설계를 의뢰한 프로젝트다.

최 소장은 “150평 규모의 땅에 80여명이 사용할 학교를 지어야 해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며 “대안학교는 교육 커리큘럼에 단순 학습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도 포함돼 있어 어떻게 하면 이 공간에 학교 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고 전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 외곽에 위치한 대안학교 ‘수지꿈학교’의 모습. 조선시대 서원의 공간구조에서 착안해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마당으로 뛰어나올 수 있다.[사진=노경]


경기도 용인시 수지 외곽에 위치한 대안학교 ‘수지꿈학교’의 외관 모습.[사진=노경]


이에 최 소장은 학교에 필요한 교실과 강당, 식당 등 핵심만 만들고 나머지 통로는 모두 외부로 연결하는 안을 택했다. 부족한 전용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복도를 대신해 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외부 공간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조선시대 서원의 공간 구조가 좋은 건축 해법이 됐다.

그는 “아이들이 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외부 마당으로 뛰어나오게 되고, 마당은 산까지 쭉 연결된다”며 “학교는 작지만 전체 공간을 외부 공간까지 쓸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 같은 설계안을 채택하는 데에는 학부모의 100% 동의가 필요했다. 최 소장은 “수지꿈학교는 학부모 모두가 주인”이라며 “클라이언트가 한 분이 아니라 학부모 전체였기 때문에 의견 만장일치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설계 기간은 약 9개월 소요됐다.

수지꿈학교 역시 세컨찬스라이브러리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일상을 바꾸는 특별한 공간이 되고 있다. 최 소장은 “실제로 예산이 아주 적은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사실 공사를 조경 등을 완벽하게 끝내지 못했다”며 “그런데 학부모들이 학생들과 함께 마당에 나무도 일일이 심고 계단도 만들며 학교가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산 계기로 교육공간에 관심…‘좋은 건물을 지은 누군가’로 기억되고파”


최혜진 오즈앤엔즈 건축사사무소 소장이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윤병찬 PD


최 소장이 교육공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출산이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국내 교육 공간이 획일화돼 있음은 물론, 아이들을 위한 가구도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는 “사무실을 개소했을 때쯤 아이를 낳았다”며 “그전까진 전혀 관심이 없다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어린이집이 이렇게 별로였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회상했다. 아이가 학교에 가니 학교 공간에, 그리고 책상과 의자 등 가구에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 소장은 현재도 개인적인 건축 지향점을 사회적인 가치나 의미에 어떻게 반영할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그는 “좋은 건물을 지은 ‘어떤 누군가’가 되고 싶지, ‘건축가 최혜진’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며 “건축적인 욕심과 지향점이 분명히 있는데, 이를 사회적 가치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가 지금 하는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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