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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자택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발언하고 있다. [AFP]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약품 관세 부과 입장을 재차 밝히면서 제약·바이오업계가 긴장 속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의약품 관세는 바이오를 차세대 산업으로 육성 중인 한국과 약가 인하 정책을 내세웠던 미국 모두에 손해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관세 부과를 단행할 것인지 신중하게 접근하면서 예상되는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나섰다.
관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미(對美) 의약품 수출액은 2015년 3300만달러 수준에서 2024년 13억5900만원으로 10년 새 40배 이상 확대됐다. 전세계 의약품 최대 수입국인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 성장 산업인 제약·바이오업계에 타격은 불가피하다.
미국 역시 손해가 예상된다. 무관세 분야였던 의약품에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 무역 상호주의에 따라 우리도 동일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게 되는데, 이 경우 통상 수출 규모가 큰 쪽의 손해가 크다. UN 무역통계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미국이 한국에 수출한 의약품은 17억8000만달러였다.
특히 관세가 부과되면 약가 인상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외쳤던 약가 인하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앞서 지난 12일(현지시간)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원은 “백악관이 다르게 대응할 일부 분야가 있으며, 그중에는 두 분야(자동차 및 의약품)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이 의약품 관세를 일종의 협상용 카드로 제시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관세를 단행하거나,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방향으로 협상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셀트리온은 19일 ‘주주님께 드리는 글’을 통해 “실제 의약품 관세 시행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망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도 “발생 가능한 상황별로 최적의 대응 체계를 이미 구축해 놓고 있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조치가 시행되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국내 기업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SK바이오팜, 대웅제약, GC녹십자, 유한양행, 한미약품 등이 꼽힌다.
셀트리온은 2025년 미국에서 판매 예정인 회사 제품에 대해 9개월분의 재고 이전을 완료해 올해 영향을 최소화하고, 관세 부과 시 세 부담이 적은 원료의약품 수출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아직 관세정책이 명확하게 결정이 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라며 관세정책이 명확하게 결정되면 검토하겠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하는 의약품은 대부분 필수의약품이 아닌 항암제 및 만성질환 치료제이기 때문에 관세 부과 품목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를 캐나다 소재 위탁생산(CMO) 업체 등을 통해 미국에 수출하는 SK바이오팜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캐나다에 대한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현지 CMO 업체를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상대적으로 관세 리스크에서 자유로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얀센에 비소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의 글로벌 개발·판매 권리를 기술 수출하면서 얀센에서 직접 생산·유통하기 때문이다. 렉라자의 국내 판권은 유한양행이 소유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아직 관세 조치가 단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의견 조회를 하는 단계”라며 “실제 조치가 이뤄지면 그에 맞춰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약품 관세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국내 기업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근희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의 의약품 관련 자국 생산 중심에 대한 정책이 관세가 붙는 원료의약품 및 의약품 종류가 구체화되면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라며 “광범한 원료의약품 및 의약품 품목에 대해 미국 내 생산이 늘어나면 의약품 생산 단가가 비싸질 수 있으며, 약가 인상으로 인한 의료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정책 방향성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