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비즈] 한국 자동차 산업 혁신의 길, 일본에서 엿보다


일본 후쿠이현 유명 사찰이 위치한 작은 마을인 에이헤이지초(永平寺町)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고령화’ 마을이다. 이곳에 최근 눈길을 끄는 큰 변화가 생겼다. 일본 최초로 레벨4 승인을 받은 자율주행 차인 7인용 무인 카트가 마을 입구부터 약 2km 구간을 20분마다 운행해 노인들의 편안한 발이 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이 마을은 불교문화 관광지에서 기술을 실생활에 적용한 자율주행 선진 지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안전을 위하여 최고속도가 12km/h에 불과하지만, 미래 자율주행 기술이 일상에서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최근 참관한 2025 일본 요코하마 자동차 공학 박람회에서도 일본 자동차 업계의 지향점이 앞선 사례와 유사함을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예컨대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한 Toyota의 자율주행 플랫폼, 고령 운전자의 특성을 고려한 Honda의 운전자 인터페이스, 스마트 시티 연계형 자율주행 셔틀 개념 모델을 소개한 Nissan 등의 모습에는 비록 변화 속도는 미국, 중국에 비해 느릴지라도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와 목적이 뚜렷한 일본식 기술 전략이 녹아들어 있었다.

근래 국내에서는 미래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논할 때, 이미 앞서나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따라잡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테슬라를 중심으로 SDV(Software Defined Vehicle) 기술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중국은 상하이 모터쇼에서 드러났듯이 빠르게 기술을 실험하고 상용화하면서 과감하고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산업 전반을 선점하려는 분명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기술 주도형 관점도 중요하지만, 수요처로서 사회를 먼저 살피고 기술을 창안하는 수요 주도형 관점을 놓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긴다.

일본의 사례는 우리 자동차 산업의 발전 방향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일본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인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물류 인력 부족 문제 등은 이미 한국에서 현실화하고 있으며, 그러한 이슈에 대해 자동차나 모빌리티 신기술이 활약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도 이러한 부분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속도와 방향성을 겸비한 미래차 기술 개발에 대한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양국 간 협력도 중요한 전략적 요소다. 한일 양국은 제도적 제약과 기술적 보완성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공동 규제 개선과 국제 표준 협력을 통해 아시아 중심의 미래차 생태계 구축을 함께 모색할 필요가 있다.

기술은 멈추지 않고 진보하며, 사회는 더 안전한 변화와 신뢰를 요구한다. 미·중의 공격적인 기술 개발에 위축되기보다, 이제는 차분하고 정교한 방향성을 바탕으로 민·관·학·연이 하나 되어,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춘 미래차 생태계를 구축해야 할 때다. 이러한 방향성과 고유한 생태계는 규제에 갇혀있는 우리 미래차 산업의 돌파구이자,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을 열어가길 기원해 본다.

진종욱 한국자동차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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