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석칼럼] 계엄, 진실 혹은 거짓…가짜뉴스보다 위험한 ‘정치적 개소리’의 풍년 시대

news-p.v1.20250224.48c1a5a33fb84af9b4f058358e435bec_P1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골드먼 정책대학원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1기 때인 지난 2017년 “트럼프가 거짓말을 ‘절반의 진실’(half-truths)로 둔갑시키는 10단계 방법”이라는 동영상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내놓았다. 다음과 같다.

①트럼프가 거짓말을 한다. ②전문가들이 “그의 말은 근거가 없으며 틀렸다”고 반박한다. 언론도 “트럼프의 주장은 잘못됐다”고 보도한다. ③트럼프는 “부정직하다”며 전문가와 언론을 맹폭한다.

④트럼프가 연설과 소셜미디어로 거짓주장을 반복하며 “많은 국민이 내가 옳다고 믿는다”고 강변한다. ⑤주류 언론이 트럼프의 거짓주장을 “분쟁중인 팩트”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⑥트럼프는 모든 매체를 통해 거짓주장을 계속하고 그의 대리인(지지자)들까지 나서 TV와 온라인에서 그것을 반복한다. ⑦주류 언론이 트럼프의 거짓주장을 “논란”이라고 쓰기 시작한다.

⑧대부분의 공화당 지지자를 포함해 트럼프의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는 미국민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공표된다. ⑨언론은 트럼프의 거짓주장을 “미국을 양분하는 열성지지자들을 반영한 주장”으로 서술하기 시작한다. ⑩진실이 무엇인지 대중의 혼란은 가중되고 사회여론은 호도된다. 트럼프 승리!

라이시 교수에 따르면 트럼프의 거짓말은 언론에 의해 ‘잘못된 진술’(false statement)→‘분쟁중인 사실’(disputed fact)→‘논란’(controvercy)의 표현 단계를 거치며 결국 ‘정치 성향에 따라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애초에는 사실의 진위와 논리의 옳고 그름이 문제였으나 몇 단계를 거치며 최종에는 ‘찬반’만이 중요한 사안이 된다.

처음에는 검증의 대상이었으나 나중에는 믿음의 선택지가 된다. 심지어 트럼프 1기 당시 백악관 대변인 숀 스파이서는 이를 “대안적인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고까지 불렀다. 라이시가 말한 ‘절반의 진실’이란, 적어도 미국민들 절반이 믿는 주장이자 가짜와 진짜일 확률이 공평하게 반반인 진술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단계가 거듭될수록 트럼프는 연설, 인터뷰, 회의, 브리핑, TV, 소셜미디어 등 가용한 정보 생산 및 유통 자원과 매체를 총동원하며 거짓 주장을 일방적으로 반복하고 반박 증거와 의견을 묵살하며 출처·진위 불명의 정보를 확산시켜 비판자들의 신뢰성과 도덕성을 오염시킨다.

대리자와 지지자들도 이를 퍼나르거나 같은 주장을 반복해서 확대 재생산한다. 여론조사는 검증 가능한 거짓말을, 찬반이 거의 엇비슷한 논쟁으로 바꾸는 ‘변곡점’이 된다.

왠지 어디서 본 듯한 느낌 아닌가. 익숙한 전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아마도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12·3 비상 계엄 사태 이후 한국의 공론 장에선 거짓정보와 가짜뉴스, 위법적인 주장이 유례없는 속도와 규모로 확산되고 가공할 힘을 얻는 초유의 현상이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과 체포, 구속 등을 둘러싼 대립된 주장들과, 수사기관의 수사와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과정에서 계엄 주동·가담자들끼리의 엇갈린 증언은 사회 혼란과 분열을 증폭시키고 있다.

