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
‘글로벌 금융 이슈 점검’ 경총포럼 강연
대중 수출 둔화에 대미 해외투자 증가
환율상승 구조화, 낮은 수준 유지 못해
경기 회복 위한 기준금리 인하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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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찬 강연에서 오건영 신한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이 ‘글로벌 금융시장 이슈 점검’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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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對中) 무역 특수의 종료, 한국 경제의 구조적 성장 정체를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는 환율의 우상향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에 환율 1400원대를 ‘뉴노멀’로 받아들이는 당국과 정부의 정책 전환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찬 강연에 강연자로 참석한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가 글로벌 무역질서에 충격을 주고, 한국의 정책 대응이 환율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오 단장은 “4월 2일부터 발동되는 트럼프의 상호관세 조치가 미국 경제 둔화를 유발하고, 한국의 추경과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맞물리면 올 하반기엔 원·달러 환율의 숨고르기가 나타날 수 있다”면서도 “구조적 흐름상으로는 환율의 바닥은 점차 올라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싱호관세 발동 임박…“1.2% 성장률은 금리인하 명분 될 것”=미국의 보호무역 기조 강화는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 수 있는 변수로 지목된다. 오 단장은 “미국이 상호관세, 산업별 관세, 보편관세의 세 축으로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있으며, 특히 4월 2일부터 발동되는 상호관세는 타국 관세 수준에 맞춰 미국이 일방적으로 동일한 수준의 관세를 매기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무역 적자 해소를 목표로 한 이 조치가 오히려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결국 미국 경제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과 내수 부진이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면서, 금리 인하와 추경 편성에 대한 정책 명분이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도 이어갔다. 오 단장은 “한국은 내수 부진과 저성장 국면에 놓여 있으며, 올해 성장률이 1.2% 수준까지 떨어질 경우 정책당국이 더욱 즉각적인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1.2% 성장률은 외환위기 등 특수 상황을 제외하면 사실상 최저 수준이며, 이러한 수치는 충격요법이자 정책 추진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상반기 중 추경과 금리 인하가 단행되면 그 효과는 하반기부터 점차 나타날 것이고, 연말에는 소폭의 성장 반등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 단장은 “한국의 금리 인하와 추경 효과가 함께 작동하면 하반기 환율은 다소 숨고르기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환율은 추세가 중요하다”며 “환율의 절대적인 바닥 수준 자체가 과거보다 위로 올라가고 있어 구조적으로 1100~1200원대로 복귀하긴 어려운 환경”이라고 진단했다.
▶한미 잠재성장률 격차와 대중국 수출 특수 소멸…“환율 상승 구조화됐다”=한국과 미국 간의 잠재성장률 격차는 환율이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흐름을 보이게 되는 배경 요인으로 꼽혔다. 오 단장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2% 수준에 그치지만, 미국은 AI 혁신과 리쇼어링 효과로 2~3%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이러한 생산성 격차는 장기적으로 환율 추세에 고스란히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난 20여년간 원화 강세를 지탱했던 대중국 무역 특수가 사실상 소멸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오 단장은 “중국의 수요 둔화와 공급과잉, 기술력 격차 축소로 한국의 대중 수출 경쟁력이 약화됐으며, 무역 흑자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행 지역경제보고서에서도 2025년 주요 위협 요인으로 ‘중국의 과잉공급’이 꼽혔다.
오 단장은 “중국이 과잉 공급으로 소화하지 못한 잉여생산물을 해외로 밀어내기 시작하면, 이는 곧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에 대한 가격 경쟁 압박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으로의 자본 이동이 늘어나면서 원·달러 환율을 눌러주던 힘이 약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오 단장은 “국내 기업의 해외 생산 확대와 국민의 해외 주식·부동산 투자 증가로 과거와 달리 국내에 머무르는 달러가 줄고 있다”며 “이전에는 수출로 들어온 달러가 환율을 눌렀지만, 이제는 구조적으로 빠져나가는 쪽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오 단장은 “대한민국의 순해외자산 규모는 1조 달러를 넘었으며, 이러한 환경에서는 환율이 예전처럼 낮게 유지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환율 방어냐, 내수 회복이냐…정책 균형이 핵심”=환율 안정과 내수 회복 사이의 정책 딜레마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금리를 미국 수준에 맞추면 환율은 방어할 수 있지만, 내수는 꺼진다. 반대로 금리를 내리면 내수는 살지만 환율이 불안해진다. 오 단장은 이를 고등학교 수험생의 딜레마에 비유하며 “수학(환율 안정)을 위해 국어(내수 경제)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이제는 대외균형보다 대내균형, 즉 내수를 중심으로 정책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행의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며 “올해는 상반기보다 하반기부터 경기 회복의 흐름이 조금씩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오 단장은 “지방 제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미국과 같은 고금리를 감당할 체력이 부족하다”며 “환율 안정만 바라보며 금리를 결정하면 내수는 3년 연속 고사 위기를 겪게 된다”고 우려했다. 또 “국내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며, 환율에 따른 일시적 충격은 과거와 달리 변동환율제가 일정 부분 흡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학 점수도 중요하지만, 국어 점수가 바닥이면 대학에 못 가는 것처럼, 내수 경제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지금의 정책 우선순위”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환율 수치를 과거 기준으로 해석하는 데 따른 위험성도 경계했다. 오 단장은 “환율 1400원을 과거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기준으로 해석하면 오히려 정책 판단을 왜곡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고환율은 미국의 예외적 고금리와 강달러 환경이 반영된 결과”라며 “숫자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형성된 구조와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예전에는 1200원만 넘어도 ‘외환 위기’라며 공포감을 조성했지만, 지금은 원화뿐만 아니라 달러를 제외한 모든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인다”면서 “국내 사업자들의 대응여력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점을 고려해도, 현재의 환율은 글로벌 금융 환경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정호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