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만 냈다 하면 ‘전곡 뽀개기’…노부스 콰르텟 “이번엔 브람스다”

현악사중주단 노부스콰르텟 6번 째 앨범

‘브람스’ 전곡 연주…예술가 삶의 여정 만나

멘델스존·쇼스타코비치·베토벤 이어 네번째

 

노부스 콰르텟 [목프로덕션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하루에 한 곡씩, 3일의 기한이 주어졌다. 보통은 네 악장을 이틀 동안 녹음하는데 이번엔 시간이 짧았다. ‘시간의 압박’은 무게이자 스트레스였지만, 성취의 충만함은 한계를 극복하게 한 동력이 됐다.

“돌아보면 늘 편하거나 쉬운 곡들로 무언가를 한 적은 없어요. 이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이젠 지금 우리에게 제일 어려운 것을 찾게 되더라고요.” (김재영)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콰르텟은 지난 14일 프랑스 클래식 음악 레이블 아파르떼를 통해 ‘브람스’를 음원으로 공개했다. 실물 음반은 오는 20일 나온다. 전 세계 동시 발매로는 여섯 번째, 국내만으로는 7번째(협업 포함) 음반으로, ‘스트리밍 시대’에선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리더 김재영(바이올린)은 “연주자에게 음반은 명함 같은 것”이라며 “우리의 음악에 대한 생각을 기록해 두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했다.

새 음반 역시 ‘전곡 연주’다. 멘델스존(2020), 쇼스타코비치(2021), 베토벤(2022~2023)에 이어 네 번째. 한 명의 작곡가를 정해 전곡을 연주하는 것은 한 사람의 생을 오롯이 만나는 과정이다. 삶의 여정마다 남겨진 위대한 작곡가의 일기를 다시 쓰는 일인 것이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나온 결과물”(김재영)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연주자에게도 고민과 고통이 끊이지 않는 치열한 작업이다.

최근 서울 한남동 사운즈S에서 기자들과 만난 노부스 콰르텟은 “성취감이라는 단어로 표현이 안 되는 음악적 성장과 한 작곡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깊이에 대한 중독성이 큰 작업”이라고 말했다.

음반엔 브람스의 현악 사중주 전곡인 1∼3번이 담겼다. 김재영은 “브람스는 굉장한 완벽주의자로, 작곡적 측면에서 볼 때도 완벽한 구성을 갖췄다”며 “화성이나 프레이징에 있어 흠잡을 데가 없고, 악보만 봐도 굉장히 촘촘하고 빼곡해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브람스는 두 대의 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 등으로 구성된 현악사중주 곡을 10개 넘게 썼지만, 남아있는 것은 세 곡 뿐이다. ‘완벽주의 성격’ 탓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차지 않는 곡은 모조리 폐기했기 때문이다.

김재영은 “사성부를 하나도 뺄 수 없을 만큼 중요하게 써놓아 연주자의 입장에선 포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덜어낼 건 덜어내려 했고, 그러면서도 중요한 구성적인 기준이 되는 포인트를 잡아 (연주)하려 했다”고 돌아봤다.

지난 2007년 데뷔한 노부스 콰르텟은 올해로 19년차가 됐다. 원년 멤버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40)과 김영욱(36)을 필두로 2018년 비올리스트 김규현(36), 2020년 첼리스트 이원해(34)가 합류해 팀을 끌어가고 있다.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소외 장르’에 가까운 현악사중주를 ‘실내악 불모지’인 한국에서 꾸준히 이어온 것은 사실기적에 가깝다.

데뷔 초창기 노부스 콰르텟은 각종 콩쿠르를 섭렵하며 이름을 알렸다. 2012년 뮌헨 ARD 콩쿠르 2위, 2014년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 우승을 차지했고, 2022/2023 시즌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의 상주음악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명실상부 ‘한국 현악사중주’ 분야의 개척자와 다름 없다.

김영욱 김재영 [목프로덕션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현악사중주 음악에 대한 순수한 애정은 물론, 혼자 하는 일이 아닌 넷이 모여 하나를 완성하는 작업이다 보니 성취감이 배가 된다”며 “피 터지게 고생해 나온 결과물을 통해 또 한 번 성장했다는 만족감이 중독처럼 다가온다. 더 발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지난 19년 활동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현악 사중주는 ‘낯선 맛’이다. 성악처럼 ‘사람의 목소리’가 직관적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처럼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블록버스터 같은 오케스트라처럼 물량공세로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이원해(첼로)는 하지만 “좋은 (현악사중주) 음반을 들으면 각 팀의 색깔,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비교하며 들을 수 있고 작곡가의 영적인 부분이 가장 많이 반영된 장르이기에 교향곡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고 했다.

지난 19년을 돌아보면 달라진 점도 많다. 인생을 살아온 시간에 비례해 음악적 성숙도는 물론 음악을 바라보고 대하는 관점, 직업관에도 변화가 있었다.

김재영은 “(데뷔 초창기가) 콩쿠르 등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목표가 주어지고 도전해 이뤄내는 과정, 그리고 순수하게 음악에 빠져 쏟아붓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직업적 소명과 음악에 대한 철학으로 스스로에게 도전하는 나이가 됐다”며 “열정만 가득했을 때는 무대와 음악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여주지 못했던 것을 전문적으로 들려드려야 한다는 전달자로의 책임감이 컸지만, 지금은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브람스로 돌아온 노부스 콰르텟은 오는 25일 강릉아트센터를 시작으로 부천아트센터(3월 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3월 8일), 광주 예술의전당(3월 27일)에서 관객과 만난다. 서울 공연은 ‘월드 스트링 콰르텟 시리즈’의 첫 주자로 서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에선 세계 최정상 실내악단의 ‘완벽한 합’을 만날 수 있다. 노부스 콰르텟을 시작으로 프랑스의 에벤 콰르텟(4월 3일), 루마니아 출신 코리나 벨체아를 주축으로 한 벨체아 콰르텟(4월 4일), 오스트리아의 하겐 콰르텟(11월 9일)의 공연 등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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