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AI 먹거리 개발 시동…빨라지는 ‘넥스트 삼성’ [이재용 항소심 무죄]

4일 오픈AI 샘 올트먼 CEO와 회동 주목
AI 단말기·AI 반도체 개발 등 협력 관심
사법리스크 묶였던 글로벌 현장경영 숨통


이재용(앞줄 가운데) 삼성전자 지난해 4월 독일 오버코헨 자이스(ZEISS) 본사를 방문해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합병·회계부정 관련 모든 혐의에 대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 받은 지 하루 만에 대외 행보에 나섰다. 4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의 회동을 시작으로 인공지능(AI) 먹거리 개발을 주축으로 한 ‘넥스트 삼성’ 구축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0년째 이어진 사법리스크에서 사실상 벗어난 만큼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삼성그룹의 인수합병(M&A) 작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모처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회동을 갖는다. 전날 밤 11시40분께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입국한 올트먼 CEO는 이날 오전 오픈AI가 주최한 비공개 워크숍 ‘빌더 랩 서울’을 시작으로 한국에서의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올트먼 CEO는 한국에 이어 곧바로 5일엔 인도를 방문하는 만큼 이날 한국에서의 하루 일정을 시간 단위로 촘촘히 설계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는 특히 올트먼 CEO와 이 회장의 만남에 주목하고 있다. 올트먼 CEO는 작년 1월 방한 당시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찾은 데 이어 경계현 사장 등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회동한 바 있다.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올트먼 CEO는 이번엔 사업장 방문 대신 이 회장 등 삼성 고위 경영진과의 만남에 주력할 전망이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을 비롯한 반도체 경영진도 배석한다.

재계는 전날 무죄를 선고 받은 이 회장의 첫 대외 행보가 미래 AI 먹거리 챙기기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오픈AI가 AI 전용 단말기와 AI 반도체 독자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양사가 내놓을 AI 사업 협력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외신에서는 삼성전자가 오픈AI와 갤럭시 AI에 챗GPT를 통합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바 있다.

삼성전자가 가전을 비롯해 TV, PC 등을 아우르는 전 사업 영역에서 고도화한 AI 서비스 탑재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오픈AI와 긴밀한 협력을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에 앞서 일본을 찾은 올트먼 CEO도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을 대신하는 AI 전용 단말기와 독자 반도체 개발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AI 전용 기기에 대해 “협력을 통해서 할 것”이라며 “AI는 컴퓨터와 접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때문에 새 단말기가 필요하다. 음성 조작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가성비 AI 모델 ‘딥시크 R1’의 등장으로 미국 주도의 AI 패권이 위협을 받고 있는 점도 양사의 협력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앞서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은 1월 CES 2025 기자간담회에서 “(이재용) 회장이 ‘세상에 없던 기술’을 화두로 던졌는데 아마 올해 하반기나 내년에는 그런 (세상에 없는) 제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울러 올해 이 회장의 현장 경영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CEO들과의 네트워크 구축과 미래 먹거리 발굴 등에 적극 나서면서 그동안 사법리스크로 멈췄던 투자시계가 다시 바쁘게 돌아갈 것이란 전망이다.

매년 명절 때마다 해외 사업장을 찾았던 이 회장은 올해는 2심 선고를 앞두고 설 연휴기간 국내에 머물렀다.

언론에 공개된 이 회장의 마지막 글로벌 현장 경영은 작년 10월 삼성전기 필리핀 사업장을 찾은 것이다. 이 회장은 당시 경영진에 AI, 로봇 시장 확대에 따른 기회 선점을 당부한 바 있다.

지난해 6월엔 뉴욕을 시작으로 워싱턴D.C.를 거쳐 실리콘밸리에 이르기까지 미국 동·서부를 횡단하며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앤디 재시 아마존 CEO, 크리스티아 아몬 퀄컴 CEO 등 AI 분야 주요 빅테크 기업 경영진들과 릴레이 미팅을 갖기도 했다.

이 회장이 9년간 이어진 ‘사법 족쇄’를 벗어나면서 경쟁력 회복을 위한 삼성 컨트롤타워 재건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그간 재계에서는 삼성이 중장기적인 사업 전략을 짜고 그룹사간 사업 시너지를 내기 위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봤다. 책임 경영 차원에서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감위) 위원장은 2023년 연간 보고서에서 “경영 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컨트롤타워 재건, 조직 내 원활한 소통에 방해가 되는 장막 제거, 최고경영자 등기임원 복귀 등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10년간 이어진 최고경영자의 사법 리스크 해소로 향후 삼성전자가 불확실성 완화 국면으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2019년 이후 미등기임원인 이재용 회장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 복귀로 책임경영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삼성전자 중심의 그룹 컨트롤타워 재건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또 “삼성전자는 현재 보유한 순현금 93조3000억원을 기업가치 제고에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가능한 시나리오로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10조원 규모 자사주 외 추가적인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대형 M&A, 글로벌 업체와의 AI 분야 합작법인(JV) 설립 등이 추정된다”고 했다. 김현일·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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