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점령 후 군복 차림 첫 방문
“최대한 빨리 영토 해방 기대” 밝혀
종전 협상서 ‘러 영토’ 주장 포석용
미국 ‘30일 휴전안’엔 미온·신중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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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최전선 쿠르스크주를 방문해 군 수뇌부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EPA] |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합의한 ‘30일 휴전’에 대한 수용 압박을 받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점령한 접경지 쿠르스크주를 군복 차림으로 직접 방문해 군 수뇌부들과 회의를 열었다. 푸틴 대통령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은 우크라이나군의 침공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군 전투 사령부를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군에 점령된 쿠르스크 영토를 완전히 되찾으라고 지시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합의한 ‘30일 휴전’ 수용을 압박받는 상황에서 선결 과제로 쿠르스크 영토 회복을 내건 것으로 풀이된다. 쿠르스크 방문을 통해 러시아군이 전선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30일 휴전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당초 주재하려던 정부 경제 회의를 업무 일정상 연기했다고 밝혔다. 쿠르스크 방문은 예정에 없던 돌발 일정이었던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궁과 러시아 국영방송이 공개한 영상에서 책상에 지도를 펼쳐놓고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의 보고를 받았다. 그는 “쿠르스크에서 적을 패배시키는 임무가 완수되고 최대한 빨리, 완벽하게 이 지역 영토가 해방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역 영토를 완전히 탈환한 뒤 국경을 따라 보안 구역을 만드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현재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그는 “쿠르스크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러시아군과 싸운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라며 쿠르스크에서 잡힌 우크라이나군은 테러리스트로 취급할 것이며 이들에 대한 범죄 수사는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점령한 쿠르스크 지역이 여전히 러시아 영토임을 강조하고 강한 수복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또한 우크라이나군을 위해 싸운 외국인 용병들은 제네바 협약을 적용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쟁포로 대우 등에 관한 제네바 협약은 생포한 군인을 재판에 회부하는 것을 금지한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쿠르스크에 있는 우크라이나군이 포위되고 고립됐으며, 이들에 대한 조직적인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1100㎢ 이상의 영토를 탈환했다며 “이는 적이 점령했던 지역의 86%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 닷새간 24개 마을과 259㎢의 영토를 되찾는 등 최근 반격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아울러 그는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 전투 과정에서 6만7000명 이상의 병력과 용병을 잃었다면서 “이들은 우크라이나군에서 가장 잘 훈련되고 사기가 높은 부대 소속”이라고 밝혔다. 또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 430명을 생포했다면서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에 대한 계획은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우크라이나는 쿠르스크 영토를 점령해 이를 향후 종전 협상에서 영토 교환의 카드로 활용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쿠르스크 대부분을 수복한다면 이런 카드가 무용지물이 될 전망이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최근 600여명의 러시아 병사가 가스관 내부를 통해 약 15㎞를 이동해 우크라이나군의 허를 찔렀다면서 “이 작전이 우크라이나군의 방어망을 무너뜨리며 러시아군의 공세를 도왔다”고 말했다. 또 그는 쿠르스크 일부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수미주로 진입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서남부에 위치한 접경지 쿠르스크는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군에 기습 공격당해 일부가 점령당했다. 지난해 10월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은 주로 이 지역 수복 작전에 투입되고 있다.
앞서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전날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고위급 회담을 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30일간 휴전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 정상회담 전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30일간 휴전하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 “이제 (휴전은) 러시아에 달렸다”면서 러시아의 수용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부측) 사람들이 현재 러시아로 가고 있다”면서 “우리는 휴전의 절반가량을 달성했고 러시아가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완전한 휴전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러시아 양측 최고위 안보 참모도 이날 전화 통화로 30일 휴전 방안을 논의했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전쟁 종식과 러시아-우크라이나의 평화 합의를 위해 러시아 측 대화 상대방과 전화 통화를 했다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통화는 전날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30일 휴전에 합의한 뒤 미국과 러시아 최고위 안보 참모 사이에 이뤄진 첫 소통이다. 존 랫클리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국장도 전날 통화했다.
일단 러시아는 30일 휴전안에 대해 미온적이고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는 휴전이 우크라이나에 재무장 기회를 제공할 뿐이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여왔다. 러시아가 쿠르스크 영토를 완전히 탈환하기 전까지는 휴전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향후 휴전안에 대한 미국의 설명을 들은 뒤 러시아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이날 브리핑에서 말했다.
전후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방안을 논의해 온 유럽은 ‘30일 휴전안’을 접한 뒤 유럽 주도의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조직인 ‘의지의 연합’ 창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존 힐리 영국 국방장관은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 5개국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의지의 연합’을 세우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의 장기적인 안보 보장은 먼저 우크라이나군 자력으로 시작해야 하며 이를 유럽이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에는 파리에서 34개국 군 참모총장 및 군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후 안보에 관한 회의가 열렸다. 김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