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 주택 팔아서 원베일리 34평 가야할까요?” 점점 좁아지는 부의 지도 [부동산360]

시세 총액 기준 상위권 ‘KB 선도아파트 50’
투기과열·조정대상 단지 비중 70% 달해


‘KB 선도아파트 50’에 새로 이름을 올린 서울 강남의 디에이치자이개포 단지 모습.[네이버지도 거리뷰 갈무리]


강남과 비강남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한남동에 보유하고 있는 주택을 매매하면 대출 없이 원베일리 30평대 갭투자가 가능할 거 같은데…그냥 가지고 있는 게 나을지, 지금이라도 상급지로 갈아타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서울 용산 한남2구역 재정비촉진구역 재개발 조합원 A씨

2021년까지는 우리 집값도 가파르게 올랐죠. 아이 교육을 생각해서 지금이라도 서울에 진입해야 할까 싶어요. 하지만 현실은 현재 대출 이자도 다 못 갚은 상황에서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해요. 올해부터 대출 한도도 더 줄어든다는데…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거주하는 신혼부부 B씨

부의 지도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서울 중에서도 규제지역, 규제지역에서도 강남과 비(非)강남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국의 대장 아파트를 지칭하는 ‘KB 선도아파트 50’ 단지에선 대출이 집값의 절반밖에 나오지 않는 규제지역의 비중이 3분의 2를 넘어섰다. 결국 대출이 필요 없는 현금 보유자들이 안전한 자산을 찾아 한강변 아파트 등에 집중하면서 초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수도권 중급지의 경우 올해 대출규제 강화로 인해 ‘갈아타기’의 장벽마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KB 선도아파트 50’서 지방 아파트 0, 남산타운·성산시영도 빠졌다


9일 ‘2025년 1월 KB 선도아파트 50’에 따르면 올해부터 지방 단지가 아예 빠졌다. 중구의 남산타운과 마포구의 성산시영도 이름을 지웠다. 대신 그 자리에는 강남권 아파트와 목동 재건축 아파트가 새롭게 자리했다.

‘KB 선도아파트 50’은 KB부동산이 매해 시세 총액 기준으로 상위 50개 단지를 선정해 발표하는 명단으로, 그 해의 대장 아파트를 보여주는 지표다.

‘KB 선도아파트 50’ 명단에서 제외된 서울 중구 남산타운 아파트.[네이버지도 거리뷰 갈무리]


명단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방 아파트가 빠진 대신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와 개포동의 디에이치자이개포가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둘 다 2023년, 2021년에 입주한 신축 아파트로 최근 신고가 경신을 이어가고 있는 단지다. 강남역 인근의 대단지 서초그랑자이도 명단에 신규 진입했다. 모두 강남권 아파트다.

구축 아파트의 경우 늘 50위 안에 들던 신당동의 남산타운과 성산동의 성산시영 아파트가 올해부터 명단에서 빠졌다. 두 단지는 각각 세대 수가 5152가구, 3710가구에 달해 중구 및 마포에서 최대 리모델링·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곳이었다. 두 자리는 각각 여의도 시범아파트, 그리고 목동신시가지 9단지 아파트가 채웠다. 시범아파트와 목동신시가시 9단지는 각각 정비구역지정 주민공람 절차에 들어가고 정비계획안 공람이 임박한 곳이다. 반면 남산타운과 성산시영 아파트는 리모델링이 난항을 겪거나 수익성 문제로 인기가 떨어져 거래가 ‘뚝’ 끊긴 상태다.

KB선도아파트 50 지역별 현황


대표 50개 단지에 규제지역이 70%…매매가 절반만 대출되는 ‘현금부자’


눈여겨볼 것은 올해 선정된 50개 대표 아파트 단지의 70%가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그리고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에 해당한단 점이다. 현재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그리고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강남과 서초, 송파, 그리고 용산 4개구다. 50개 단지 중 35개 단지가 서울 4개구에 밀집해있단 뜻이다.

규제지역은 집값 상승이 본격화하던 2021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선도50 비중이 늘어났다. 2021년에는 강남3구 및 용산구에 위치한 아파트가 22개 단지로 56%를 차지했으나, ▷2022년 60% ▷2023년 62% ▷2024년 64%로 점차 증가하더니 올해 70%를 찍었다. 부의 양극화 속도가 점차 가팔라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서울 시내의 한 은행 대출 창구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임세준 기자


부의 지도가 좁아진 데에는 정부의 대출 규제도 한 몫 했다. 상위 계층이 주로 거래하는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에 대한 대출 규제는 완화된 한편, 서민들을 위한 대출 문턱은 더욱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에서 주택 구입을 목적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땐 한도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50%(무주택·처분조건부 1주택 기준)까지 가능하다. 30억원짜리 아파트를 산다고 가정했을 때, 최대 대출한도는 절반인 15억원(총부채상환비율 기준 별도) 수준이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 대표는 “선도아파트 구매자의 70%는 현금 거래 비율이 50% 이상으로 대출 의존도가 낮다”며 “결과적으로 자금력 있는 계층의 시장 지배력이 강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한 부동산 모습. [연합]


문제는 정부의 규제로 인해 일종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는 일반 대출은 오히려 더 받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은 오는 7월부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를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기존 DSR에 추가 금리인 스트레스 금리를 적용해 대출 한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7월부터 스트레스 금리가 1.5%포인트로 확대되면 대출한도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줄어들게 된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대출 의존도가 높을수록 규제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며 “스트레스DSR은 한도를 적게는 5000만원, 많게는 1억원대까지 줄이는 정책인데 이 금액이 수요자들 입장에선 매우 클 수가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 동네도 부자 동네였는데…“집값 더 차이나기 전에 갈아탈까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아파트 전경. 신혜원 기자


지역 간 격차가 점차 벌어지자 자산가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상급지와 중·하급지의 격차가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기 전에 서둘러 갈아타기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남2구역 재정비촉진구역 재개발 조합원인 A씨는 “보유하고 있는 주택을 팔고 지금이라도 원베일리 30평대 아파트에 들어가야 하나 싶다”며 “대출 없이 진입할 수 있는 지금이 적기일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실제 KB부동산의 1월 월간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당 아파트 평균매매 가격’을 평(3.3㎡)수로 단순 계산했을 때 같은 규제지역 내에서도 평당 가격이 2000만원대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구와 서초구의 평당 아파트 매매가격은 각각 9619만원과 9252만원으로 1억원에 가까웠던 반면 송파구와 용산구는 각각 7102만원, 7067만원이었다. 강남구 아파트의 평당 가격을 서울에서 가장 낮은 도봉구와(2673만원) 비교했을 땐 차이가 3.5배에 달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결국 어려운 대내외 환경에서 차익이나 투자 수익률을 내려면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지역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려는 심리적 편향이 더 강하게 발생한다”며 “그 좋다는 지역이 흔히 말하는 강남권이나 한강변이 돼 가격을 이끄는(리딩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강남 핵심지의 신축 선호현상이 짙어질 뿐 아니라 재개발·재건축 수요 역시 입지와 교육환경이 탄탄한 ‘똘똘한 한 채’로 몰리고 있다고 봤다.

함 랩장은 “경제의 불확실성이나 정국 불안이 굉장히 큰 상황에서 수요자들의 자산 선택이 ‘선택과 집중’으로 양극화될 수 밖에 없다”며 “최근 분양가 수준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정비사업 수요도 결국 고분양가를 감내하면서도 분양 수요가 있을 만한 지역 위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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