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속 국민밉상 김의성 “담백하게 나이 먹자 다짐”[인터뷰]

영화 ‘로비’의 신스틸러 ‘최 실장’ 역
일방적 호의, 객관적으로 보면 끔찍해
현실 안주보단 언제나 젊게 사는게 목표

4월2일 개봉하는 영화 ‘로비’에서 현실감 있는 악역 캐릭터를 또 한번 탄생시킨 배우 김의성을 2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쇼박스 제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다들 직장에 ‘최 실장’ 같은 사람 한 분씩 다 계시죠? 평소에 살 때도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함부로 멋있어 보이려는 노력도 하지 말고, 그냥 담백하고 겸손하고 해가 없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영화 ‘로비’ 개봉을 앞두고 2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의성은 영화를 본 여성 관객들 사이에서 ‘PTSD’(정신적 외상)를 호소하며 장탄식이 터져 나왔던 반응에 대해 언급했다.

‘부산행’의 악독한 악역 ‘용석’보다도 ‘로비’ 속 능구렁이 같은 ‘최 실장’은 더 현실에 있을 법한 빌런이다. 그는 “용서는 안 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최 실장의 행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해는 간다. 재밌는 캐릭터라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중년의 중앙부처 실장(1급 공무원)으로, 창욱(하정우)의 회사가 입찰하려는 사업의 계약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인물이다. 창욱은 그에게 로비하려고 최 실장이 무려 ‘10TB’의 경기 영상을 담아두고 짬 날 때마다 들여다볼 정도인 미모의 여성 프로골퍼를 섭외한다. 본격적인 접대 골프 자리에서 최 실장은 ‘진 프로’(강해림)에게 “탱고를 가르쳐주겠다”며 대놓고 들이대거나 “내가 남자로 보이느냐”는 노골적인 질문까지 서슴지 않는다.

“사실 전 제가 ‘악역’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하진 않았다. 최 실장은 진짜 진 프로를 너무 좋아해서 내적 친밀감을 느꼈던 것이다. 물론 그게 혼자만의 일방적인 문제지만 말이다. 들어보니까 실제로 여자 프로골퍼들이 연습장에서 혼자 연습하고 있으면, 일반인 아저씨들이 선수인지 모르고 ‘골프 모르시네’ 이러면서 그렇게 자세 교정을 해주겠다고 나선단다. 자기는 ‘선의’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얼마나 끔찍한지 대표해서 보여주는 캐릭터가 바로 ‘최 실장’이다.”

‘로비’ 스틸컷[쇼박스]

서른 살 연하의 여성에게 불쾌한 ‘플러팅’을 남발하는 것 외에도 최 실장이 샷을 치기 전에 폼을 잡는 특유의 엉덩이 씰룩거림은 또 하나의 킬링 포인트다.

김의성은 “하정우 감독이 그렇게 하라고 디렉션을 줬다”면서 “골프 채널을 보면 일반인 아저씨들이 고등학교 동문 모임으로 경기하는 게 나온다. 구력은 오래됐는데 여전히 자세는 어수룩한데, 그런 모습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김의성의 표현에 따르면 창욱과 최 실장, 그리고 박 기자(이동휘)는 ‘구렁이랑 여우들’이다. 진 프로는 그사이에 고립된 ‘한 마리의 사슴’으로 이질적으로 그려진다. 경기 성적도 내림세이고, 생방송에서 보여준 태도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등 구석으로 몰린 그녀가 접대 골프에 나오자 구렁이와 여우는 제대로 먹이를 문 것처럼 막무가내로 군다. 하지만 최 실장의 치근덕거림이 절정에 달하자 진 프로는 역겨움을 못 이기고 면전에 토를 뿌리고 만다.

김의성은 “적합한 처벌을 받은 거라고 생각한다”며 “어떤 분들은 그거론 부족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자기가 팬심으로 좋아함과 동시에 자기 맘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서 ‘이 새끼, 저 새끼’하는 쌍욕을 들었으니 사는 내내 부끄러워 괴로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쇼박스]

너무나 맛깔나게, 매번 현실감 있는 악역 캐릭터를 탄생시키는 바람에, 김의성을 향해 ‘개저씨 캐릭터 1인자’라는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별칭도 따라온다.

김의성은 “어쩌다 보니 제가 무난히 밥 벌어 먹고사는 게 그 ‘개저씨’ 덕이 크다”고 너스레를 하면서 “그런데 그보다 조금 더 넓게 내가 가진 ‘악역’에 대한 비전을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인공이 아닌 상황에서 배우한테 제일 재밌는 건 주인공이랑 싸우는 거다. 저는 스스로 욕망이 있고, 꾀도 내고,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는 캐릭터가 좋다. 저만의 ‘악역론’이다. 저는 악역을 연기할 때 항상 그 인물의 편이 되고, 진심으로 이기기를 열망하면서 연기한다.”

김의성은 1987년 연극배우로 데뷔, 이듬해 영화 ‘성공시대’로 스크린에 나타났다. 올해 59세인 그는 “10년 뒤 은퇴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직업으로서, 밥벌이로서 배우는 언젠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며 “그거 말고 내가 좋아서 내가 하고 싶은 작품만 골라서 하는, 일종의 아마추어가 되고 싶은 마음”이라고 밝혔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니까 배우로서 저에게 감독들이 요구하는게 단순해진다. 액션도 없고, 촬영 분량도 짧아지고. 어떻게 보면 편하다. 근데 어떤 점에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이번 작품은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캐릭터를 쌓아갈 시간도 주고, 제가 터트릴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맘에 들었다.”

배우로서 성숙기를 지나고 있지만, 사업가로서는 이제 막 걸음을 떼기도 했다. 김의성은 지난 2023년 소속사 안컴퍼니를 설립하고, 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번 ‘로비’ 속 하정우가 연기한 ‘창욱’ 캐릭터에 깊이 공감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촬영장에서 경력 있고 나이 먹은 남자 배우로서 갑(甲)의 위치에 있다가 저희 배우 좀 써달라고 영업하는 대표 입장이 되니까 참 많은 게 뒤바뀌더라”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쇼박스]

하지만 새로운 일을 하면서 언제나 그가 추구하는 ‘열정’을 되찾았다.

김의성은 “배우로서 큰 회사에 소속돼 있는 시간 동안 스스로 좀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걸 느꼈다. 마음속이 늙어가는 거 같아서 이 일 저 일 참견하면서 다시 젊게 살아보고 싶은 게 있어 회사를 만들게 됐다”며 “요즘은 배우들이 성장하는 것, 우리 배우의 좋음을 잘 이해시켜서 일자리를 만들었을 때의 기쁨이 있다”고 말했다.

“배우로서도, 인간 김의성으로서도 현실에 안주하는 게 가장 두렵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는 상황이 안 좋아서 소속 배우들로 ‘자컨’(자체 제작 컨텐츠)을 만들어 상업적으로 내놓아 보려고 한다. 이르면 올해 안에 내놓을 것 같다. 어떻게든 이 시기를 잘 버텨서, 성장하는 회사로 만들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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