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와 25년 인연 박찬욱 감독 흔쾌히 GV 수락
“송강호·이병헌·이영애 조합 언제보나” 인산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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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의 세월을 건너 2025년 2월 4일 서울 용산CGV ‘박찬욱’관에서 성료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GV. 오른쪽부터 박찬욱 감독, 배우 송강호, 이병헌, 이영애, 김태우.[CJ ENM 제공] |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박찬욱 감독, 배우 이영애, 이병헌, 송강호, 김태우.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과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가 된 이들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 이하 JSA)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JSA’는 남북 장병들 간 이뤄질 수 없는 우정을 통해 분단의 비극을 그린 영화다. 25년 전에는 영화 GV(Guest Visit·영화 감독, 배우, 스텝 등을 초대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자리)가 활성화되지 않았던터라 ‘JSA’의 GV 및 무대인사는 세월을 건너뛰어 2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열렸다.
4일 저녁 서울 CGV용산 박찬욱관은 ‘공동경비구역 JSA’ GV에 참여하기 위해 언론과 영화관계자는 물론, 일반 관객들까지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번 행사는 CJ ENM이 ‘문화사업 30주년 비저너리 선정작’ 기념으로 마련한 것으로, 당초 박찬욱관을 비롯해 GV 생중계가 나가는 일반관 2개관으로 기획됐으나 참석 문의가 쇄도하면서 일반관 2곳을 추가로 개방했다.
역대급 행사가 실현된 데에는 박찬욱 감독의 ‘흔쾌한 수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CJ ENM은 2020년부터 한국 대중문화 전 분야에서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토대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대체 불가의 인물들을 ‘비저너리(Visionary)’로 선정하고 있는데, 올해는 CJ 문화사업 출범 30주년을 기념해 인물 대신 작품 20편을 선정했다.
CJ ENM은 그 중에서도 ‘JSA’를 그 첫 타자로 내세우면서 박 감독에게 참석을 요청했다. CJ측이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자마자 박 감독은 ‘하겠다’고 바로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감독이 나서자 배우들 섭외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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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GV 진행중인 모습.[CJ ENM 제공] |
저녁 7시 시작한 영화가 한국영화 최고의 엔딩으로 꼽히는 판문점 흑백 사진으로 끝나고 여운이 감돌 때쯤 무대인사를 마친 박 감독과 배우들이 밤 9시30분께 박찬욱관에 다시 모였다.
JSA의 비저너리 선정 소감을 묻는 질문에 지난 2023년 이미 ‘비저너리 인물’로 등재된 박 감독은 “하나의 개인으로서 창작자로서 받는 상도 영광스럽지만 이렇게 작품으로 (비저너리를)받게 돼 더 좋다”며 “배우들은 물론 당시 함께했던 스탭들까지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신 CJ ENM에 정말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주연 배우중 정우진 역의 신하균만 불참한 것에 대해선 “하균이는 놀러갔다더라. 얼마나 재밌는걸 하길래”라며 농담을 던졌다.
JSA에서 북한군 오경필 중사를 연기한 송강호도 “큰 스크린을 통해서 25년 전 작품의 울림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이런 기회가 또 올까,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라며 “명필름 제작자 관계자분들께 한국 영화 발전에 미래를 보고 과감하게 엄혹했던 시절에 이런 훌륭한 작품을 기획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헌사했다.
영화가 제작되던 90년대 말에는 ‘남북한 병사가 판문점에서 닭싸움을 하며 어울려논다’는 줄거리의 영화 제작은 상당한 각오를 갖고 임했어야 했던 일이었다.
박 감독은 “솔직히 감옥에 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있었다”며 “90년대 후반은 국가보안법이 실제로 작동하던 시절이었기에 주적인 북한군과 국군의 교류와 우정은 국보법의 고무, 찬양 등 뭐든 걸면 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영화가 개봉하던 2000년이 되니 세상이 바뀌었다. 박 감독은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하고, 분위기가 풀리는 바람에 명필름 분들과 단단히 마음먹은 게 싱거워졌다”고 회상했다.
JSA가 ‘유작’이 될 수도 있었다는 폭로까지 더했다. 박 감독은 “JSA보다 먼저 한 두 편의 영화가 흥행이 안돼서 세 번째 기회마저 놓치면 이게 내 유작이 될 수 있다는 절박한 마음이었다”며 “영화감독이 실패를 하면 그 다음 기회를 얻는 게 힘들다. 그런데 좋은 작품을 만난데다 전폭적인 프로덕션 지원까지 얻었으니 기적같은 일이었다. 날 살려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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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NM 제공] |
마찬가지로 당시엔 지금처럼 ‘국민 배우’ 수식어와는 거리가 멀던 이병헌도 ‘JSA’로 명실상부 톱스타의 자리를 꿰찼다. 이수혁 병장을 연기한 이병헌은 “감독님이 두 작품을 망했다면 난 그 전에 3개의 영화를 속된말로 말아먹었다”면서 “내게 처음으로 흥행배우 수식어를 안겨준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이병헌은 ‘JSA’의 여운을 영화가 내려갈 때까지 최대한 즐기기 위해 마흔번이 넘도록 극장관람을 했다. 그는 “모자,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영화관 제일 뒤 맨 끝자리에서 영화를 보고 또 봤다. 관객들이 함께 웃고 우는 모습을 되도록 많이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이후에도 그렇게 많이 극장에 가본 경험은 없다”고 했다.
