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극단 조건’ 그대로…우크라 전면 휴전 갈길 멀다

푸틴 “미국의 우크라 지원 중단” 요구

미·러 발표 합의안도 미묘하게 달라

주요 외신 “푸틴, 최소한의 외교만”

국경 문제 합의 등 논의사항도 산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FP]

미국과 러시아 정상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에너지 휴전’에 합의한 가운데 이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합의한 ‘30일 휴전안’에는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아 완전한 휴전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30일간의 에너지 휴전? 전쟁은 계속=18일(현지시간) 미국과 러시아 정상이 장시간 이뤄진 통화 끝에 합의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30일간 에너지 인프라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은 전면 휴전과는 거리가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내 에너지와 인프라 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할 뿐 국경 지역 도시, 항구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주요 외신도 해당 합의를 혹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접촉을 통해 기대했던 결과에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며칠 동안 백악관에서는 평화가 가까워졌다는 낙관적인 발표가 이어졌지만, 실제 통화 결과는 그 기대에 못 미쳤다”고 지적했다.

폴리티코는 “푸틴 대통령은 최소한의 외교적 행동을 보이며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하는 것을 30일 동안 보류했다”며 “‘에너지 합의’는 러시아의 에너지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방어적 양보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피비린내 나는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은 그대로 살상지대로 남고 드론과 미사일 폭격도 우크라이나 전역에 계속 쏟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휴전안’에 자신감을 보였던 터라 이번 합의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으로부터 ‘30일 휴전안에 러시아도 동의할 것인가’를 묻자 “러시아는 그럴 것”이라고 답했으나, 실질적 결과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미묘하게 다른 미국·러시아 발표…푸틴 ‘극단 조건’ 그대로=또한 에너지 휴전 합의 내용도 불명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에너지 및 인프라’로 설명했지만, 러시아 측 발표는 ‘에너지 인프라’로 적시된 것도 미묘한 ‘복선’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는 정유 시설과 송유관 등 에너지 인프라만 휴전 대상으로 간주했지만, 미국은 거기에 더해 교량, 철도, 도로 등 민간 인프라까지 폭넓게 휴전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라면 향후 문안 협상에서 진통이 있을 수 있다. NYT는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 조치가 실제로 시행될 경우 (양국이 합의를 이행하도록) 어떻게 강제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다만 미국 정부는 3년 만에 양국이 처음으로 군사 행동을 중단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백악관은 에너지 및 인프라를 대상으로 한 부분적 휴전을 ‘평화를 향한 움직임의 시작’이라고 표현함으로써 평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자평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매우 좋았고 생산적이었다”며 “우리는 모든 에너지와 인프라에 대한 즉각적인 휴전에 합의했으며, 완전한 휴전과 궁극적으로 이 끔찍한 전쟁의 종식을 위해 신속히 노력하자는 데 동의했다”고 성과를 강조했다.

▶어려운 조건 내세운 푸틴…휴전 협상 더 꼬일수도=앞으로 전면 휴전을 위한 합의 과정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휴전 조건으로 제시한 안은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분쟁 확대를 방지하고 정치적·외교적 수단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핵심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국의 군사 원조 및 정보 공유의 완전한 중단”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에너지 휴전안을 동의하면서도 “우리의 파트너들은 (러시아가 요구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중단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지원이 계속되길 희망한다”며 반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틴이 극단적 목표에 대해 타협할 의지가 있다는 징후는 없었다”며 “그의 목표는 사실상 독립 국가로서 우크라이나의 존립을 끝내고, 옛 철의 장막 동쪽으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 대부분을 되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영토에 대한 논의도 사라진 터라 국경 문제에 대한 합의도 이어가야 한다. 이 외에도 우크라이나의 협상 참여 시기 및 방식, 러시아군의 철군 조건, 유럽 국가들이 추진하는 평화유지군 배치 등의 문제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미국과 러시아의 발표문에선 전혀 언급되지 않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문제도 미국과 러시아 간에 해결해야 할 이슈 중 하나로 지적된다. 미·러 간 협상에서 북한군 문제가 전면에 부상하게 되면 북러 간 안보동맹 구도뿐 아니라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관심의 대상이다.

남은 휴전을 위해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중재를 이어갈 전망이다. 백악관은 미국과 러시아 정상이 이날 통화 외에도 ‘흑해 해상에서의 휴전 이행과 전면적 휴전 및 영구 평화에 관한 기술적인 협상’을 중동에서 즉시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김빛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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