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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광고판을 증강현실(AR)로 불태워버리는 버거킹 광고. |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퀴즈 하나. 한국에서 가장 많은 매장을 보유한 글로벌 햄버거 프랜차이즈는 어디일까?
문제가 너무 쉽다며 맥도날드를 떠올린 당신, 틀렸다. 정답은 ‘버거킹’(전국 513개 매장, 올 2월 기준)이다. 맥도날드는 전국 422개 매장(작년 7월 기준)을 보유해 글로벌 햄버거 프랜차이즈 가운데 2순위다.
전 세계 매장 수가 약 3만 8000개에 달하는 맥도날드를 한국에선 버거킹이 매장 수로 앞질렀다. ‘사건’이다.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만 맥도날드보다 더 많다는 버거킹. 이유가 있을까?
사람의 기억은 ‘처음’에 집중된다. 버거킹은 한국인에게 첫사랑 같은 존재다. 1984년 4월 종로에 문을 연 버거킹 1호점은 한국 최초의 ‘미국 햄버거’ 프랜차이즈 매장이다. 1988년 압구정에 1호점을 연 맥도날드보다 4년 이른 시점이었다.
당시 미국 본토 햄버거 브랜드의 종로 상륙은 2023년 ‘파이브가이즈’(미국 햄버거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국내 상륙에 버금가는 이벤트였다. 국산 햄버거 프랜차이즈 롯데리아 등이 1970년대 말 영업을 먼저 시작했지만, 불맛 패티와 더 커진 사이즈를 내세운 버거킹 와퍼의 고급화 전략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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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버거킹 광고. 단순한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고급재료를 사용한 ‘양식’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버거킹ⓒ] |
버거킹 역시 고급화 전략을 대놓고 구사했다. 온라인에 남아있는 당시 광고(상단 사진)를 살펴보면, ‘버거킹, 포크나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는 양식입니다’라는 카피가 눈에 띈다. 광고 하단에는 “그냥 빵을 먹는 기분으로 보다는 그 내용을 잘 알고 보면 ‘과연 제대로 갖춘 햄버거로군’하고 다시 생각게 됩니다”라는 문구도 실려있다.
당시 국내 햄버거 브랜드로는 롯데리아, 아메리카나(하단 사진), 커널리(하단 사진), 패밀리, 뉴도널드 등 5개 업체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1984년 5월 12일자 조선일보는 ‘미국 상표 음식이 몰려온다’ 제하 기사에서 “올들어 주식회사 한암과 한양 등이 가세, 판매전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라며 버거킹의 데뷔를 소개했다. 여기서 언급된 주식회사 ‘한암’이 당시 버거킹 운영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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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국산 햄버거 브랜드. 아메리카나(왼쪽), 커널리(오른쪽) 광고 전단. |
한국에서 강한 버거킹이지만 위상이 달라진 건 최근의 일이다. 과거 국내 버거킹 매장 수는 2016년 266개, 2017년 340개, 2018년 370여개 수준으로 맥도날드보다 적었다.
그러나 2016년 발생한 ‘맥도날드 햄버거병 사건’이 버거킹엔 도리어 기회가 됐다. 버거킹은 공격적인 마케팅과 드라이브스루(DT)를 포함한 매장 확장으로 국내에서 접근성이 가장 높은 햄버거 프랜차이즈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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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킹을 비롯한 미국 음식 유입을 보도한 신문기사 제목(왼쪽). 버거킹 1호점에서 식사를 하는 여대생들의 모습(오른쪽). [1984년 조선일보 보도사진] |
맥도날드를 압도하는 국내 버거킹 매장의 접근성은 전 세계에서도 기록적인 수준이다. 미국·중국·프랑스·캐나다·영국 등 맥도날드가 진출한 글로벌 주요 시장 가운데 버거킹이 맥도날드보다 많은 나라는 한국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만 봐도 버거킹의 위상이 한국만 못하다. 공교롭게도 일본은 맥도날드가 첫번째로 진출한 아시아 나라다.
