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가 품은 ‘다만세’·베토벤 만난 ‘으르렁’…“언젠간 K-팝도 클래식”

문정재 SM클래식스 대표 인터뷰

2020년 창립, SM 명곡 클래식 편곡

14~15일 서울시향과 공연 결실

 

문정재 SM클래식스 대표는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염두하는 것은 SM의 DNA를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SM클래식스 제공]

2007년 세상에 나온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90여년 전 대중과 만난 영국의 ‘희망찬가’인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과 만났고, 레드벨벳의 ‘사이코’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제2번 3악장과 만났다. 엑소의 ‘으르렁’엔 베토벤 ‘운명’ 교향곡이 천둥처럼 쏟아진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갔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 가장 ‘최신의 음악’과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 숨 쉬는 고전 음악의 조우는 이전엔 경험한 적 없는 ‘청각 충격’이었다.

최근 서울 성수동 SM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문정재 SM클래식스 대표는 “음악의 뿌리는 클래식이고 K-팝 역시 클래식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SM 헤리티지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긴 시간의 결실은 SM엔터테인먼트 창립 30주년 기념일에 맺는다. ‘클래식 음악의 성지’인 예술의전당(2월 14일)과 롯데콘서트홀(2월 15일)에 입성, ‘SM 클래식스 라이브 2025 위드 서울시립교향악단’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연다.

‘빨간 맛’으로 출발 …“클래식이든 K-팝이든 좋은 음악은 결국 같아”

“빠빠라 빨간 맛, 궁금해 허니” 여름을 알리는 청량한 트럼펫이 문을 열면 멤버 조이의 목소리엔 오보에가, 아이린의 랩엔 현과 목관이 입혀진다. 자타공인 국내 최고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레드벨벳의 ‘빨간 맛’. 연주만 하기에도 바쁜 서울시향 단원들이 곡 후반부 손을 악기 삼아 박수를 치면, 짜릿한 도파민이 쉴 새 없이 터진다. 영화 ‘기생충’의 음악감독이자 미국 아카데미 회원인 박인영 작곡가의 솜씨다. 문 대표는 그에 대해 “K-팝 편곡의 일인자”라고 소개한다. 2020년 이 곡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자 K-팝 업계는 물론 클래식 음악계에도 신선한 파장이 일었다.

문 대표는 “너무나 상징적인 출발이었다”며 “클래식과 K-팝 음악 양쪽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작곡가와 국내 최고 실력의 악단이 만나니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빨간 맛’은 지난 2020년 출발한 K-팝 업계 최초의 ‘유일무이’한 클래식 레이블 ‘SM클래식스’의 첫 곡이다. SM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인 이곳에선 K-팝의 역사이자 뿌리인 SM의 음악이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다시 태어난다. 첫 곡 이후 SM클래식스만의 자산을 쌓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다. 같은 해 ‘빨간 맛’에 이어 샤이니 종현의 ‘하루의 끝’이 유려한 선율을 싣고 와 ‘샤월’(샤이니 팬덤 ‘샤이니 월드’의 줄임말)을 위로했다.

“세 번째 곡이 나오기까지가 가장 힘들었어요. 오케스트라 버전 재창작을 위한 첫 단계는 함께 작업할 작가(편곡할 작곡가)들을 찾는 일이에요. 그 무렵 100명 이상의 작곡가를 만났고, SM의 청담동 시절 1층 카페에서 하루종일 미팅만 했어요.”

SM클래식스는 그간 클래식 작곡을 기반으로 현대음악부터 대중음악, 게임 음악 등 경계 없는 활동을 해온 작곡가들과 협업해왔다. 새로운 레이블이 생기자 클래식 기반의 젊은 창작자들의 일자리(?)도 늘어난 셈이다.

문 대표는 “유행곡을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형태는 예전에도 있었다”며 “하지만 멜로디를 그대로 연주해 밴드처럼 들리게 하는 것과 편곡 후 기존 음악이 묻어나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오케스트라 버전의 곡을 만드는 것은 한 끗 차이다. 요즘 작곡가들은 트렌드를 잘 알고 있어 굉장히 센스있게 곡을 재창작한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버전 재창작의 핵심은 ‘SM의 DNA’를 지키는 것이다. 동시대 팝사운드로 만든 세련된 멜로디와 난해하고 복잡한 구조, 갑작스러운 변화는 기존 ‘가요 감성’과는 다른 SM만의 음악 스타일을 만들었다. 이러한 음악적 정체성은 SM이 엔터사로는 유일하게 ‘핑크 블러드’라는 기획사 팬덤을 가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SM클래식스의 작업 방식은 K-팝처럼 공동 창작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그는 “여러 작곡가들이 팀을 이뤄 곡을 쓰면 각자의 장점이 모여 보다 재밌는 곡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나와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친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문 대표는 SM클래식스 음악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수장이다. 그의 과감한 아이디어가 지난 5년간 쌓아온 오케스트라 버전 SM 음악의 밑거름이 됐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을 잘게 쪼개 레드벨벳의 ‘사이코’에 샘플링한 것도 그의 판단이었다.

그는 “클래식과 K-팝은 완전히 다른 문법의 언어이지만, 결국 굉장히 보편적 언어를 기반하고 있다는 면에서 통하는 지점이 있다”며 “듣기 좋은 음악은 장르와 무관하게 좋다는 것, 모든 음악은 결국 좋은 음악을 추구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SM의 유산을 듣는다…“언젠가는 K-팝도 클래식 될 것”

다가올 두 번의 공연은 지난 5년간 쌓아온 SM클래식스의 유산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빨간 맛’, ‘다시 만난 세계’ 등 기존에 발표한 곡들을 모아 발표한 첫 정규 앨범 ‘어크로스 더 뉴 월드(Across The New World)’의 수록곡과 공개된 적 없는 곡들까지 총 20곡을 채워 연주한다. ‘SM의 애국가’로 불리는 H.O.T의 ‘빛’과 베토벤 교향곡 제9번 ‘운명’의 절묘한 조화도 들을 수 있다.

이번 공연은 K-팝과 클래식 분야에서 저마다 ‘선구자 역할’을 해온 두 K-파워의 첫 만남이라 의미가 크다. SM의 창사 30주년이면서 서울시향의 재단법인 설립 20주년과 창단 80주년인 올해 전 세계 최초로 열리는 K-팝 오케스트라 콘서트다.

문 대표는 “SM은 K-팝 팬들이 다양한 청취 경험을 할 수 있는 놀이터를 마련하고 있다”며 “‘음악의 기본’인 클래식 언어와의 만남을 통해 음악의 근간을 다지는 한편, 장르간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것은 SM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자부했다.

문 대표가 지난 5년간 꼽는 ‘최고의 성취’는 팬들이 ‘SM 진짜 음악에 미친 집단’이라고 평가한 점이다. 그는 “팬들이 SM에 ‘음악에 진심’이라고 평가해 준 게 가장 큰 성취”라고 했다.

그는 이어 30주년 SM타운 콘서트에 대해선 “S.E.S 바다가 에스파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꿈을 모아서’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잊혀지지 않는 곡을 만드는 것, 그런 것이 클래식 음악이구나. SM이 그것을 실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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