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여섯번째 국가원수 중도퇴진 ‘비극의 역사’ [헌재 尹대통령 전원일치 파면]

하야·시해·탄핵·구속 비참한 결말
임기 못채운 대통령 역사 되풀이



대한민국 대통령은 정녕 독이 든 성배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4일 헌법재판소의 국회 탄핵소추안 인용으로 탄핵되면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수난과 비운의 역사가 또 한번 되풀이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여섯 번째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난 국가원수라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윤석열 대통령까지 대부분의 역대 대통령은 하야와 시해, 탄핵, 구속 등 말로가 비극으로 점철됐다.

전직 대통령의 수난과 비운의 역사는 보수진영에서 ‘국부’로 추앙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전 대통령은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 등을 통해 장기집권을 꾀하다 4·19혁명이라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하야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말과 함께 하와이로 망명한 이 전 대통령은 결국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4·19혁명 이후 현재까지 헌정 사상 유일한 의원내각제 체제에서 선출된 윤보선 전 대통령은 불과 1년여 만에 5·16 군사쿠데타로 밀려나고 말았다.

윤 전 대통령은 뒤이어 들어선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반유신운동을 이유로 기소돼 수사를 받고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헌정사상 첫 형사처벌 대통령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3선 개헌과 10월 유신으로 종신집권까지 꿈꿨다.

그러나 18년을 집권한 끝에 1979년 10월 26일 자신의 심복이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의해 시해되며 장기집권의 종지부를 찍었다.

박 전 대통령 시해 당시 국무총리로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최규하 전 대통령도 12·12 군사반란으로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에 의해 밀려나고 말았다.

1979년 12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8개월 재임한 최 전 대통령은 역대 최단명 대통령이기도 하다.

뒤를 이어 등장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역사의 심판에서 비껴나지 못했다.

퇴임하면서 사실상 대통령직을 물려준 노태우 전 대통령 집권 시절 이미 백담사에 유배된데 이어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 그리고 뇌물수수 등으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사면돼 풀려났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는 1987년 6월 항쟁과 개헌 이후 출범한 ‘87년 체제’인 제6공화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단절되지 못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과 같은 혐의로 법정에 세워진 끝에 1심에서 징역 22년6개월, 2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사면으로 석방됐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끈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탄핵이나 구속과 같은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재임 기간 아들이 구속되는 동병상련을 겪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는 한보비리 사건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으로 구속됐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 씨와 삼남 홍걸 씨는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수난과 비운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재임 시절부터 측근과 가족을 옥죄어온 ‘박연차 게이트’의 멍에가 퇴임 후 자신을 향했고, 끝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서거하고 말았다.

뒤이어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경선 중 불거진 다스·BBK 사건 등 비리 의혹에 발목잡히며 퇴임 후 결국 수감됐다.

1심에서 징역 15년, 2·3심 과정에서 보석 석방과 재구속, 구속집행정지를 거쳐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이 최종 확정돼 복역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특별사면으로 형 집행정지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보다 앞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끝에 구속됐다.

2017년 3월 10일 헌재 결정으로 파면된 박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처음 피의자 입건 사례라는 불명예스런 기록도 남겼다.

퇴임 후 경남 양산으로 귀향해 정치와 일정 거리를 두고 있는 문 전 대통령의 경우도 예외라고만 할 수는 없다.

딸 다혜 씨가 음주운전과 불법 숙박업 운영 혐의로 불구속기소되며 물의를 일으켰고, 옛 사위 특혜채용 과정에서 불거진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해 검찰로부터 자신이 소환 조사 통보를 받은 상태다.

87년 체제 이후에도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이 끊이지 않는 것과 관련해 87년 체제가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며 개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대두된다.

국회입법조사처장을 지낸 박상철 미국헌법학회 이사장은 “현재 헌법은 준제왕제였던 박정희·전두환과 같은 장기집권을 막는데 초점을 맞추다보니 대통령으로의 권한 집중이나 독재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며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임기 중 레임덕 등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이어 “수명을 다한 헌법인 만큼 조기대선 국면에서 국민과 정치권이 함께 진지하게 개헌을 고민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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