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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문한 옷, 어제 도착한 전자제품, 아침에 산 과일 등 우리 일상 속 많은 소비재가 바다를 건너왔다. 국내 수출입 물동량의 99.7%가 해상 운송으로 이뤄지며, 지난해 전국 항만에서는 2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3173만개가 오갔다. 하루 평균 8만7000개로, 사상 최대 물량이다.
인류가 바닷길을 개척한 이래, 지금도 세계 무역 물동량의 80% 이상은 이 물길을 따라 움직인다. 알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분주한 길이다. 그러나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세계 해운업계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주로 탄소를 포함해 전체의 약 3%에 이른다. 우리의 편리한 소비생활은 탄소 위에 세워진 글로벌 해운 물류망에 기대고 있다.
탄소중립은 인간 활동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최대한 줄이고, 남은 배출량은 흡수 또는 제거해 실질적인 탄소 순 배출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국제 사회의 공동 목표로, 에너지 효율이 높은 해상운송은 탄소중립과 기후정책 실천의 핵심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국제 해운 분야의 탄소중립을 목표로, 다각적 조치를 도입해 왔다. 대표적으로 연료별 탄소 배출량을 제한하는 ‘연료표준제’와 이와 연계한 ‘탄소부과금’이 있다. 국제 사회가 연료 기준과 배출 부담 등을 강화하며 변화는 필수가 됐다. 각국 정부와 국제 해운선사들은 탈탄소 기술 개발과 친환경 선박 도입에 속도를 내왔다. 우리 정부도 지난 2020년부터 시행된 약칭 ‘친환경 선박법’에 따라, 2030년까지 친환경 선박을 118척으로 확대하고, 친환경 선박 신규 건조에 지원금 총 5조5000억원을 투입하는 등 기반을 다져왔다.
여기에 신정부는 ‘세계를 선도하는 해양 강국’ 기조 아래, 친환경 선박을 건조·개조하는 국적선사의 선박금융 확대를 약속했다. 그간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중소형 연안 선사의 친환경 선박 건조와 친환경 어선에 대한 투자도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중소 해운사와 영세 조선사를 중심으로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은 정책과 현장을 잇는 조력자로서 관련 법에 따라 ‘친환경 선박 인증제’와 ‘친환경 인증 선박 보급 지원사업’ 등을 수행 중이다. 2021년 제도 시행 이후, 공단은 총 113건의 친환경 선박을 인증했고, 이중 선박 47척이 건조비 총 814억원을 지원받았다. 올해부터는 인증 대상을 선박에서 기자재까지 확대한다.
친환경 선박용 핵심 기자재를 제조하는 국내 중소기업의 친환경 전환 문턱도 낮췄다. 공단은 기자재 실증을 위한 자체 선박 보유가 어려운 기업에 육상시연과 실선 테스트를 지원해, 핵심 기자재의 국산화와 산업화를 촉진하고 있다. 선박의 하이브리드 추진 기술개발 등 국내 친환경 선박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연구개발에도 주력 중이다.
공단은 정부와 함께 친환경 선박 기술의 안전성과 실행력을 검증하여, 더 안전하고 깨끗한 바닷길을 여는 토대를 다지고 있다. 단지 수치로 계산된 탄소 감축이 아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다.
평소 보이지 않아 잊고 지내는 그 길 위로, 오늘도 수만개의 컨테이너가 우리의 일상을 나르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미래를 지켜내야 할 때다.
김준석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이사장




