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8억달러 격감…4년만에 최대폭
주식, 5개월 연속 순매도…썰물처럼 빠진 외인
원화 폭락에 트럼프 변수로 해외 투자로 선회
공허한 밸류업…국내 투자자들도 해외로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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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주식투자가 5개월 연속 감소하는 등 국내 시장에 대한 투자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직원들 [연합] |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서 외국인 국내 증권투자가 4년 만에 가장 많이 감소했다. 밸류업 정책에도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투자자들을 잃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벌써 5개월 연속 주식을 순매도했고, 국내 투자자들은 ‘국장 탈출’을 외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은 국내 반도체 산업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과 함께 밸류업 호재 효과가 사라진 점을 배경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트럼프 신정부 출범으로 인한 위험회피 심리 강화와 원화 가치 내림세는 최근 투자 이탈 현상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외국인의 국내 증권(주식+채권)투자는 지난해 12월 38억달러 격감했다. 2020년 12월(47억달러) 이후 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특히 주식투자가 사라졌다. 외국인 국내 주식투자는 지난해 8월 15억4000만달러 감소를 시작으로 12월(-34억3000만달러)까지 5개월 연속 순매도를 기록했다.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 외국인이 순매도한 국내 주식투자 규모만 벌써 168억8000만달러에 달했다.
낮은 주주 환원율과 복잡한 지배구조 등 국내 주식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에 더해 최근 커진 세계 경제 불확실성과 환율 변동성까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최근 환율이 크게 뛰면서 환차손 위험을 느낀 외국인 투자자가 이탈했고, 여기에 세계 무역 갈등이 심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위험 회피 심리까지 강화했다. 우크라이나 파병 등 북한 존재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도 돌출했다. 반도체 경기가 정점을 찍고 점차 둔화하면서 우리나라 주요 산업 성과도 낮아질 수 있단 우려도 커졌다.
한은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기업 성장이 둔화할 수 있단 우려가 생기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순매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상반기까지는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에 대한 기대효과가 있었는데, 하반기엔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국내시장을 외면한 건 외국인 투자자뿐만이 아니다. 국내 투자자들도 국내시장에서 탈출해 해외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국 투자가 늘면서 해외 주식투자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는 8억6000만달러 증가했다. 주식이 5억달러, 채권이 3억6000만달러 늘었다. 2024년 한 해 전체로 보면 해외 증권투자는 722억5000만달러 늘었다. 주식에서 422억달러, 채권에서 300억5000만달러 증가했다.
성적 자체도 국내 주식시장은 주요국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코스피는 9.43%, 코스닥지수는 23.15% 하락했다. 같은 해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26.58%, 나스닥지수는 33.37% 뛰었다.
새해에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무역 갈등 우려가 커졌고,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우리나라 시장 매력이 떨어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1월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주식을 8878억원 순매도했다. 벌써 6개월 연속 코스피 순매도로 금융위기인 지난 2008년 6월∼11월 이후 최장기간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국내 주식시장을 매도하기 시작한 게 지난해 7월 중순, 8월경이었다”며 “수출 증가세가 꺾이기 시작했고 기업 실적이 2분기가 절정이었던 게 확인이 된 데다가 국내 정치 불확실성과 트럼프 효과까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기업 대비 국내 반도체 기업의 이익 기대감이 크지 않고,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아서 당분간 매도 우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투자자도 트럼프 시대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획기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이익을 창출하기 어렵단 생각에 해외 선호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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