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스 킹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한국문학·한국어학과 교수가 21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한국 정부와 기업은 한국어가 세계적인 언어로 자리 잡도록 지속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왜 투자하지 않나요? 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진로를 고민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는 것 외에는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40년 넘게 한국어를 연구하고 익힌 로스 킹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한국문학·한국어학과 교수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경제는 세계 14위(명목 GDP 기준)에 해당하지만,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지원하는 측면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킹 교수와 함께 다프나 주르(한국명: 주다희) 스탠포드대 한국문학과 부교수를 만났다. 한국에 애정이 각별한 이들은 각각 올해로 26년째를 맞은 미국 미네소타주 콘코디아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 설립자와 촌장이다. 이곳은 매년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려는 외국인 학생들로 붐빈다. 프로그램 참가자가 정원을 초과해 4개월 전부터 일찌감치 대기자 명단이 만들어질 정도다.
외국 청소년이 K팝을 춤추며 따라 부르고, K드라마의 대사를 외우는 한류 열풍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기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언어학회(Modern Language Association)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수는 약 75%로 급격하게 증가한 반면 2009년 이후 다른 외국어 과정의 학생 등록 수는 감소했다. 킹 교수는 “통계가 집계된 이래로 단 한 번도 성장세가 꺾이지 않은 언어가 한국어”라고 강조했다.
![]() |
다프나 주르 스탠포드대 한국문학과 부교수와 로스 킹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한국문학·한국어학과 교수가 21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그러나 이런 흐름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게 킹 교수의 주장이다. 혼다와 소니 같은 일본 기업들이 1970년대부터 북미 지역 일본학 연구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해온 것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한 차이가 드러난다. 지난해만 해도 유니클로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 4000만 달러(약 580억 원)을 지원했다.
킹 교수는 “1972년 일본은 재단을 설립해 10개의 미국 대학에 각각 100만 달러씩 기부했고, 이를 20년간 지속했다. 당시 100만 달러를 오늘날 가치로 보면, 700만 달러(약 100억 원)에 해당한다”며 “그런데 오늘날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어느 대학에든 700만 달러를 지원한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청소년층에서 관심이 높은데 반해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외국인들이 적은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는 “국가 홍보나 민족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국어 교육이 지속 가능하다”고 말했다.
주르 교수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을 ‘소비자(customer)’로 여기는 시선에 안타까워했다. 그는 “나는 한국어를 세계적인 언어로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장애물이 너무 많다”며 “언어에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지식을 쌓아가려는 사람들을 파트너이자 친구처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의 기부를 막는 정부의 절차적 시스템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 확장 흐름을 가로막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 미국의 한국어 마을인 숲속의 호수에 사재 500만 달러(약 55억 원)를 기부했지만, 이를 반영하는 데만 9개월이 걸렸다. KF를 거친 뒤 국회 특별위원회 승인까지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해서다.
킹 교수는 “한국에는 ‘지정기부금 제도’라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문제는 이 제도가 적게는 1만 달러, 많게는 10만 달러 정도만 고려한다는 점”이라며 “누군가가 1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염두해 두지 않는다. 이는 매우 심각한 정책적 문제”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