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태종의 후궁정치, 원경에겐 만만치 않다

원경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중궁(원경왕후)을 견제하는 데는 힘 있는 후궁만한 게 없습니다.”

tvN X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원경’에서 이방원의 측근 이숙번(박용우)은 태종 이방원(이현욱)에게 이렇게 정책 제언한다.

이방원에게는 딜레마가 있었다. “주상은 권신의 힘을 빼야 백성이 중심인 조선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근데 권신의 중심에는 누가 있습니까? 중전마마와 중전 일가가 있지 않습니까?”(이숙번)

아직 여흥민씨 처가집 식구들은 돈과 정보를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정보를 이용해 개경에서 넓은 농토를 헐값에 매입했다. 예나 지금이나 돈과 정보에서 권력이 나왔다. 하지만 중전이 그렇게 캐낸 정보로 주상 자신도 위기를 모면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다 보니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겨 모든 기득권들을 잘라내고 새로 시작하고자 했던 태종의 후궁정치는 좀 더 정략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후궁을 계속 들이는 것으로 중전의 기를 누르고 버릇을 고쳐주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처가의 힘을 빼려고 했다. 일종의 ‘처가 견제책’이다. 태종 재위 18년간 후궁 18명. 한 해에 한 명씩 후궁을 맞이한 셈이다.

사실 후궁정치는 왕에게 꿩 먹고 알 먹는 ‘부러운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매우 힘든 일이다. 왕이 궁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리 많지 않다. 낮에는 ‘정사’(政事)를 돌보고 밤에는 열심히 씨를 뿌려 왕자를 생산하는 ‘정사’(情事)를 마주해야 한다.

이건 궁에서 권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거의 업무의 연속이요, 야근 개념이기도하다. 숙직상궁은 왕이 합궁하는 시간동안 방음이 거의 되지 않는 문 앞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다만, 태종의 경우에는 처가의 권력이 너무 강해 권문세족을 정리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함으로써, 대처법의 하나로 후궁을 계속 들인 것으로 보인다.

태종 못지 않게 많은 후궁을 맞이한 조선왕으로는 성종이 있다. 강남의 비싼 땅 ‘선릉’에 묻혀있는 성종은 12세에 즉위해 25년의 재위기간동안 3명의 왕비와 14명의 후궁을 두었다. 총 자식수는 19남15녀.

성종은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반포하고 동국통감을 편찬하는 등 재임기간 많은 성과를 올렸지만 밤에는 후궁처소에서 술을 너무 많이 먹었다. 오죽했으면 성종을 ‘주요순(晝堯舜) 야걸주(夜桀紂)’라고 불렀을까. 낮밤이 완전히 달라진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완벽한 부캐’ 가동이다. 밤마다 후궁처서에서 룸살롱, 홈바 같은 술자리를 꾸민 셈이다.

성종이 마흔살도 넘기지 못하고 37세에 요절한 것은 이와 관련한 과로가 큰 원인이 됐을 것이다. 이래저래 ‘정사’가 과로를 유발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후궁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왕과 왕후의 싸움은 승패가 예정돼 있다. 이 게임은 선택권을 가진 왕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원경왕후를 견제하는 태종의 후궁정치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드라마는 이를 더욱 더 극화하고 있다.

지난 20일 방송된 ‘원경’ 5회에서는 새로운 후궁의 가례색(왕과의 혼인을 위해 임시 설치하는 일종의 가례도감 같은 기관) 문제를 두고 원경(차주영)과 이방원(이현욱) 사이의 불꽃 튀는 갈등이 그려졌다.

원경의 기세를 꺾기 위해 보란듯이 후궁 영실(이시아)의 복부를 찔러 목숨은 부지하게 해준 이방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후궁을 들이겠다고 도모했다.

이번에는 영실과 채령(이이담)처럼 미천한 신분이 아닌, 성균관 악정 권홍(오륭)의 여식, 즉 사대부의 여인 권선(연시우)이었다. 권선은 거문고를 연주하는, 뭔가 고급스러운 예술가이기도 했다.

권신들의 중심인 민씨 일가의 힘을 빼고 왕권을 강화해 백성이 중심인 조선을 세우기 위한 이방원의 그림이었다.

이방원이 가례색까지 설치해 후궁을 맞는다는 소식에 원경은 즉시 편전으로 달려가 반대했다. 대대적으로 국혼을 치르면 백성들은 새로 중전을 얻는다 생각할 것이며, 후궁이 왕자라도 낳으면 이방원이 겪었던 피바람(왕자의 난)이 다시 불 수도 있는데, 자신의 아들들을 지키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가례색 설치는 안됩니다. 가례색까지 설치해 대대적으로 후궁을 맞이하면 백성들은 전하가 새로 중전을 맞는다 그리 생각할 겁니다. 그래도 하신다면 제가 전하 앞에 죽어드리죠.”