박찬욱 감독은 배우들에게 장음과 단음을 구별해 발음 연습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치밀한 완벽주의자인 예술가의 면모는 이미 25년 전부터 시작한 듯 하다. 이에 송강호는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처음엔 못하겠다며 고사했다.
송강호는 “그 시나리오가 너무 완벽을 추구하는 느낌이었다. 촘촘하게 밀도감이 너무나 꽉 짜여진, 구성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며 “그래서 믿음이 안갔다. 한국 영화가 이런 걸 구현할 수 있나. 시나리오는 이렇게 써놓고 막상 이상한 영화가 될꺼야 등 의구심이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이영애가 연기한 소피 장 소령은 이 영화의 나레이터와 같은 기능을 담당하는데, 평면적인 캐릭터를 이영애에게 맡긴 박 감독은 사실 후회를 했다고 말 한적이 있다.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도 ‘기능적으로 사용되는 캐릭터를 맡겨 이영애 배우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 박 감독은 “특히 소피가 스위스 장군과 대화하면서 한국전쟁과 제3국으로 갔던 76명의 포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너무 설명적이다”며 “솔직히 시나리오 쓸 때부터 이 부분이 신경이 쓰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한국의 현대가 어떤 흐름 속에 지금 여기에 도달했는지를 꼭 소피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며 “관객에게 떠먹여주는 장면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찍고, 영애씨한테 해달라고 해서 미안했다”고 재차 밝혔다.
이영애는 오히려 “내 화창한 30대를 열어준 게 JSA의 소피 역할이었고, 그 인연으로 감독님과 ‘친절한 금자씨’도 할 수 있었다”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면 20대의 나보다 더 연기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배우 모두가 50대에 들어선 지금, 자신들의 20대, 30대의 얼굴이 큰 스크린에 나오자 낯설어했다. 남성식 일병 역의 김태우는 “몇년 전 코로나 때 집에 있다가 우연히 TV에서 JSA를 봤다. 연기를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 정말 온 힘을 다해 집중해서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봤다”며 “지금 다시 돌아가도 그 느낌은 못 낼 것 같다. 기특하더라”고 말했다.
송강호도 “내가 이 작품에선 이병헌씨 못지않게 참 잘생기고 멋있게 나왔다. 사람들이 나한테 외모 외의 칭찬은 과분하게 해주고 그러는데, 나도 이 작품에선 상당히 멋지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1시간 동안 이어진 GV는 내내 농담과 해학이 이어지며 쏜살같이 흘렀다. 박찬욱 감독은 끝인사로 “JSA를 외국에서 상영을 할 때마다 꼭 나오는 질문이 ‘판문점에서 실제로 찍은거냐’는 거다.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실제 판문점에서 찍을 수 있었다면 이런 영화가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라며 “여전히 이 영화가 젊은 세대에게 감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슬프다. 50주년 GV 때는 아주 옛날 이야기처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 때는 꼭 신하균을 데리고 나오겠다. 70대의 신하균을”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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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NM 제공] |
지난 25년간 9편의 작품을 CJ와 함께한 박 감독은 이제 ‘어쩔 수가 없다’를 10번째로 세상에 내놓기 위해 준비중이다.
고경범 CJ ENM 영화산업부장은 “한국 영화 시장이 지금 매우 어렵다. 또한번 JSA와 같은 영화사의 흐름을 바꾸는 작품이 나와서 새로운 동력을 얻기를 희망한다”며 “JSA 이후에도 올해 19편의 비저너리 작품을 소개하면서 영화산업을 선도하는 CJ로서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CJ ENM의 30주년 비저너리 작품 목록은 ▷공동경비구역 JSA ▷설국열차 ▷베테랑 ▷극한직업 ▷기생충 ▷응답하라 시리즈 ▷시그널 ▷도깨비 ▷디어마이프렌즈 ▷나의 아저씨 ▷유미의 세포들 ▷눈물의 여왕 ▷슈퍼스타K ▷꽃보다 할배 ▷신서유기 ▷유퀴즈온더블록 ▷쇼미더머니 ▷스트릿우먼파이터 ▷마마 어워즈 ▷뮤지컬 킹키부츠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