광주시민총궐기대회

‘가짜뉴스’보다 ‘개소리’

2017년 초 제러드 베이커 월스트리트저널(WSJ) 편집장은 “앞으로 WSJ는 트럼프의 잘못된 진술을 ‘거짓말’이라고 낙인찍지 않을 것”이라며 “거짓말엔 (대중을) 호도하고자 하는 계획된 의도가 있어야 하는데 트럼프의 경우엔 이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라이시 교수가 ‘10단계론’을 발표한 이유다. 당시 WSJ 편집장의 발언은 ‘사실 확인’(팩트 체크)이라는 언론의 의무를 망각한 것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아야 했지만, 역설적으로 현대의 권력자나 정치가가 행하는 말의 본질을 더 정확히 드러냈다. 바로 거짓말보다 ‘개소리’(bullshit)다. 이는 해리 프랭크퍼트 프린스턴대 철학 교수가 2007년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를 펴내면서 본격적인 연구 대상이 된 개념이다.

프랭크퍼트 교수의 ‘개소리’란 한마디로 참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늘어놓는 ‘아무말 대잔치’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진실을 알고 있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도록 하거나 허위를 믿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거짓말쟁이나 정직한 사람은 모두 ‘참’과 ‘거짓’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며, 다만 서로 다른 편에 설 뿐이다. 반면, 개소리를 하는 사람의 관심은 애초부터 진릿값이 아니며 참의 편도 거짓의 편도 아니다. 개소리꾼이 말하는 것이 반드시 거짓일 필요도 없다. 프랭크퍼트는 개소리꾼이 “그저 자기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낼 뿐”이라며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라고 했다.

WSJ 편집장이 ‘트럼프에게선 대중을 호도하고자 하는 계획된 의도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 말의 뜻은 트럼프가 거짓 주장을 하는 목적이 잘못된 정보 그 자체를 사람들이 믿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일 것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주한미군이 4만명(실제로는 2만8000여명)이라는 거짓 주장을 거듭하는 것은 이 수치를 대중들이 믿도록 하기 위한 게 아니다. 그에겐 주한미군 규모가 1만명이든 10만명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 관심사는 오로지 한국정부의 방위비 분담금을 높이거나 다른 경제적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을 ‘세계 최고의 거래 기술을 가진 비즈니스맨’이며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웨이크포레스트대 심리학과에 ‘개소리연구소’(Bullshit Studies Lab)를 연 존 페트로첼리 교수는 ‘우리가 혹하는 이유’(원제 ‘인생을 바꾸는 개소리 탐지의 과학’)에서 “대개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거나,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거나, 부정적인 판단을 피하거나, 이익을 얻거나,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개소리를 한다고 했다.

페트로첼리 교수는 ▷객관적 증거를 무시하고 증거에 근거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 사람 ▷실제로는 적절한 지식을 갖추지 못했으나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자기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사람 ▷관심·명성·부에 관심이 많은 사람 ▷집단 구성원으로부터 환심을 사거나 소속감을 높이려는 사람 등이 개소리 성향이 높은 유형으로 꼽았다.

특히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이 청중보다 많이 안다고 느끼는 사람”이 개소리를 한다고 했는데, 그가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추구하며 윗사람으로부터의 좋은 평판과 아랫사람으로부터 충성심을 열망한다면 100%의 확률로 ‘회의 시간 내내 자기 혼자 근거도 없는 말을 떠벌이며 반박시에는 격노하는 보스’가 될 것이다.

프랭크퍼트 교수는 “광고와 홍보의 영역 및 오늘날 이와 밀접히 연관된 정치 분야는 개소리의 사례들로 온통 가득차 있다”고 했는데, 그뿐이랴. 당신의 직장이나 커뮤니티에서도 어렵지 않게 개소리의 훌륭한 사례와 모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개소리를 믿는가

개소리 또한 거짓말처럼 대중 기만술이다. 추종자를 얻지 못하면 미친 사람의 헛소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개소리에 주동자, 공모자, 동조자, 추종자가 있고, 체제의 작동과 함께 생산·유통·확산될 때 특히 위험하고 해악적이다. 우월한 권력이나 지위, 명성, 매체, 재산 등을 가진 개인이나 세력이 만들어내고.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동원해 전파시키며.

