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안 아파도 보험료는 같다고?


‘초경증간편플랜’, ‘간편우대플랜’

최근 보험영업 현장 ‘트렌드’로 자리 잡은 상품들이다. 상품명에서 알 수 있듯이 경증의 유병자 고객(간편고지)도 건강한 고객과 같은 보험료 수준으로 가입할 수 있게 해주는 영업 방식이다. 주로 경증 유병자도 ‘고지 없이 저렴하게 가입하라’는 식으로 영업 현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통상적이라면 보험료를 더 받아야 할 유병자에게 건강한 사람 수준의 보험료를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보험료를 낮추는 셈이다.

보험사들이 이렇게까지 해서 고객들을 영입하는 이유는 계약서비스마진(CSM) 확보 경쟁 때문이다.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들은 이익의 핵심 지표로 여겨지는 CSM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다. 금융당국으로부터 단기적 수익에만 몰두해 출혈경쟁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았을 정도다.

올해부터 금융당국의 보장한도 가이드라인 시행으로 영업 환경이 어려워진 점도 한 몫 했다. 당국은 보험사들의 과도한 보장 확대 경쟁을 막기 위해 개별 담보 적정 수준의 보장 금액 한도를 설정하는 등의 제약을 뒀다.

그러니 보장한도 경쟁이 아닌 가입 기준 완화로 승부를 거는 보험사들이 생겨났고, 고객 방어 차원에서 너도나도 따라가게 된 모양새다. 하지만 올해도 이런 영업 경쟁이 이어진다면 시장 왜곡 등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게 뻔하다.

우선 요율 적정성 문제다. 질병 통계를 기반으로 요율을 적용해야 하는 고객들을 일반 건강한 고객과 같이 저렴하게 인수하는 것은 보장 위험과 위험률 및 산출 통계의 불일치를 가져올 수 있다.

기존 고객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 될 수 있다. 보험사들은 중 경증 고객에 대한 ‘소비자 혜택’이라고 말하지만, 바꿔 말하면 기존 고객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 건강한 고객들은 기존 적정한 요율로 가입하는 반면, 경증 고객들은 더 저렴한 요율로 가입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보험사들은 ‘그렇다고 건강한 사람이 더 내는 경우는 없다’고 항변하지만, 건강한 사람과 중 경증 고객과 보험료가 같은 건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장기적으로도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건 불 보듯 뻔하다. 더 높은 요율로 가입해야 하는 고객을 낮은 요율로 가입해 주니 향후 보험사의 손해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 지급보험금 증가로 재무 건전성 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저렴한 보험료로 보험사 간 고객 뺏기 경쟁이 격화돼 CSM 방어 차원에서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영업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제 살 깎기’ 식의 고객 확보 싸움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작년 보험사 실적을 뒤흔든 무·저해지보험 사태처럼 ‘팔 때는 몰랐다’라는 핑계를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새 회계제도가 단기실적 경쟁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자정 노력이 절실하다는 금융당국의 경고가 또다시 무색해져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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