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불 났어요. 빨리 대피” 할머니 업고 뛴 외국인

8년 전 취업비자로 입국 선원으로 근무
지난 25일 밤 11시 불 나자 노약자들 엎고 뛰어
“수기안토 없었으면 큰일, 계속 함께 살 수 있길”


28일 오후 경북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마을이 산불 피해로 폐허로 변해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경북에서만 26명의 사망자를 낸 의성 산불이 영덕군 한 마을을 덮치자 외국인이 직접 뛰어다니며 주민 수십명을 구한 사연이 전해졌다.

8년 전 취업비자로 입국해 선원으로 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국적 수기안토(31)씨가 그 주인공이다.

31일 뉴스1에 따르면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한 산불이 지난 25일 오후 강풍을 타고 영덕군 축산면 등 해안마을을 덮칠 때 수기안토씨는 마을어촌 계장 유명신씨와 함께 주민 대피에 나섰다.

28일 오후 경북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마을에서 주민과 인부들이 포크레인 등을 이용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


밤 11시쯤 늦은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먼저 몸이 불편한 마을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기 위해 집마다 뛰어다니며 불이 붙은 소식을 전했다.

수기안토씨는 “할머니 산에 불이 났어요. 빨리 대피해야 해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잠이 든 주민들을 깨웠다.

소리 치는데서 그치지 않고 나이든 주민들을 엎고 약 300m 떨어진 마을 앞 방파제까지 무작정 뛰어 대피를 도왔다. 마을은 해안 비탈 길을 따라 집들이 모여 있어 노약자들은 빠르게 대피하기 쉽지 않았다.

90대 마을 주민은 “(수기안토가) 없었으면 우린 다 죽었을 것”이라며 “TV 보다 잠이 들었는데 밖에서 불이 났다는 고함에 일어나 문밖을 보니 수기안토가 와있었고 등에 업혀 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수기안토씨는 “사장님(어촌계장)하고 당시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빨리빨리’라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할머니들을 업고 언덕길을 내려왔는데 불이 바로 앞 가게에 붙은 것을 보고 겁이 났다”고 떠올렸다.

그는 “한국이 너무 좋다. 특히 마을 주민들이 가족 같다”며 “3년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향에 있는 부인으로부터 자랑스럽다는 전화를 받았다. 산불로 다친 사람이 없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수기안토와 어촌계장 등이 없었으면 아마도 큰일 당했을 것이다. 저렇게 훌륭하고 믿음직한 청년과 함께 일하고 계속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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