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상태’ 헌재 150m 밖…희비 엇갈린 진보 vs 보수 [헌재 尹대통령 전원일치 파면]

탄핵찬성 지지자들 “만세” 외치며 환호
한남동 보수 지지자들 “탄핵무효” 좌절
찬-반 집회 장소 갈리며 극단 충돌 없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기일인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 경찰버스가 차벽을 이루고 있다. 이날 선고는 작년 12월 14일 윤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때로부터 111일 만, 2월 25일 변론을 종결하고 재판관 평의에 돌입한 때로부터는 38일 만이다. 이상섭 기자


윤 대통령 파면을 찬성하는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기각을 촉구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4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 이날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주문을 읽자 헌재 일대 공기의 무게가 바뀌었다.

대통령의 파면이 확정된 순간. 헌재에서 약 300m 떨어진 율곡로 일대 도로에 자리를 깔고 자리를 지킨 시민들 사이에선 짧은 정적에 이어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윤석열 파면”을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전날 밤부터 철야를 한 1600여명의 시민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이겼다” “만세”를 외쳤다.

이날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내와 함께 탄핵 찬성 집회에 참석한 정진목(43) 씨는 “오래 기다렸던 소식을 들어서 기쁘다. 정치고 경제고 이래저래 흔들리고 있는 대한민국 정상화 시작점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윤 대통령 탄핵 반대를 바라고 있던 보수 지지자들이 모인 용산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탄핵 반대를 외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대형 스크린으로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를 지켜봤다.

시민 A씨는 “오늘이 12·3 계엄일로부터 딱 123일 되는 날, 하늘이 정해준 것처럼 딱딱 맞아 떨어진다”며 “대통령님은 분명 복귀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헌재의 ‘파면’ 판단이 나오자 관저 앞에 모인 지지자들은 “말도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탄핵심판 최종선고가 나온 이날 오전. 대한민국의 눈과 귀가 쏠린 헌재 일대는 무거운 긴장감이 깔린 채 아침을 맞았다. 전날까지 경찰이 배치한 차벽트럭과 경찰버스는 헌재로부터 반경 150m 안쪽의 도로를 이중삼중으로 둘러싸 봉쇄했다. 서울은 물론이고 인천·경기·세종경찰청 소속 기동대 110여개 부대 7000여명이 헌재와 광화문, 종로 일대 대사관과 언론사 앞에서 경비 근무를 했다.

형사기동대, 기동순찰대, 지구대·파출소 경찰, 지방에서 올라온 증원 경찰도 각자 담당구역을 지켰다. 경기 남부권 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우리 서에서만 60명이 중대를 꾸려서 서울로 지원 근무를 나왔다”고 말했다.

이곳을 지나는 3호선 안국역은 지하철이 무정차 통과했다. 재동초등학교를 비롯해 주변 학교들도 모두 임시휴교여서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도로에 즐비한 대부분의 상점은 ‘임시 휴업’ 안내문을 붙여놨다. 오전 6시55분께 정형식 재판관이 가장 먼저 헌재로 출근했고 이어서 다른 재판관들도 청사에 도착한 뒤 선고 직전의 최종 평의에 돌입했다.



경찰이 구축한 이른바 ‘진공 공간’ 바깥에는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지지자들이 안국역 6번 출구부터 안국동 사거리까지 200m 도로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철야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겨울 이불, 패딩 점퍼를 껴입고 추위를 버티며 자리를 지켰다. 해가 뜨면서 손에는 ‘8대 빵(0)’, ‘윤석열 즉각파면’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로 환호하고 손뼉 치며 탄핵선고를 기다렸다.

서울 강북구에서 온 여모(60) 씨는 “어젯밤에 와서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해야 (대통령 퇴진을 바라는) 우리의 뜻을 확고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대학생 김모(21) 씨는 전날 밤 인천에서 막차를 타고 헌재 앞으로 왔다고 했다. 그는 “8대 0으로 탄핵 인용이 돼서 나라가 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나왔다”면서 “다음 대통령 선거가 열리면 인생 첫 대선 투표인데 나도 유권자로서 잘 투표해야겠단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당초 우려와 달리, 탄핵 반대를 바라는 쪽의 집회는 헌재 앞이나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장소를 옮겼다. 덕분에 안국역 일대에선 탄핵 찬-반 양쪽의 대립이나 충돌 조짐이 보이진 않았다. 당초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릴 예정이던 천교도 수운회관 앞에 모여있던 10여명의 시민들은 “새 좌표가 한남동 관저 앞이란다”하면서 자리를 뜨기도 했다.

한남동 관저 주변에는 9시부터 탄핵 반대를 바라는 시민들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탄핵 반대 집회를 여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대국본)는 집회 장소를 애초 예고했던 광화문에서 한남동 볼보빌딩과 국제루터교회 앞으로 옮겨 행사를 열었다.

“탄핵무효 윤석열”을 외치는 주최 측 관계자의 목소리에 맞춰 꽹과리와 징을 두드리자 ‘사기탄핵 무효’, ‘부정선거 사형’, ‘이재명 구속’ 같은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든 참가자들도 구호를 따라외쳤다. 경기도 용인에서 한남동을 찾은 박모(59) 씨는 “나라가 살려면 탄핵 기각이 돼야 했다”고 말했다.

김용재·이영기·박지영·안효정·김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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