버거킹은 반대다. 아시아 주요 시장 가운데 한국은 가장 먼저, 일본(1993년)은 가장 늦게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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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킹 ‘Burn that Ad’ 캠페인. [버거킹ⓒ] |
지난해 4월 버거킹이 ‘40년 만에 와퍼 판매 종료’라는 문구로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이런 논란은 해외에서 선보인 버거킹의 파격 행보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국내보다 훨씬 더 도발적이고, 화끈한, ‘마라 맛’을 선보이는 국제 광고제 수상작들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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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킹이 2019년 브라질에서 선보인 ‘저 광고 불태워버려’(Burn That Ad) 캠페인. 2019년 칸 국제 광고제에서 다이렉트 골드 상을 받았다. |
버거킹은 경쟁사 맥도날드를 대놓고 거론하는 ‘실명 저격’도 불사한다. 2019년 선보인 ‘저 광고 불태워버려’(Burn That Ad) 캠페인은 증강현실(AR) 기술까지 동원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맥도날드에 불을 지르도록 부추긴다.
방법은 간단하다. 버거킹 스마트폰 앱을 다운받고 카메라를 이용해 맥도날드 광고를 스캔하면, AR 이미지가 화면 속 광고를 불태워버리는 방식이다. 소비자들은 맥도날드에 ‘가상 방화’를 저지른 대가로 버거킹 무료 와퍼 쿠폰을 받았다.
해당 캠페인은 ‘불맛’ 와퍼를 내세우는 버거킹의 정체성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버거킹 자체 어플리케이션 홍보도 제대로 됐다. 해당 프로모션으로 확보한 앱 다운로드 건수는 한 달 새 100만 건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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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cy D’(맥도날드를 이르는 영국의 슬랭)에 와퍼의 뒤를 지켜줘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버거킹 광고 캠페인. [버거킹ⓒ] |
같은 해 영국에서 나온 ‘와퍼 뒤 빅맥’ 광고 역시 맥도날드를 공개 저격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해당 캠페인은 그간 선보인 광고 속 버거킹 와퍼를 다시금 보여줬다. 와퍼 광고 때마다 와퍼 뒤편에 맥도날드 빅맥이 숨어있었지만 작아서 안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다. 이름부터 형용사 ‘whopping’(굉장한)에서 착안했을 정도로 ‘크기’를 강조해 온 와퍼만의 정체성을 보여준 광고다.
맥도날드와 글로벌 햄버거 프랜차이즈 경쟁을 벌여온 버거킹은 이제 ‘수제’ 프리미엄 버거들의 공습도 받고 있다. 프리미엄 프랜차이즈 버거와 프리미엄 수제버거 시장은 공존할까, 경쟁할까?
최근 3년 새 국내 상륙한 미국 프리미엄 수제버거 브랜드는 2022년 슈퍼두퍼(Super Duper), 2023년 파이브가이즈(Five Guys), 2024년 재거스(Jaggers)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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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지코리아 제공] |
이 가운데 가장 입소문을 탄 파이브가이즈의 대표 햄버거는 단품만 1만 3400원이다. 버거에 곁들이는 파이브가이즈 밀크셰이크 가격은 8900원. 버거킹 와퍼 단품(8000원)보다도 비싸다.
파이브가이즈에 ‘간 김에’ 버거와 밀크셰이크를 모두 먹으려면 인당 2만2300원 지출은 기본이다. 감자튀김과 탄산음료를 포함한 버거킹 와퍼 세트가 1만원 초반임을 고려하면 거의 2배 가격인 셈이다.
‘일상 속 작은 사치’ vs ‘한 번의 특별한 외식 경험’. 둘 중 어느 쪽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릴까? 둘 다는 누릴 수 없어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오르는 물가, 얇아진 지갑이 ‘가격값’ 하는 햄버거를 판가름할 시험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