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협업·속도…무역업과 일맥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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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인터내셔널 아이스하키 동호회 ‘I.I.W(Inter Ice hocky Warriors)’ 회원들. [포스코인터내셔널 제공] |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지난 21일 오후 7시쯤 서울 강남구 아이스웍스 빙상 스포츠센터. 종합상사 포스코인터내셔널의 20대 사원부터 40대 후반 팀장님까지 삼삼오오 모여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귀한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반납할 정도로 하키에 진심인 이들은 오대양 육대주를 누빈다는 상사맨들이다. 왼손엔 사람 키만한 하키 스틱, 오른손엔 글러브, 스케이트 등이 담긴 묵직한 보스턴백을 들고도 “별로 무겁지 않다”며 척척 걸어갔다.
신가드, 팬츠, 어깨 보호대, 체스트가드, 유니폼, 헬멧, 글러브 등을 입고 나온 이들은 자연스럽게 몸풀기에 나섰다. 7시 30분부터는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됐다. 보통 첫 30분은 파워 스케이팅이나 퍽(아이스하키에서 사용하는 공)을 다루는 스틱 핸들링 등 기본 스킬 훈련을 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팀을 나눠 미니 게임을 진행해 실전 감각을 익힌다. 디펜스 2명, 센터 1명, 윙 2명, 골리(골키퍼) 등 총 6명이 한 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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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퇴근 후 양손 가득 하키 장비를 들고 온 I.W.W 회원. [고은결 기자] |
빙상 위 움직임은 아직 서툴지만 헬멧 속 표정은 밝다. 동호회 회원인 심원보(47)씨는 “요즘 사회인 동호회 등 하키 인구들이 늘고 있는데 회사 근처에서 연습할 기회가 마련돼 즐겁다”고 말했다. 훈련을 마치면 벌써 어둑어둑한 밤 9시다. 일과 운동을 겸하는 ‘주경야련(晝耕夜練)’이 따로 없다. 매주 두 번씩 수업을 열고, 시간이 되는 이들은 높은 참석률을 보이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올해 1월부터 아이스하키 동호회 ‘I.I.W(Inter Ice hocky Warriors)’를 운영 중이다. I.I.W는 입사 3년차 사원 이수연(27)씨가 신설해 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씨는 스스로를 ‘하친자’(하키에 미친 사람)라 말한다. 하키의 강렬한 매력은 출구가 없단 설명이다. 초등학교 5학년 우연히 체험 교실에 참여한 후 푹 빠져, 친구들과 경기장에 가는 게 꿈이었다. 대학 시절엔 스포츠 기자, 국내 유일 아이스하키팀 HL안양에서 마케터 및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일했다. 이후 회사에 들어와 하키 동호회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지만 내심 걱정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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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중인 I.W.W 회원들. [포스코인터내셔널 제공] |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하키는 비인기 종목이다. 현재 프로 구단은 HL안양 1곳뿐이고, 여자 아이스하키 프로팀은 전무하며 실업팀도 수원시청뿐이다. 일반인들 사이에선 ‘비싸고 위험한 스포츠’란 인식에 진입장벽도 높다. 장비 마련도 한두푼이 아니고, 격렬한 ‘하키 파이트’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예상 외로 반응은 뜨거웠다. 동호회 신청을 받자 정원은 금세 채워졌고, 심지어 21명 중 여성이 12명으로 더 많다. “처음엔 누가 관심 가질까 싶었는데 호기심을 갖는 분들이 많았어요. 유령 회원도 없이 21명 모두 적극 참여 중이에요.”
일부 회원은 서울 스마트워크센터가 아닌 인천 송도 본사에서 퇴근하고 상경해 연습에 참여할 정도로 열정이 뜨겁다. 2시간 훈련을 위한 왕복 시간만 4~5시간인 셈이다. 처음엔 빙판 위에서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다가, 중급반 수준까지 실력이 일취월장한 이들도 있다.
직급도 팀도 제각각이지만, 아이스하키라는 연결고리로 하나로 묶였다. 이씨는 도요타·닛산·혼다 등 3개의 자동차 회사에 강판을 수출하는 업무를 주로 하는 일본그룹 소속이다. 다른 회원들은 열연그룹, 모터코아판매그룹, 홍보조직 등 다양한 팀에서 일하고 있다. 나이도 78년생부터 98년생까지 폭넓다.
얼음 위에서 터져나오는 도파민은 모든 걸 잊게 한다고 한다. 짜릿한 질주와 몸싸움에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게 일상인 상사인답다. 전략의 스포츠란 점에서도 시황·환율·리스크 등을 빠르게 대응하는 무역업과 통한다. 몸싸움만으로 밀어붙이는 건 하수고, 빠른 전환과 순간적인 전략 전개가 필수다. 팀워크가 생명인 점도, 빙판 위에서 눈빛만으로도 움직이는 하키와 닮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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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W 동호회 회장을 맡은 이수연씨(왼쪽)와 회원들. [포스코인터내셔널 제공] |
한편 아이스하키 외에 와인, 캠핑, 러닝 등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임직원들의 관심사에 맞춘 다양한 사내 동호회를 두고 있다. I.I.W처럼 직원 주도로 신설된 동호회에 대해선 적극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복지 차원을 넘어, 서로 다른 부서 간 소통을 유도하고 조직 내 유연한 문화 정착을 도모하려는 취지다.
실제로 최근 산업계에선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를 이끄는 ‘이색 동호회’가 조직 활성화의 열쇠로 주목받는다. 일부 기업은 동호회를 인재 발굴의 통로로도 활용 중이다. 넥슨의 ‘코딩 동호회’, 현대엔지니어링의 ‘AI 학습 동호회’, KT의 ‘드론 동호회’ 등 전문성과 취미가 결합된 사례들도 다양하다. 단순 여가 활동을 넘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작지만 강한 연결’이 사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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