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악마가 있었다” 끔찍한 과거…‘한걸음’ 때문에 살았다

중앙 함께 한걸음센터에서 재활 프로그램을 이수한 ‘벚꽃’(가명). 그는 여전히 주5일 센터를 찾아. 글을 쓰고 사람들과 만난다. 최은지 기자.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수감생활 중 무의식적으로 혈관을 만지고 있는 날 느꼈을 때는 내 안에 악마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재판도 약물 사용을 멈추게 하지 못했죠.”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6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이하 마퇴본부) 중독재활센터인 ‘중앙 함께 한걸음센터’에서 만난 ‘벚꽃’(남·가명)은 이렇게 말했다.

마퇴본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공공기관이다. 마퇴본부가 30년 넘게 운영한 중독재활센터는 현재 ‘함께 한걸음센터’로 거듭났다.

전국 함께 한걸음센터의 ‘맏형’격인 중앙 센터에 도착했다. 예상과 달리 파스텔톤의 따뜻한 분위기의 사무실이 눈에 띄었다. 어두운 곳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지내는 것이 익숙할 사용자들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직원들의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벚꽃은 이곳을 방문한 지 8개월째다. 여전히 주 5일 센터에 ‘출근’하고 있다. 살을 에는 추위도, 왕복 2시간 거리도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아무래도 혼자 있으면 좀 우울해진다”며 “센터에 오면 안전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있어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든다”고 말했다.

한때 웨딩·여행업을 하는 사장님이었던 그는 사업이 힘들어지자 이른바 ‘콜뛰기’(콜때기)로 생계를 이어갔다. 콜뛰기는 음지에서 성행하는 일종의 불법 택시 영업이다. 신용불량자가 된 그가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술에 취한 손님들에게 받던 무시와 갑질, 폭행으로 지쳐갈 때 지인으로부터 필로폰을 권유받았다. 단 한 번의 약물 사용으로 그는 중독이 됐다. 심지어 재판을 받는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폭주하는 기관차같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 자신을 망가뜨렸다”고 떠올렸다. 이미 육체적인 반응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응급실에 실려 갔고,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1년6개월 수감생활, 출소 후에 어떻게 단약을 이어갈지 막막했다.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감에도 사로잡혔다. 그는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약물은 나의 출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표현헀다.

출소를 5개월 앞둔 어느 날, 교도소 내 회복이음교육을 받은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당시 만난 강사는 후원자가 됐고, 그의 조언으로 벚꽃은 출소 당일 곧바로 마약퇴치운동본부로 향했다.

중앙 함께 한걸음센터 내 상담실. 최은지 기자.


함께 한걸음센터는 2023년까지 서울, 부산, 대전 3곳에만 있었는데, 지난해부로 전국 17개소로 늘었다. 그 결과 지난해 센터는 초기상담 1만884건, 재활교육 3036건, 사례관리 9988건 등 총 2만3908건의 사회재활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는 전년 대비 62% 증가한 수치다.

처음 중앙 센터를 방문하면 담당 사례관리자가 대상자의 욕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초기상담을 진행한다.

이후에는 마약류 중독 및 재활에 대한 이해 등 기초교육인 단기교육부터 8명 이내 집단 형식으로 운영되는 기본·심화프로그램이 있다. 특히 우울이나 불안감 등 마약류 사용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 문제를 위한 심리상담은 인기 코너다.

프로그램은 청소년, 남성, 여성, 사용자, 가족 등 세부적으로 대상을 나눠 운영한다. 청소년이 주로 사용하는 약물이 성인과 다르고, 혹여 성인과 같이 교육을 듣다가 알지 못했던 약물 정보에 노출될 수 있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마약류 사용자의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중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건강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지지와 응원을 줘야 할 가족이 오히려 회복에 가장 큰 방해가 될 수 있다.

벚꽃은 “약물 중독자가 약물에 집착하듯이 가족들도 중독자에 집착한다. 집착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확인을 부른다”며 “집착하고 확인하고 눈에 보여야 하는 과정이 중독자를 위해서인지, 가족들 본인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 함께 한걸음센터 사무실. 최은지 기자.


회복의 중요한 첫걸음은 자신이 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스스로가 중독자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타인의 경험을 듣는 순간, 이를 인정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센터에서 가장 호응도가 높은 프로그램은 마약류 의존자의 회복을 위한 자조모임, NA(narcotics anonymous)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회복의 길을 걷고 있는 구성원들과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가명을 사용한다. ‘벚꽃’도 자조모임에서 사용하는 이름이다.

약물 사용과 갈망, 회복의 어려움을 편안하게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낀다. 나와 같은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타인의 경험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나와 동일시하는 과정을 거쳐, 함께 해법을 찾아가는 동력이 된다.

벚꽃은 “투약자들끼리 어울려 숨바꼭질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긍정적인 관계를 넓히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며 “안전한 장소에 나와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넓히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4시간 마약류 전화상담센터인 ‘용기 한걸음센터’. 최은지 기자.


마약 투약 범죄는 형사처벌만으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는 특성이 있다. 치료와 회복 재활이 병행되지 않으면 재범 확률이 높다.

이를 고려해 식약처는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대검찰청과 협업으로 사법과 치료·재활을 연계해 마약 중독 회복을 돕는 ‘사법-치료-재활 연계모델’을 시행하고 있다.

중독 재활 전문가인 김에스터 중앙 함께 한걸음센터장은 “중독에서 말하는 회복은 단순히 마약을 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시작으로 이전과는 다른 삶의 습관들을 몸에 익히고 훈련하면서 마약으로 인해 무너졌던 삶의 전반을 다시 세워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한걸음센터 마스코트 새로이(왼쪽)와 청정이(오른쪽). 최은지 기자.


버닝썬 사건 이후 국내 마약 문제가심각해지면서 식약처는 회복·재활에 중심을 둔 ‘한걸음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24시간 마약류 전화상담센터인 ‘용기 한걸음센터’와 마약류 중독 회복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함께 한걸음센터’에 이어 올해부터 숙식형인 ‘희망 한걸음센터’ 설치를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용기 한걸음센터는 마약 사용 욕구가 강화되는 새벽에도 재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전문 상담가와 24시간 상담이 가능한 체제를 구축했다. 익명상담을 원칙으로 하며 중독상담, 치료보호기관 및 함께 한걸음센터 연계 등 안내를 돕고 있다.

시설에 입소해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희망 한걸음센터’가 설치되면 상담·재활·직업훈련 등 밀착관리 속에 사회복귀까지 지원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벚꽃은 작가라는 꿈이 생겼다. 회복자가 회복 단계에 있는 이들을 돕는 회복지원가 프로그램도 수료할 생각이다. 중독과 상담 공부를 위해 대학원 진학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신의 은총을 받는 것과 같다고 한다”며 “도움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변화를 원한다면 자신이 중독자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더 이상 혼자 고민하지 말고 함께 한걸음센터에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당신과 함께 걸어갈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과 나누길 바란다”며 “주저하지 말고 회복의 첫걸음을 지금 내딛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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