사사건건 따르지 않는 원경에게 이방원은 “이런 식이면 그대는 결국 나의 사랑을 잃게 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원경은 단호했다. “전하의 사랑을 잃는 것이 저를 잃을 이유가 되진 않는다”며, 그 길로 친정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이방원은 이 틈을 타 “왕자를 낳고 싶다”며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는 채령과 농밀한 정사를 나눴지만, 막상 빈 중궁전을 보니 원경이 그리웠다. 그리고 허전했다.

처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부터, 왕과 왕비가 되기까지 자신 곁엔 늘 아내가 있었다. 궐내 곳곳엔 그녀와의 추억이 서려있고, 그 빈 자리는 누구도 채울 수 없었다. 방원의 불안은 중전만이 채워줄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남녀가 바뀌기는 했지만, 미국 가수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전남친 저격송인 ‘drivers license’와 ‘deja vu’ ‘good 4 u’가 생각났다. 남자친구와 자동차 데이트를 하다 막상 헤어지고 나니 면허증이 필요했고, 그 면허증으로 전남친과 다닌 장소를 가봤지만 과거에 남친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기시감(데자뷰)’만 들었다. 물론 전남친은 그곳에서 다른 여자와 나에게 했던 그 짓을 하고 있겠지만. 그래서 ‘good 4 u’(오히려 잘 됐어) 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방원은 중전과 헤어질 자신도 없었다. 중전을 견제해야 하는 건 맞는데, 헤어지고 나면 잠시도 못견디는 체질이다. 중전이 없어 불안해 보이는 왕의 마음을 꿰뚫은 핵심 참모 하륜(최덕문)의 조언대로, 이방원은 원경이 있는 사가로 재빨리 달려갔다. 그리고는 “보고 싶어서 왔소. 누르려 했는데 눌러지지가 않아서 왔소”라고 애절히 고백했다. 또한, 가례색을 폐해달라는 원경의 뜻도 따르기로 했다. 이 때는 중전의 무슨 말이건 들어준다. 마침내 두 사람은 뜨겁게 입을 맞추며 격정적인 정사를 이어갔다.

궁으로 돌아온 원경은 정식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입궐한 후궁 권선을 맞았다. 그리고 이 문제로 부부 사이의 이간질을 주도한 또 다른 핵심 참모 이숙번(박용우)에게 “알량한 권력이라도 누리려면 나와 각을 세우는 일은 하지 말라”고 매섭게 경고했다.

민씨 일가 역시 이 일을 발판으로 세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연회를 계획했다. 그런데 원경이 연회 준비를 명분으로 미리 사가로 향했다. 이성계(이성민)의 사병 가별초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방원이 연회에 오기 전 정보원인 소경 판수(송재룡)와 접촉하려던 것.

그 사이, 이를 염탐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채령이었다. 이에 앞서 그녀가 권선과 갈등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후궁에게 인사를 가지 않더니, 그 지위가 언제 뒤바뀔지 모른다고 자신하며 모욕을 주는 등 예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 그 현장을 목격한 이방원은 방자하고 맹랑하다 꾸짖으며, 쓸모를 입증하고 싶다면 원경에게 정보를 주는 이가 누구인지 알아오라 지시했다.

그러나 이를 모를 리 없는 원경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이미 원경으로부터 “스스로를 벼랑 위해 세우지 말라”는 주의를 받은 채령은 특별히 본 것이 없다고 얼버무려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과연 채령이 이방원에게 무엇을 고할지, 그녀의 진짜 속내에 궁금증을 폭발시켰다.

그런데 이날 방송 말미, 채령의 회임 가능성까지 암시됐다. 원경이 있는 욕실로 불려간 채령이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날카로운 향초 가지를 손에 쥔 원경을 보고는 본능적으로 배를 감싼 것이다. 치열하게 싸웠지만, 그만큼 깊은 사랑을 다시 한번 나눈 원경과 이방원에게 또다시 갈등의 가시밭길이 암시된 상황. 원경의 서늘한 눈빛 엔딩이 불안감을 수직 상승시켰다.

tvN X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원경’ 6회는 21일 저녁 8시 50분 tvN에서 방송된다. 티빙에서는 지난 20일 선공개된 5-6화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후궁정치를 다루다보니 19금을 달고 있는 티빙에서는 좀 더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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