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의사인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라는 책을 통해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을 이기는 팩트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빈곤·교육·환경·에너지·인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와 실제 세계의 간극을 좁히고 선입견을 깨는 통찰을 제시한다. 그는 연구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바로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체계적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느낌’을 ‘사실’로 인식하는 인간의 비합리적 본능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은퇴생활을 꼽을 수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은퇴자들이 이전에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첫째, 은퇴하면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은퇴자나 은퇴를 앞둔 이들에게 일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경제적 소득원이 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틀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루 중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은퇴 이후는 자신에게 맞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둘째, 국민건강보험이 있으니 의료비는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중대한 질병이라도 걸린다면 가정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고령자의 노인성 질환 등에 대한 치료는 장기간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를 위해 실손보험, 건강보험, 장기간병보험 등을 준비해야 한다.
셋째, 은퇴 이후에 시골에 내려가 전원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후 전원생활이 도심에 살 때보다 더 많은 돈이 들 수도 있다. 가족이나 친지들이 멀리 떨어져 있고 병원도 멀어서 노후 후반기로 갈수록 만은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 은퇴 이후의 주거지는 삶의 여러 방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막연한 바람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 전에 꼼꼼하게 검토한 뒤 결정해야 한다. 어디에서 사느냐 하는 것은 주거비용은 물론 가족이나 친구와의 사회적 관계, 기후나 의료서비스에 따른 건강관리 등에 영향을 미친다. 만일 주거지를 잘못 선택했을 경우 이를 되돌리는 데에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넷째, 자산이 많으면 재무적 은퇴 준비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산이 부동산으로 편중돼 있으면 은퇴 이후 생기는 여러 가지 현금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목돈을 가지고 있으면 주위에서 빌려달라거나 투자를 제안받아 자칫 실패할 수도 있다. 자산을 어떻게 제대로 관리해야 할 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재무적 은퇴 준비는 목돈이나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을 안정적인 현금흐름인 연금으로 분산하여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섯째, 돈만 충분히 있으면 은퇴 생활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준비 못지않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건강이나 가족, 일자리, 사회활동, 취미나 여가 등 종합적인 준비를 해야 비로소 행복한 은퇴 생활을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막연한 느낌이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은퇴 생활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성공적인 은퇴 준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 경영학(연금금융)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