그들과 이해를 같이 하거나 파생적인 이익을 획득하려는 다수의 공모·동조자들이 확산시키고, 이를 믿고 따르는 추종자들이 대규모로 등장하게 되면 개소리는 공동체를 훼손, 파괴, 붕괴시킬 수 있는 위협이 된다. 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 탄핵과 체포, 구속, 수사, 재판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도 ‘개소리의 생태계’가 이미 위험한 수준으로 형성돼 있거나 형성돼 가고 있음이 드러났다.

문제는 돈이나 지위, 권력 등 명백한 이익을 목적으로 ‘개소리’를 생산하거나 유통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다. 유튜버야 조회수와 ‘슈퍼챗’을 얻기 위해서라지만 그들의 허황된 말을 믿고 퍼뜨리며 거리에까지 나오는 대규모 군중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설령 자신에게 손해가 되고 공동체에 해악이 될지라도 개소리를 믿고 따르는 이들의 행동 말이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정치·종교 지도자처럼 권력과 명성을 가진 이들이 권위 있는 수단이나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면, 대중들의 믿음은 강화될 수 밖에 없다. 기업의 광고나 마케팅, 홍보와 다르지 않으며, 최근엔 정치나 종교도 이러한 최첨단의 전략과 설득, 영업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인지 편향도 개소리의 추종자를 낳는 이유가 된다. 특히 사람들이 시간이나 정보가 불충분해 심사숙고할 여유가 없을 때 증거와 논리를 종합적으로 탐구하기 보다는 적당한 노력으로 신속하게 의사를 결정하는 ‘어림짐작의 기술’을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하는데, 이는 직관이나 경험에 의존한 편향적 판단을 낳을 가능성을 높인다.

존 T.조스트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는 ‘체제정당화의 심리학’에서 “사람들은 (많은 경우 무의식적, 비의도적으로) 기존의 사회·경제·정치 제도 및 합의를 포함한 현 상태의 다양한 측면을 방어하고, 정당화하며, 강화하도록 동기화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설령 자신에게 부당하거나 불리한 체제나 질서라고 해도 현상태를 옹호하려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존 체제가 위협받을 때 ▷기존 체제가 필연적이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느껴질 때 ▷체제가 전통적이고 오래된 것으로 지각될 때 ▷개인이나 집단이 체제의 권위자에 대해 무력감이나 의존성을 느낄 때 체제 정당화 동기가 활성화 또는 증가한다고 했다.

조엘 딤스데일 미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캠퍼스 정신의학과 석좌교수는 ‘세뇌의 역사: 파플로프에서 한국전쟁 그리고 소셜미디어까지’에서 소셜미디어를 ‘세뇌’의 도구라는 측면에서 접근한다. 그는 “세뇌는 외부와의 소통이 제한되고, 사람들이 은밀하고 파괴적인 강압을 받을 때 촉진된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면서 “소셜미디어가 허위 정보와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근본주의 및 극단주의를 부추길 목적으로 활용될 때, 소셜미디어는 얼마나 큰 능력을 발휘할까”라고 물었다.

다시 헌법과 시민의 시간, 개소리로부터 민주주의를 구할 때

헌재와 수사기관에선 증언이 엇갈리고, 국회에서는 여야의 주장이 충돌하며, 광장에선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시위와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세력이 대결하고 있다. 어느 한쪽은 사실의 진위와 사건의 진상에 무관심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와 권력의 향방만 쫓는 ‘개소리’ 추종 진영일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개소리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선 의심하고 질문하고 확인하고 합리적 사고를 견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페트로첼리 교수는 특히 증거를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신 바짝차리지 않으면 낚이는 것은 ‘피싱’도 개소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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